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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수인계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공무원입니다.

아니, 공무원이었습니다.

by 세렌디피티 Mar 17. 2025

4년여 즈음 민원부서에 발령받았다. 민원 부서에 전적으로 배치된 적은 처음이라 조금은 두렵기도, 기대도 되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민원부서에는 '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서류를 바로바로 접수하고 당일로 처리가 될 수밖에 없는 업무들이 주로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결하지 못한 업무 때문에 야근을 한다던지 주말에 특근을 해야 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민원실근무는 사람을 상대하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원래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던 성격인지라 민원인을 대하는 것이 가끔 즐겁기도 했다. "여기 오면, 저 언니를 찾아야 해. 잘해준다니까!" 이렇게 동네 목욕탕에서 자신에게 맞게 가려운 곳을 싹싹 닦아주는 세신사를 찾듯 나를 찾아오는 노인 분 들도 계셨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타고난(?) 능력은 관공서에 오신 민원인들에겐 편안함을 선사할 수 있었다.

"아, 아버님 오셨어요? 저번에는 아드님 하고 같이 오셨었잖아요,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이고, 아가씨가 나를 기억하는구나, 오늘은 이거 때문에 왔지."

가게에 오신 단골손님을 대하듯 얼굴을 알아보며 근황을 묻는 태도는, 받는 사람에게는 '환대'의 느낌을 주길 바랐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곧 내 천직인 것 같았다. 물론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무례한 분들 덕분에 세상없는 모욕적인 언사를 듣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이 우리 공공기관의 얼굴이라고 생각을 하니 더없이 열심히 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그렇지만 우리 부서의 빈번한 인력교체는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어쩔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내 옆 파트너가 교체되어 근무 6개월 만에 인수인계를 네 번이나 함에 이르렀다. 

마치 하루 종일 아이를 가르치는 강사처럼 입에선 단내가 났다. 옆 사람 인수인계 하랴, 앞에 민원인 상대하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말을 한 시간을 합하면 순수하게 6~7시간은 족히 될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가는 동안 기차 엔진처럼 쉬지 않고 떠들어 댄 셈이다. 

그래서인지 인수인계를 하는데 도가 터 버렸다. 

내 옆에 새로오는 담당자들마다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선배님은 꼭 선생님 같아요, 선배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와요." 

칭찬 같지만 칭찬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울컥하는 심정이 들었다. 내가 인수인계에 능숙해진 가장 큰 이유는 잦은 '인력교체의  반복'때문이 아니었을까? 

공무원은 각자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 쉽지 않다. 말 그대로 보직을 뺑뺑이를 돌리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근무하고 있는 부서는 경력이 거의 없는 신입이나, 임시직 공무원들도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최소한의 인력을 배치해 주기 때문에 수시로 인력이 바뀌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공무원의 보직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자리는 일이 많다고 악명 높고 그에 반해 어떤 자리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한가한 보직도 있다. 그러므로 직원들 간의 형평성을 위하여 보직을 자주 돌려 배치하는 게 이해는 간다. 그렇지만 담당자를 너무 자주 바꿔서 민원인들과 묵묵히 그 자리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혼란을 주는 인사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인수인계를 하며 나는 이 부서의 일을 오래 익힐 수 있었지만 이곳에 발령받았다 쉴 새 없이 다른 곳으로 배치받는 공무원들은 아마 이곳에서의 근무경험이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잦은 인력 교체는 팀원 간의 신뢰감 형성에 방해가 된다. 또한 근무 중에 옆 자리 동료가 또 바뀌진 않을까 하는 염려로 인한 불안감이 생길 수 있다. 

아직까지도 공무원 사회에서 잦은 인사이동과, 새로 맡게 된 업무에 대한 촉박하게 진행되는 인수인계나 그마저도 인수인계 없이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은  만연한 문제이다. 신속한 민원처리와 친절한 미소는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마음의 여유에서 우러나온다. 발령받은 날 맞닥뜨려야 하는 이 제도가 사라지지 않은 한 능력 있고 신속한 공무처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업무분담 시스템의 개선과 전문성 있는 공무원을 양성하기 위한 인사제도의 조속한 변화를 바라며 아쉬운 마음으로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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