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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훈느 Oct 01. 2021

하나는 많고 반은 좀 아쉬워, 베이글 샌드위치

'구' 상하이 외노자의 국수처럼 훌훌 읽힐 푸드 에세이

 상하이에 온 뒤 첫 주말. 평소 열심히 해 오던 운동을 중국에서도 놓지 않을거라 다짐하며 집 앞의 공원에서 6km 정도를 뛰고 왔다. 말끔히 샤워까지 했는데 시계는 아직 오전 7시 반이다. 근처에 어디 갈만한 카페가 있나 휴대폰으로 훑어보지만 대부분 영업시간이 11시부터다. '커피는 원래 아침에 정신 차리려고 먹는건 아니야? 11시면 점심시간인데?' 하고 툴툴대보지만 스타벅스 말고는 개인 카페 중 일찍 여는데를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실망이 깊어지던 중 딱 한군데, 7시 반에 오픈하는곳을 찾아낸다. SUMERIAN, 상해에서 일한다는 스타일리시한 주인장의 블로그에서 한번 이 이름을 본 것 같다. 식당이며 카페 이야기가 많아 한참을 구독하던 블로그이다. 포스팅에 베이글이 유명하고 손님도 많다고 써있던 걸 떠올리며 나갈 채비를 한다.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것 같다.         

거리 전체가 좁고 빈티지한 샨시베이루 (陕西北路)에 위치한 파란 간판, sumerian 

 빈티지 샵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카페들을 옆에 끼고 좁은 인도를 걸어가니 푸른 간판과 문이 보인다. 이른 아침에도 운동복 차림의 손님들이 이미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가게에 들어가니 베이글 유명한 집 맞구나 싶게 손님들 접시마다 다양한 베이글이 놓여 있다. 바나나를 얹어 달콤하게 먹는사람, 푸짐하게 쌓아올린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 치즈와 토마토만 얹어 심플하고 짭조롬하게 먹는 사람. 최대한 태연하게 누가 뭘 먹는지, 이집에선 뭐가 제일 잘 나가는지 매의 눈으로 스캔하며 카운터로 걸어나간다. 

 매장 안쪽에에는 5가지 정도 되는 베이글이 잔뜩 쌓여있고 메뉴판을 보니 종류도 다양하다. 다 괜찮아 보이지만 그 중 제일 맛있게 보이는 메뉴를 커피와 함께 주문한 뒤 번호표를 받는다. 커피며 샌드위치 가격이 솔직히 저렴한 편은 아니다. 유명한 집 다닌다고 이렇게 아침부터 돈 쓰다가 나 빈털털이 되는거 아니야? 하는 마음에 겁이 덜컥 나지만 이내 '한국에서도 가끔 스타벅스 샌드위치와 커피를 아침으로 선택하던 내가 감당 못할 가격은 아니잖아? 게다가 맛있다잖아~ 이미 시켰는데 어쩔거야?' 하고 내적 독백을 하며 잠자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광노화는 싫지만 창가의 기분 좋은 햇볓을 피할 순 없다. 

  별로 기다리지 않은 것 같은데 샌드위치와 커피가 벌써 나온다. 두터운 자기 접시에 담긴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거대하고, 포크와 나이프를 아무리 세련되게 놀리려 해 보아도 자꾸 쏟아지며 내용물이 접시 옆으로 아무렇게나 흩어진다. 이정도 실한 내용물의 큼지막한 샌드위치를 뉴욕 출장 때 한번 먹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뉴욕에서와 달리 샌드위치가 따뜻해서일까, 그때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냥 지금 눈 앞에 있어서일까, 내 입맛엔 뉴욕 몇대 베이글이라는 그 집보다 여기 샌드위치가 훨씬 맛있는 느낌이다. 커피는 명성에 비해 평범하고, 여느 중국의 아메리카노가 그렇듯, 투샷 이상을 즐기는 나에게 물 탄듯 묽은 맛이 났지만 그런걸 다 상쇄하는 맛이다. 

 마침 날씨도 너무 좋아 햇빛에 노출되면 올 수 있다는 갖은 화장품 회사의 경고들을 싸그리 무시한 채 창가에 들이치는 햇살을 온 얼굴로 받으며 기지개를 펴 본다. 이렇게 아침에 운동을 하고 남이 차려준 아침식사를 여유롭게 나와 먹고 있으니 실제론 그냥 평범한 회사원인데 세련되고,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며, 능력있는 어른이라도 된 느낌이다. 좁다란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를 보며 야금야금 먹다 보니 벌써 반절을 다 먹었다. 배가 애매하게 불러온다. 

 식탐이 많은 나는 조금 갈등한다. 배부르긴 한데 이걸 남기면 너무 아깝지 않을까? 그렇다고 포장해가면 맛이 없어져 그냥 버릴 것 같다, 그렇다고 다 먹으면 너무 심하게 배부르지 않을까? 아니 아니. 내가 양이 얼마나 큰데 이걸 다 못먹을까? 파파존스 피자 한판도 혼자 다 먹는 나인데 충분히 먹고도 남지. 너무 배부르면 그냥 먹고 한탕 더 뛸까? 오만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결국 음쓰를 만들지 말자는 비장한 마음으로 샌드위치도 커피도 다 먹고 나오니 예상대로 너무 배가 부르다. 소화도 시킬 겸, 동네 탐방도 해볼 겸 빙글빙글 모르는 길을 다 들어서보며 한시간쯤 걷다가 집에 들어가기로 한 나는 생소한 골목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그냥 값을 좀 내리고 하프 샌드위치도 팔면 안되나? 아 근데 그건 좀 아쉬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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