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 끝에 돌아온 운명 같은 나라
8년이 넘게 살아온 네덜란드는 참 살만한 곳입니다. 코털만큼도 관심이 없었고, 아는 것도 하멜표류기와 풍차가 전부였던 적이 있었는데요. 어쩌다가 여기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저도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어쨌든 살다 보니 계속 살게 되는 괜찮은 곳이 이 나라예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밌는 점도, 좋은 점도 많은 나라. 그래서 적어봅니다. 제가 네덜란드에 오게 된 운명 같은 이야기. 그리고 혹시라도 유럽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이주를 하고 싶을 때 네덜란드를 추천하는 이유.
처음으로 네덜란드가 저에게 어떤 인상을 준 것은 대학 시절 후루룩 넘겨보던 건축잡지에서였어요. 엉뚱하지만 말이 되는 게 건축물에는 정서와 문화가 담겨있잖아요. 네덜란드 현대건축들의 진보적인 형태, 실용적인 미학,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은 제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처럼 느껴졌고, 그냥 느낌이 그때 표현으로는 '코피 나게 한다'라고 할 만큼 매혹적이었죠.
네덜란드와 처음 어긋난 것은 교환학생을 갈 기회가 주어졌을 때였어요. 당시 암스테르담 대학에 갈 수 도 있었지만 타의로 유럽도 아닌 미국 시애틀에 가게 되었죠. 만약 그때 암스테르담 대학에 갔었다면, 지금의 남편과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됐었을 거예요. 그러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그 후 암스테르담에 대한 생각은 까마득히 없어집니다. 서울에서 첫 직장을 가질 때까지요. 취업준비를 하면서 '역시 난 유럽이 좋다'는 생각에 꿈의 직장 조건을 만들었죠. 그중에 하나가 유럽계 회사일 것이었어요. 그리고 본 첫 구직공고가 한 유럽계 회사의 것이었고, 그 회사는 마침 암스테르담에 본사가 있었더랬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 그 회사에 들어간 것이 지금 제가 네덜란드에 사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하지만 그 지사와의 인연은 3년을 가지 못했어요.
네덜란드 사람들과 네덜란드 문화를 조금씩 경험하던 차, 전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가기로 했습니다. 지원서는 런던과 암스테르담에. 하지만 암스테르담 대학은 또 연이 아직 아니었는지 전 런던에 갑니다. 이번에는 제 선택이었어요. 런던이 대학원 과정이 짧고 취직하기 용이할 것 같았거든요.
런던에서의 빡센 대학원 생활 후, 전 꿈에 그리던 유럽 취직의 관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선택지는 밀라노, 아니면 암스테르담. 런던에서는 잘 안 풀렸어요. 제게 선택지는 당연히 암스테르담이었죠. 대학시절 경험한 모종의 동경과, 일하면서 받은 괜찮은 인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회사가 시내에 있고 영어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게 큰 이유였어요.
이렇게 돌아돌아 오게 된 암스테르담. 하지만 적응하는 데는 한 2년은 걸린 것 같아요. 사소한 예로는 처음에 출근 할 때에는 검정색 스틸레토를 신고 지하철을 타고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다가, 언젠가부터 운동화를 신고, 자전거를 타고, 노트북은 회사 락커에 넣어두고 다니게 되었죠! 시간이 흐르며 이 나라의 자유와 낭만에 동화되고 친구도 생기고 나름 네덜란드가 익숙해졌지요. 물이 들었달까요? 하지만 네덜란드는 언제든 떠나려면 떠날 곳이었어요. 승진과 함께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중국 상해에 있었을 때 뒤돌아보지 않고 결정을 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요. 하지만, 떠나기 두 달 전!! 네덜란드 사람인 지금의 남편을 만납니다. 그래도 계약서는 이미 싸인이 되었으니! 전 상해로 떠나고...
우여곡절 끝에, 저는 암스테르담이 아닌 또 (!) 런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남친따라 런던 갔지요. 그가 1년 사이에 그리 회사를 옮겼거든요. 전 런던 생활이 힘들더라고요. 한 번은 취준하는 대학원생으로, 또 한 번은 사업가로 (제 사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사는데 두 번 다 너무 어려운 길이었죠. 취준도 사업도. 결국 사업은 그만두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는데요. 십 수통 넣은 서류 중 딱 2개가 네덜란드에 있는 회사에 넣은 것이데, 참 흥미롭게도, 운명인지 무엇인지, 저는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영국회사에서 눈 돌아갈 오퍼를 받게 되었습니다.
