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lumnlist Dec 08. 2023

모든 콘텐츠에 흡연이 있다.

영화, 드라마에 담배가 왜 나와...?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보려 노력하고 있다. 그 옛날 영화인 [태양은 가득히]에서도, [은행나무 침대]에서도, OTT 드라마에서도, 심지어 노래 가사에도 담배가 나온다. 이 18 것들. 이쯤 되면 모든 콘텐츠는 흡연 권장 콘텐츠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초적인 카우보이가 '말보로맨'이 되어 담배를 피우며 홍보하던 것을 이제는 잘생기고 예쁜 배우가 대신해 주니, 담배회사는 얼마나 좋을까. 돈이 쭉쭉 들어오는데. 심지어 말보로맨은 1998년 미국 법이 개정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흡연 장면을 넣는 것을 표현의 방식으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흡연을 조장하는 잘못된 장면으로 봐야 할 것인가. 일단 담배를 피우면 멋있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담배는 고독한 한 인간이 처량히 뱉는 한숨. 이딴  미사여구가 사라져야 한다. 칼부림이란 단어를 '막장 인생 인간 말종의 븅x 짓거리'로 명명해야 한다는 의견처럼, 멋있는 장면엔 흡연 씬을 넣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몸이 아파서 혹은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아서 금연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아, 담배를 피우고 싶다'라는 생각보다는, '피우고 싶으면 피우지 뭐. 근데 지금은 딱히 피우고 싶지는 않네'였다. 그땐 흡연을 하는 장면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었다.

지금은 다르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 욕망하고 갈망한다. 혀 끝으로 탐닉하고 싶다. 폐 세포 하나하나에 담배 연기를 기록하고 싶다. 코 끝에 남는 텁텁함을 다시 느끼고 싶다. 입 안에는 타르를, 뇌 안에는 니코틴을 주입하고 싶다. 그런 욕구를 거역하는 중이다. 담배 대신 마이쮸나 연양갱을 씹으며.

여러분, 그래도 1주일 넘게 금연 중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전 제가 기특합니다. 스스로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겠습니다.


금연하니 좋은 점.


1. 혀의 미뢰가 굉장히 예민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별생각 없이 먹었을 음식도 특유의 비린내나 이상한 끝맛이 느껴진다. 특히 고기류가 그렇다. 내 생각보다 그리 맛있지 않았다. 특히 자극적인 음식들.


2. 코가 굉장히 예민해졌다.

내가 사는 곳은 복도식 아파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생선 비린내가 났는데, 우리 집 쪽으로 가면 갈수록 냄새가 진해졌다(엘리베이터와 우리 집의 거리는... 한 30-40 발자국은 걸어야 된다. 내 키가 175니까... 한 걸음 당 대충 90CM 되려나). 문을 여니 생선 비린내가 똬악! 코가 굉장히 예민해졌다.


3. 숨이 잘 안 찬다.

복싱을 하는데 코로 숨이 쉬어졌다. 예전엔 입으로 마시듯이 들이쉬었어야 했는데. 지금은 코로만 쉬어도 충분하다.


4. 덜 피곤하다?

이건 기분 탓? 타라닷닷?


금연하니 안 좋은 점.


1. 멍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상실의 시대]의 마지막 장면 같다. 어디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 채 미도리를 외치는. 지금의 내 상태와 비슷하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싶다.


2. 집중이 안 된다.

특히 글을 쓸 때,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집중이 안 된다. 분명 캐릭터의 고유 말투가 있고 특정 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행동하는 장면이나 말투가 잘 연상되지 않는다. 흡연을 했을 땐 그 모든 게 명확하게 연상됐었는데.


3. 불안하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다. 쉬는 시간엔 흡연을 했었는데 지금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먹는다. 집에 있는 거 아무거나 주워 먹는다.


4. 사람이 멍청해진다.(feat. 브레인포그)

이게 제일 큰 문제인 것 같다. 분명 어떤 특정 단어를 이때 사용해야 하는데, 그 단어가 잘 안 떠오른다. 보통 '마'가 낀다고 하는 것처럼, 대화 중에 마가 낀다. 말을 해야 하는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외쿡인처럼 말 중간중간 'umm... ah... hmm...' 심지어 'you know...' or 'it seems like....'를 넣는다. 이쯤 되면 '금연을 하게 되면 인종이 바뀌는 걸까?‘하는 의문과 함께, 국수주의가 단전에서부터 올라와 담배를 피울 명분을 만들어준다. 한국인이니 담배를 피웁시다. 담배 피울까? 피까? 피카? 피카피카?





세계에서 가장 큰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의 현재 슬로건은 [담배연기 없는 미래를 만듭니다]다.

요 오... 브로... 담배연기 없는 미래라니... 버거 없는 미래를 만듭니다 - 맥도날드

 담배 회사에서 담배연기 없는 미래를 만든다고? 무슨 말인가 보니, 우리는 더 이상 'Smoking'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Vaping', 'hitting'을 합니다,라는 것이다. 'smoking(태우는 것)'은 인체에 해롭다. 하지만 'Vaping(수증기)'는 'Smoking'보다 덜 해롭다. 그러니 우리 모두 베이핑을 하자. 이건 뭐... 비빔밥을 비비면 팔뚝이 너무 아프다. 하지만 섞어밥은 팔을 덜 아프게 섞을 수 있다. 그러니 섞어밥을 먹자.라고 하며 양은 도시락 안에 비빔밥 재료를 넣어 주는 거랑 뭐가 다른 거지. 분명 타르가 없으니 담배보단 나을 것이다. 근데 담배를 피운다는 게 무엇인가? 연기를 흡입하고 뱉는 행위 아니던가? 본질은 같은 게 아닌가?

분명 내가 아는 마케팅은 획기적이고 이악스럽고 악랄할 만큼 자극적인 것이었는데, 요새는 말장난이 마케팅인 것 같다. 마치 상대 당을 깎아내리기에 급급한 초등학생식 말싸움이 되어버린 정치판 같다.

“네가 더 잘못했어. “

“응 아니야~ ”

“응 맞아~ ”

“응 어쩔 티브이~ ”

“응 어쩔 시크릿 쥬쥬 리미티드 에디션~ ”

“얘들아 얘 좀 봐~ 멍청하지 않니? ”

“응 네가 더 멍청해~ ”

“응 아니야~ ”

“몰?루 ㅋㅋ루삥뽕 웨쮀뤠궤~”


 

아, 재미없다. 담배가 없으니 모든 게 재미없다. 의욕이 나지 않는다. 아... 담배. 아... 담배... 시작하지 말걸...


금연을 성공하게 되면 다음엔 라면을 끊을 예정이다. 하루에 두 끼를 먹는데 두 끼 모두 라면을 먹는다. 아... 담배보다 라면이 끊기 더 어렵다. 금연 다음은 라면, 라면 다음엔 디지털 디톡스다.


구랭, 네 덕분에 힘이 나는구낭 :)


이전 01화 보건소에 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