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은 많은 사람의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이다. 그 때문에 새로운 집단이 형성되거나 사람들을 소개받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상대가 자신과 잘 맞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한 결과로 나와 잘 맞으리라 판단하여 오래도록 교류한 사람들과 의견의 차이로 인해 다투는 경우는 몹시 흔하다. 아예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은 타인이라면 모를까, 이미 감정적으로 가까워진 사람에게서 큰 의견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일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의 “옳지 못한” 생각을 바꾸기 위한 설득을 시도하곤 한다.
실제로 친구나 지인과 설전을 나눠본 경험이 있으면 알겠지만, 설득이 어느 한쪽의 수긍과 의견의 변화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식의 "대화"는 대개 서로의 발언이나 신념에 대한 지적으로 시작해 각자 자기 생각이 얼마나 더 우월하고 도덕적인지를 설파하는 것으로 끝난다. 아무리 당신이 좋은 의도로 논쟁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마찬가지이며, 설전 끝에 당신이 모든 면에서 상대방보다 나은 견해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이런 승리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 외의 효과는 없다. 한 마디로 타인을 설득하려는 행위는 상당히 무의미하다.
어떤 이들은 설득이 무의미해 보일 때 '저 사람과 나는 근본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 사이이고, 그를 설득하는 데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낭비이다'라고 섣부르게 판단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끊을 수 없는 관계에 대하여 조용히 분노하거나, 교류를 회피하며 데면데면해지고자 한다. 이런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그게 당신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태도인가? 적어도 당신은 어느 정도 상대에게 실망했고, 심한 경우 그가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서 화가 날 수도 있다. 실망과 분노의 강도가 작고 금방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신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긍정받지 못한다고 좌절하는 대신 견해의 무상함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신념은 상대적이며, 심지어 과학적인 사실조차 새로운 발견에 힘입어 기존의 이론이 수정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많은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검증한 이론이 이럴진대, 개인의 견해란 얼마나 많은 부분이 흔들리는 기반 위에서 결정되었는가? 한 사람의 의견은 유년기의 교육, 자주 접하는 매체, 주변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갈린다. 의식적으로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할 뿐인 의견을 진리로 착각하며, 자기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런 편견을 견고하게 다진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당신이 만약에 다른 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지금과 많은 부분에서 다른 관점을 가졌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당신의 견해나 생각이 모두 틀렸다고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단지 당신은 지금 생각하기에 가장 옳은 의견을 받아들인 것뿐이고, 다른 모든 이들도 각자 그런 식으로 자기만의 주관을 만들어나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상대방과 나의 의견이 지금은 같더라도 나중에 달라질 수도 있으며, 지금 다르더라도 나중에 같을 수 있으니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당신의 견해를 더욱더 많은 사람이 알아주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부지런히 관찰하고 생각함으로써 생기는 내면의 변화를 느껴야 한다. 껍데기에 휘둘리지 않고, 모든 현상을 바로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교류하면서 아집이나 비난보다는 여유와 포용력을 보여준다. 이런 사람과 교류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교류하는 것보다 선호할 만한 일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자연스레 당신과 대화하고 의견을 듣기를 바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다고 해서 우쭐해하거나 당신의 견해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할 필요는 없다. 그저 흔들리지 않으며 어떤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이를 가까이서 관찰하는 사람도 곧 그러한 태도를 닮아가게 된다.
우리가 할 일은 눈앞의 다름과 차이에 사로잡혀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아집에 갇혀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빚고 싶지 않다면 항상 유연하게 사고하고 무슨 주제에도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으며, 충분히 일리가 있는 새로운 견해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정말로 친하고 가까운 이, 또는 당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과 의견이 다르더라도 그 사실이 당신을 화나거나 슬프게 할 수 없다.
현자들은 늘 가르침을 구하러 온 이에게는 아낌없이 지혜를 나누었으나, 반대자가 자신을 믿도록 설득하는 데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들이 사람의 변화 가능성을 믿지 않아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고, 그저 변화하는 데에는 설득이 필요하지 않음을 이해하고 그렇게 대처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데에 있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분명하게 행동하는 이는 누구도 설득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