서울 -> 런던 -> 암스테르담 -> 상해 -> 런던 -> 암스테르담이라는 모종의 루프 인지! 런던에 남을 것인지, 암스테르담에 갈 것인지의 기로에서, 남편이 이번에는 너를 따라 가자하고 다시 네덜란드에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다닌 네덜란드 회사 덕에, 유럽 본사에 취직을 하고, 그 회사의 네임벨류는 네덜란드에 위치한 회사가 더 잘 알기 때문에 런던이 아닌 암스테르담에 다시 또 취직을 하게 된 건 아닌가, 그래서 그 첫 단추가 중요했던 건가 싶었어요.
하지만 여태껏 네덜란드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살면서도 언젠가는 떠날 나라, 엇비슷한 덴마크 코펜하겐에 가면 더 좋겠지만 적당한 타협을 한 듯한 곳, 이렇게 생각을 했죠. 자전거를 타고 물이 많은 평지의 북유럽 도시인 것은 비슷해도 코펜하겐은 사람들이 더 멋이 있고, 덴마크의 가구나 음식은 정말 괜찮거든요. 때로는 고요한 곳에 위치한 노르웨이의 별장을 꿈꿔보고 세금이 적은 싱가포르나 스위스에 살아보면 좋을 것 같고요. 하지만 저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된 제 반쪽은 서울 북촌을 사랑하고 김밥나라의 찐팬이고 요즘도 종종 동네 짜장면집에서 먹은 군만두를 그리워하더군요. 그러면 다시 한국에 갈 수 도 있겠구나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인지, 남편을 만나고 모종의 루프를 깨며 암스테르담 근교의 나든으로 이사를 왔지요. 아이가 생기면서 그동안 물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던 네덜란드어 공부도 진짜 해야 할 이유가 생겼고요. 아무리 영어가 통해도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 이방인이거든요. 우리 아이를 위해 이제는 관찰자의 편안함에서 벗어나 네덜란드 사회에 참여할 때라는 게 부담스럽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돌이켜 보니 네덜란드만 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싶네요.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만한 나라이고요.
개인적인 이유 몇 가지를 들어볼까요.
- 직설화법의 나라. 의중을 파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어떤 화법에나 장단점이 있기는 하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때 강약을 조절하면 좋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필터가 없다고 많이들 해요. 생각난 대로 말하는 거죠. 그래서 상처받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추측하거나 의중에 맞게 행동하느라 답답할 일도 없어요. 특히 이게 좋은 때는 직장 다닐 때죠. 직급이 무엇이든 누구 하고나 편하게 소신껏 이야기하면 되는 게 숨통이 트인 달까요. 눈치를 보는 것이 삶이나 직장생활에 필요할 수 있지만 눈치라고는 한 톨도 없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자기 중심주의를 겪어보면, 뭐, 내 인생 내 뜻대로 내 원하는 대로 하고 안되면 또 해결해 보지, 이런 시원시원함이 장점으로 느껴집니다.
- 워라밸이 좋은 나라
국경일은 우리나라 보다 적습니다. 하지만 개인사정에 맞추어 출퇴근 시간, 사무실에 오는 날짜 맞추는 게 통상적 근로조건인 건 여기가 참 좋죠. 근무시간 외에 일 관련 문자나 메일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입니다. 걸핏하면 인격모독하는 상사도, 퇴근 시간에 일을 왕창 주는 사수도, 기를 빨리는 억지 비위 맞추기 회식도, 야근도 없습니다. 막내라고 심부름하고 복사 뜨고 제일 늦게 퇴근해서 충성심을 표할 일도 없습니다. 말도 안 되게 빨리 끝내야 하는 업무도 드뭅니다.
원한다면 한국에서 하던 야근, 빨리빨리, 초과근무, 상사에게 선물하기, 여름에 아이스크림 쏘기, 회식, 주말 워크숍 등 모두 다 할 수 있지만, 그게 정말 원하다면 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라는 게 차이일까요. 그렇게 하지 않고도 능률을 내고, 사내친목을 쌓고, 승진할 수 있어요.
제가 느낀 네덜란드의 워라밸, 즉 일과 삶의 균형은 모종의 회사정책을 넘은 의미입니다. 일은 일, 삶은 삶.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살면서 일하기. 이 태도 덕인지 일을 위해 가족이나 개인의 건강 혹은 꿈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또 각자의 인생 설계에 일이란 어떤 의미인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그에 맞게 바른 진로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 직업이 무엇이든 중산층으로 살 수 있는 나라
네덜란드는 부유한 나라죠. 빈부격차도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어느 시골을 가도 정원이 가꾸어져 있고, 누구를 만나도 그 이의 말과 표정에서 사람들의 자부심이 느껴져요. 그 이유는 삶이 핍박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기술을 배우는 고등학교를 나오든, 대학을 졸업하든, 한 사람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달라도 그 기여가 어느 것이 더 중하고 아니고 할 수 없겠죠. 그래서 돈을 많이 벌 수록 내야 하는 세금도 많습니다. 그렇게 이루는 것이 모두 평등하기를 추구하는 이 나라가 아닌가 싶어요. 물질적, 정신적으로 상대적 빈곤이 덜 해서 그런지 ‘상류층’에 들어가고 싶어 명품을 산다든지 지독한 인고의 시간을 지내고 선망하는 직업을 갖는다든지 하는 일이 드뭅니다. 사람들도 마음의 여유가 있고요.
