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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May 08. 2024

바다

지구에서 얄랑이며 떠도는 영혼의 안식처


지구 면적의 약 70%를 차지하는 바다. '바다' 하면 망망대해에서 하염없이 표류하는 하찮은 인간의 존재를 떠올린다. 때로는 짙은 바다가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과 맞닿으면 지평선이 덧칠하듯 흐릿해지는 신비로운 광경을 상상한다. 바다는 땅과 땅을 잇지만 시작과 끝이 없다. 끝없이 넓은 바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겸손해진다. 그래서 바다가 주는 위로는 마음의 그릇이 차고 넘칠 정도로 백배 천배 크다.


  뉴질랜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때였다. 학점 교류로 장학금을 놓칠까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주말마다 바다를 보러 시내로 나갔다. 가끔은 방과 후에 해변가 벤치에 앉아 해 질 녘 바다를 바라보며 짧은 유통기한에 떨이로 파는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웠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는 장소가 몇 군데 있었는데,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바다를 감상하는 곳이 달랐다. 곧이어 나만의 아지트까지 생겨 바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일상이 되었다.


  손을 곧게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뭉실뭉실한 구름이 둥둥 뜨는 날에는 늘 연어 아보카도 초밥을 사들고 나만 알고 싶은 장소를 찾았다. 새하얀 벤치에 앉아서 에메랄드빛 바다에 반짝이는 윤슬을 멍하니 바라보자면 근심으로 어지럽던 마음속은 어느새 고요해졌다. 소리 없는 아우성에서 벗어나면 볼펜을 들어 일기장을 끄적끄적 써 내려갔다. 새소리, 바람 소리에 맞추어 살랑살랑 춤을 추는 파도를 오롯이 두 눈으로 담기도 했다.


  먹구름이 낀 어둑어둑한 날에도 바다를 찾았다. 시내에서 가까운 워터프런트에서 쭈구려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핫초코를 홀짝 마셨다. 서럽게 울고 싶은 날에는 성난 바다로 첨벙대는 파도에 휩쓸려 눈물을 집어삼켰다. 갈매기의 걀걀대는 소리를 듣고 바다 내음을 맡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여름에는 설렘을, 가을에는 향수(鄕愁)를, 겨울에는 성장을, 봄에는 희망을 주던 뉴질랜드 바다. 그렇게 바다 앞에서 나 홀로 타향살이를 버텼다.


  바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 바다는 사시사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계절에 따라 매력을 발산해서 바닷가 마을에 정착하는 꿈을 꾸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고운 모래를 밟으며 푸르른 바다를 바라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평화로운 것도 바다가 주는 위로 때문이겠다. 바다는 지구에서 얄랑이며 떠도는 영혼의 안식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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