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돈은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생기기도 하지만 시간은 오직 일직선으로 흐를 뿐이다. 하루가 지나면 내일이 되고, 내일은 모레로 이어지며, 일주일이 쌓여 한 달이 되고, 어느새 일 년이 지나간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변치 않는 진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시간을 아낀다는 건 무슨 뜻일까? 생산적인 일에만 몰두하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더 깊은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을까? 우리는 시간을 좇아야 할까, 아니면 시간에 쫓겨야 할까?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다.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성적 장학생이라는 이유로 공부에 매달렸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얼떨결에 취업 준비생이 되었고,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하루가 모여 ‘월급’이라는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번아웃으로 점차 무너져갔다. ‘꿈’이라는 단어에 설레는 건 왠지 실례인 듯한 어른이 되었다. 목적도 없이 시간에 쫓기다가 공황장애로 삶의 끝자락까지 내몰렸다. 당장 살기에 급급한 일상으로 돈을 먼저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라이언을 만나 비로소 삶의 용기를 얻었다. 그의 응원 덕분에 직장을 내려놓고 수중에 남은 돈과 시간을 들여 ‘나’를 찾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시간과 돈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 ‘갓생’처럼 계획을 빼곡히 세웠다. 빈틈없이 층층이 쌓인 계획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이 멋쩍였다. 휴학 한 번을 하지 않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사실은 안정된 직장, 화목한 가정, 내 집 마련과 같은 타인이 그려놓은 결승선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혹은 남들보다 한발 앞서야 겨우 입에 풀칠하는 세상에서 쉬는 것이 욕심일까 두려웠다. 이러한 강박에 이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나를 놓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원초적인 본능을 따르기로 했다.
동물이 동면하듯 겨울잠을 청했다. 온종일 늘어지게 자는 것에서 진정한 쉼이 시작되었다. 고전 소설에 푹 빠져 밤을 지새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서 시청하기도 했다. 카페 호핑으로 커피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바리스타 수업을 들었다. 부모님과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 하루와 함께 여행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 틈틈이 글을 썼다.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나’라는 사람과 ‘라이언’, 그리고 ‘우리’가 동기가 되었다. 오락가락하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태블릿 앞에 앉았다.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며 불안을 잠재웠다. 글과 친하게 지내며 자존감을 쌓아갔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 글쓰기를 이어 나갔다.
‘한번 해 볼까?’ 하며 머릿속에만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조금씩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말라카에서 재택근무를 구하던 중 온라인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고 있다는 공고를 확인했다. 경력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학점 은행제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을 공부하고 있어서 경험 삼아 한국어를 가르쳐 보고 싶었다. ‘뭐라도 해 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연 강의를 촬영하고 면접을 거쳐 햇내기 한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외국인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일에서 처음으로 ‘보람’이라는 가치를 얻었다. 서툰 한국어로 수업을 열심히 따르는 그들에게서 자부심을 가졌다. 개인 사정으로 한 달간 일했지만 도전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만족감이었다. 역시 무엇이든 해 봐야 안다.
'나'라는 사람을 위해 오롯이 시간을 보내며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사색하며 무엇이든 시도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이 금이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정의하며 그것에 체화되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이고 어떤 일에 시간을 쏟을 것인지 선택하는 일은 전혀 가볍지 않다. 중요한 건 시간을 각자의 기준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다. "시간이 금이다"라는 말은 결코 서두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걸음 멈춰 서서 시간을 두고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시간은 내 삶을 빚어내는 가장 소중한 재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