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오해의 한끗차.
그사람의 말과 행동 그것만으로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수있을까.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는 예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츄파춥스처럼 한가지에 다른 두가지의 맛을 내는 사탕이 있다 가정해보자.
처음 느끼던 달콤함도 뒤이어 이어지는 지루한 맛으로 변모하지 않을까.
역으로 말하면 처음 지루한 그맛도 시간이 흐르다보면 입이 심심하여 달큰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주머니에 딸랑거리는 동전이 귀찮아서 길가 슈퍼에 들어가 사탕하나 샀는데
이미 난 배가 부르고 괜히 얼마 먹지도 못하고 버릴까봐 고이 싸서 집에 들고 들어와 아무도 모르게 서랍에 넣었다.
헌데 친구녀석이 놀러와서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그것을 낼름 까먹고 앉아서는 이죽거리며 웃고 있다.
그러면서 맛이 쓰다 달다 시큼하다 깐족깐족 잔소리를 여러가지 해대고는 벌러덩 누워 얄미웁게 막대를 나에게 내민다..
친구는 생각했을꺼다 이녀석이 서랍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저 사탕을 집어먹을리 없다.
이왕 그렇게 된거라면 내가 대신 먹어주는수밖에. 친구는 분명 고맙다고 하겠지.
살아가면서 우리의 선입견도 별반 틀리지 않다.
몇번 만나 소통하는 과정에서 흘려지는 말과 행동으로 우리는 상대에게 얼마나 많은 이해와 억측을 강요하는가..
때론 확대와 축소의 자를 갖다 대어 제멋대로 이어버리거나 중간을 싹뚝 자르고 그것을 모르는 상대에게 비밀로 공유한다.
굳이 애석한 오해의 한계로 아까운 인연에 안녕을 고하지 않아도 이런 경우엔 침묵이라는 특효약이 있다.
늘상 나의 어린 후배들이 상처하여 패전병의 얼굴로 자문을 구할때 말하는것 중 하나가.
네가 직접 듣지 않은 이상 그 누구의 말도 듣지 말것이며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그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도 모르는사이에 아껴 넣어둔 당신의 서랍속 츄파춥스가 누군가에 의해 사라질수 있다.
그보다..
우리가 자행한 츄파춥스는 몇개나 될까.
누구말마따나 ' 잘 알지도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