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미완결성

by 해랑

일반적으로 사람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사람을 만나왔는지, 어떤 공부나 일을 해왔는지 등의 고유한 특성을 통해 남과 나를 구별 짓는다. 동시에 예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동일한 인물이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올해 60살이 된 사람에게 10살의 자기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동일한 인물이냐고 물으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비록 10살이었을 때의 행동방식이나 생각, 습관이나 외양적 특성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둘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신과 남을 구분 짓는 특성들, 이를테면 모습이나 성격이나 호오(好惡) 등을 근거로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구분하지 않는 걸까? 어쩌면 그 답을 기억에서 찾으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과거의 나는 부분적으로는 지금의 나와 같은 기억과 경험과 특징을 공유한다. 하지만 기억은 불완전하고 성격은 변하기 마련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과거의 당신이 현재의 당신에게 완전히 속해있지는 않다. 아주 미세한 차이일지라도 1분 전의 나와 1분 후의 나도 신체를 이루는 세포부터 시작해서 경험이나 생각까지 전부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과 다른 고유한 존재고, 상황이나 모습, 생각이 많이 변했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나 영혼이 바뀌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이러한 믿음의 맹점은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조차 영혼이 불변한다고 믿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큰 범죄를 저지르는 등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일화를 들려주면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영혼이 타락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들조차 영혼이 (쉽게 변하지야 않겠지만) 가변적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유한 영혼이란 게 존재하는지 증명할 수 있냐는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나를 구성하는 모든 특성이 모두 종국에는 변하거나 사라지는데, 영혼이라고 해서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불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예전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이 일관된 고유한 존재라는 주장의 근거는 그냥 당신이 자신을 변함없는 한 명의 개인으로 인식한다는 느낌 외에는 딱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존재는 언제나 변하고 있다. 그것도 땅 위에 건물을 짓듯이 0에서부터 시작하여 무언가 완성된 존재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런저런 방향으로 발전하고 변화하며 이전에 존재하던 것을 완전히 부수고 새로이 쌓기도 하는 방식으로 변한다. 또한, 모든 변화를 차곡차곡 기억하고 담아두는 사람은 없다. 어떤 변화는 일어난 당시에는 너무나 새롭고 생경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치 처음부터 당신이 갖고 있던 특성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도 한다.


사람마다 변화의 정도도 달라서 아주 미세하게만 변하는 사람도 있고 5년이나 10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가치관, 신념체계, 사회적 신분을 가질 정도로 변하는 사람도 있다. 존재의 중심이 되는 경험이나 특징이란 따로 없다. 지금의 당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당신에게 중요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한때의 성공이 당신을 영원히 승리자로 만들어주지도 못하지만, 반대로 지금의 실패가 앞으로의 당신까지 낙인찍을 수도 없다.


만물이 무상하다는 이야기에는 공감하는 사람들도 존재, 특히 자기 자신의 무상함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꺼린다. 존재의 미완결성을 인정하기에는 모든 행위가 너무 덧없게 느껴지고, 여태까지 성취한 것들이 부정당하는 것 같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에머슨은 이러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기도 했다.


영혼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이 사실을 온 세상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 사실이 과거의 가치를 영원히 떨어뜨리고, 모든 부를 가난으로 바꿔놓고, 모든 명성을 수치로 뒤바꾸고, 성인과 악한을 혼동시키고, 예수와 유다를 같은 쪽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자기신뢰』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싶어 하고, 삶이 던지는 여러 가지 과제를 하나하나 수행해나가며 삶을 완성해나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변하는 것뿐이며, 변화는 그 자체로 무언가를 얻는 동시에 다른 것을 잃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완성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완벽이나 실수, 실패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모든 면에서 나아지거나 나빠지는 게 아니라 여러 면에서 그저 달라지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살아있는 매 순간 변화의 기회가 주어지며, 그 사실만이 공평하다.


과거 당신의 모습을 붙들고 현재를 살아갈 필요도 없고, 현재의 당신이 미래의 당신에게 어떤 짐을 지울까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매 순간 선택을 내릴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어떤 것도 영원히 당신에게 들러붙어 있을 수 없다. 당신에게 영원히 참인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매 순간 당신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존재는 언제나 과정이며 그것은 불안이 아니라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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