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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곤 Dec 01. 2024

아이돌 폭로 (2)

단편소설















아, 예. 오랜만이네요.


저번에 인터뷰가 화제가 돼서 스케줄이 엄청 늘었어요. 다 피디님 덕분입니다.


(오랜만에 본 A는 피부색이 밝아졌고, 방송인 특유의 귀티가 물씬 흘러나왔다. 6개월 만에 분위기가 밝아진 것 같다고 칭찬했더니 A가 미소를 지었다. 왠지 연기 같았다)


요 근래 근황이 어떻냐고요? 음, 역시 월드투어 일정이죠.


그룹 일정 말고, 제 개인적인 근황이요? 아, 이 인터뷰에서는 그렇죠. 죄송해요. 피디님.


(A가 갑자기 저 멀리 전화를 받고 있는 매니저의 눈치를 봤다. 그러더니 나에게 가까이 와선 속삭였다. 얼마 전 A가 앰버서더로 선정된 향수의 향이 은은히 콧가를 자극했다)


한 달 전에, 처음으로 공황이 왔어요.


(내가 놀라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A는 안심한 듯했다)


정신과에 가려고 했는데, 깜빡 잊을 뻔했어요.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걸.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썼어요. 그런데도 도저히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멤버들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매니저한테 부탁했어요.


왜냐고요? 아파봤자, 앞으로 있을 스케줄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니까요. 지금 당장 1년 치 스케줄이 빽빽해요.


(그래서 정신과는 갔냐고 물었더니, A는 고개를 저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저를 소비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어떻게 확신하냐고요?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피디님이니까 말씀드리는 거예요. 피디님은 저를 이용해 소비할 프로그램을 만드는 분이고, 정신과 다니는 A라는 키워드는 피디님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A의 눈에는 몇 달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냉기가 흘렀다. 그는 근 바빴던 몇 달 사이 방송계의 이치를 깨닫고 말았다. 나는 차마 부정도 못하고 그런 A를 보기만 했다)


이 이야기는 인터뷰에 싣지 말아 주세요. 하도 답답해서, 피디님에게라도 말하고 싶었어요.


죄송해요. 버릇없어 보이셨죠. 그래도 피디님은 저를 배려해 주시는 분인데.


음, 어제 제가 읽었던 책에 대해 말씀해 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그의 인터뷰는 그런 게 아니었다. 솔직한 그의 모습이 중요했다)


바빴던 몇 달간 기분 나빴던 일들에 대해 말해달라고요?


뭐 - 수도 없이 많죠.


그래도 하나라도 말해달라고요?


어디 보자.... 아. 얼마 전에 대본이 들어왔어요. 드라마 대본이었고 배우들도 엄청 짱짱했어요.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작가님이 미팅을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아, 네. 맞아요. 그 드라마. 아시네요?


(실은 그 작가에게 A를 추천한 게 나였는데, 비밀로 하기로 했다. A의 얼굴에 묘하게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작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거짓말로 벌어먹고 사는 게' 직업인 A 씨는 아마 이 역할을 아주 잘하실 거라고. 연기랑 비주얼도 괜찮으니 호평도 얻을 거라고.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오고 싶었는데 그냥 듣고만 있었어요. 저는 을이니까. 소비되는 자원 중 하나니까.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짓말. 그 단어 하나가 내 인생을 싸잡아 말하는 것 같았어요.


내가 운동해서 몸을 만들고, 스타일을 바꾸고, 탈모가 올 때까지 탈색을 하고, 뼈가 부서지도록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던 그 모든 게 거짓말이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보이는 것들을 빼고는 나에게 남는 게 없더라고요.


그 모든 것들을 빼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내가 뭘 하는지 생각해 보면. 없어요.


그럴 시간도 없으니까. 비어진 시간은 쪽잠을 자느라 바쁘고, 좀 쉰다 싶은 날은 연습실에 가서 안무를 배워야 하고, 녹음해야 하고. 어쩌다 오랜만에 집에 가면 또 쓰러져 자느라 기억이 없고.


(A의 목소리가 가라앉고 숨을 먹었다. 공항이 올 것 같아, 손을 들어 A의 어깨를 붙잡았다. A의 눈이 붉어져있었다)


이게 언제 끝날까요? 나 성공했잖아요.


근데 왜 끝났으면 좋겠죠?


(그때, 멀리서 작가가 나에게 눈치를 줬다. A의 다음 스케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피디님은 어떻게 하실 것 같아요?


...... 하하. 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아, 가야 한다고요?


... 가끔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


(내가 명함을 내밀자 A가 꾸벅 인사를 하곤 명함을 받았다. 언제 한번 술을 사주겠다고 하니, A가 웃었다. 인간미 있었다)


다음 인터뷰가 또 언제 될지 모르겠네요.


상담받으라고요?


아.. 피디님이 다니시는 곳 알려주신다고요?


감사합니다....


네.


인터뷰 아니어도, 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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