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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렌디피티 Jun 19. 2023

엉엉 울던 아들이 건네준 엄청 비싼 생일선물

엄마생일날, 아들이 올리브 영에 다녀왔다.

고작 일주일에 몇 천 원의 용돈을 받는 13살 아들에게 큰 것을 바란 건 아니었다. 다만 그저 "엄마, 생일 축하드려요."라는 말 한마디와  눈이 일자로 찌그러지는 아들 특유의 수줍은 미소 한 스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내 생일, 평소보다 기쁘고 가뿐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기분 좋게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달그락달그락 그릇 만지는 소리에 덩달아 깬 아들은 나를 보며 씩 웃어주었다.

'저 녀석, 오늘 내 생일인 걸 알고 기분 좋게 해 주려고 저렇게 이쁜 미소를 아침부터 보여주고......' 흐뭇했다.

순조로운 시작이었다. 이 일이 있기 전 까지는.

"엄마, 오늘은 준비된 옷이 없네요? 망했네."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매일 저녁 아들이 학교 갈 때 입을 옷을 코디해 주곤 했는데 어제는 깜빡 잊은 모양이다.

"망하긴 뭐가 망해? 오늘은 네가 가서 멋지게 코디해 봐."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아이는 거실에 있는 안락의자에서 도무지 몸을 일으키지 않고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잊어버린 듯했다. 엄마의 생일을.

시계를 보니 학교 갈 시간이 다가와 마음이 조급해지자 아이를 다그쳤다. "얼른 옷 골라서 입고 밥 먹어야지!"

"아, 알았어요. 근데 왜 짜증을 내고 그러세요!" 아이의 고운 입에서 큰소리가 났다.

서운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는 있는 건지, 식탁에 올려놓은  생일 미역국에서는 영문도 모른 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아이가 잊어버렸다면 미역국을 보며 자연스럽게 알려주려고 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도저히 내 입에서는 고운 말이 나올 수 없었다.

"너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고 엄마한테 그렇게 화내는 거야?"

날카롭고 예리한 엄마의 질문에 아이는 얼마간 뜸을 들이다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내놓았다.

"엄마 생신이요." 이제야 생각 난 듯했다.

아이는 옷을 고르러 갔다 와서 식탁에 앉아 풀이 죽은 모습으로 미역국을 떠서 입에 넣고 있었다. 깨우고 깨워야 짜증 한 움큼과 함께 겨우겨우 잠에서 깨곤 했던 딸은 엄마와 오빠의 큰소리에 일어나기 싫다는 투정한 번 못 부리고 어느새 일어나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어색하고 민망한 침묵 속에 아들은 미역국과 함께 자신이 흘리는 콧물과 눈물도 함께 먹고 있는 듯했다. 생일 주인공인 나는 그냥 방에 들어와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까짓 생일이 뭐라고'란 생각이 들다가도 서운한 마음은 영 가시지 않았다. 아들이 방문을 열고 "엄마, 죄송해요. 그리고 생일 축하드려요." 하길래 알았다고, 얼른 밥 먹으라고 말하며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광경을 목격한 딸아이는 아들이 먼저 집을 나서고, 나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무려 '열 번'이나 하고 학교에 갔다. 아이들이 가고 혼자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기분을 좋게 하려고 애썼다.

미뤄두었던 화분 분갈이를 3개나 하고 집 안 청소를 구석구석 깨끗이 하고 나서 용모를 단정이 가다듬고 길을 나섰다. 점심이라도 나가서 맛있는 걸 사 먹고 싶었다. 갑자기 핸드폰에 아들 용돈카드 지출 알람이 떴다.

올리브영??? 게다가 만 원이 넘는 용돈을 결제했다니? 마침 올리브영 근처를 지나고 있던 터라 아들과 떡하니 마주쳤다. 아들은 씩~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내 손에 쥐어줬다. "엄마, 아까 죄송했어요. 그리고 생신 축하드려요." 아들에게 건네받은 건 분홍색깔의 매니큐어 두 개였다. "이런 거 필요 없어 아들, 용돈도 엄청 아껴 쓰면서 이렇게 비싼 걸 샀어?" 아들은 선물이니 그냥 받아달라고 했다. 얼떨결에 처음으로 아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았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밀려 올라왔다. 아들은 수줍은 축하와 선물을 건네곤 뚜벅뚜벅 학원으로 걸어갔다.

아이의 값비싼 선물은 그냥 받기로 했다. 그만큼의 용돈을 더 채워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들이 선물로 준 것은 평소에 진한 색을 즐겨 바르는 내 취향과는 동 떨어진 매니큐어 색이었지만, 아들의 마음을 닮은 여린 듯청순한 분홍빛 색깔은 그 어느 때보다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아이가 한 해 두 해 커가고 성인이 되어 돈도 제법 벌때가 되면 지금처럼 매니큐어 두 개로는 이만큼 기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해가 거듭될 수록 내 욕심도 몸집을 같이 불려나갈 까봐 조심스러워진다. 욕심이 탐욕이 되지 않게 오늘의 매니큐어 두 개의 기쁨을 고이고이 가슴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살고 싶다. 매니큐어를 바르며, 그 어느 때건 양손이 가볍게 엄마의 생일을 축하해 준다고 해도 아들의 전화나 방문에 언제나 기쁘고 순수하게 환대하는 미래의 내 모습을 가만히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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