- 가정적인 나라
가족이 있다면 무엇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특히 부부가 함께 가정적인 게 좋지요. 부부의 공동 육아, 공동 가사를 통해 남자와 여자 모두 아이에게 책임을 다해요.
이곳에서는 아이가 어릴 때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하면 파트타임을 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흔히 남편과 아내가 주 5일 대신 4일 근무를 해서, 일을 안 하는 1일이 마마다흐 (Mamadag 엄마날) 혹은 파파다흐 (Papadag, 아빠날)로 엄마나 아빠가 하루씩 번갈아 가며 애를 봐요. 그래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3일만 가게끔 하려는 의도래요. 어린이집에 5일 보내는 부모는 매우 드물다고 해요. 사회의 근본이 되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데에 가정적인 부모가 필요한 걸까요.
- 이웃끼리 인사하고 담소하는 나라
모든 게 계산 확실한 더치페이일 것 같고 마음도 차가울 것 같은 코쟁이 네덜란드 사람 같아도 은근 정이 있어요. 매해 1월에 달력을 사서 누구의 생일이 언제인지 노트하고 화장실에 걸어두고 손수 카드를 적어 준다든지, 남의 결혼기념일을 살뜰히 챙겨 축하해주기도 하고요. 저희 동네 이웃들도 얼굴하고 이름도 잘 모르는 사이인데 아이의 탄생을 축하한다며 선물과 카드를 보내주었어요. 상점의 사람들과 안면이 트면 (우리네 어머니들이나 하시던) 잡담도 가능하고요.
특히 암스테르담이나 대도시를 벗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끼리 얼굴 보고 인사를 하는 게 참 좋더라고요. 공원이나 산에서 마주쳐도 인사하고요. 무표정, 무덤덤, 자신만의 세상에 살지 않고 이웃이 이웃이라는 게 느껴진달까요. 전 아직도 인사가 입 밖으로 잘 안 나와요. 최대한 노력하지요. 어느 날은 용기를 내다가 저녁에 “후드미다” (Goedemiddag, 낮 인사)를 건넸는데 정원 손질하다가 눈이 맞은 할머니도 절 따라 낮인사를 했지요. 그리고 둘 다 아 이제 저녁이니 ”후드아본드“ (Goedeavond)구나! 이러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어요.
-가로수, 물, 자연이 푸르른 나라
물론 비가 그치지 않아 습해서 뼈가 다 시린 겨울이 6개월인 나라지만, 이곳의 늦봄과 여름은 우리나라의 가을처럼 찬란하게 눈이 부셔요. 서늘하고 시원한 기온처럼 하늘과 대지도 싱그럽고요. 날이 좋은 날 가로수가 촘촘히 심어진 운하를 따라 자전거를 타면 자유롭고, 설레고, 사랑에 빠지는 기분입니다. 꽃의 나라답게 정원이나 공원마다 꽃도 잘 되어있어요. 눈부신 햇살 아래서 운하로 다이빙하며 노는 아이들이나 보트를 타고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행복해져요. 간척으로 땅을 만들어야 하는 나라고, 인구밀도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편인데도, 어디를 가든 자연이 가깝습니다. 10분, 20분 차를 타면 나무가 우거진 숲이나, 해안을 따라 펼쳐진 모래 언덕을 걸을 수 있죠. 인공적으로 가꾸거나 관광지로 개발한 자연이 아니고 그냥 내버려둔 자연이요. 그런 곳을 산책하며 재충전하는 게 남녀노소에게 즐거움이에요.
- 인종차별이 적은 나라
뭐랄까요, ‘굳이’ 무엇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자기 살기에 집중하지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먼 옛날에도 유럽의 유대인들은 종교에 대한 관용과 차별이 덜 했을 네덜란드로 도피해 왔는데요. 타인과 사회에 해를 주는 게 아니면 개인의 색깔대로 살 수 있는 게 이곳입니다. 동성애자의 결혼, 동성애 커플의 입양도 빠르게 허용한 나라기도 하죠. 그만큼 인종에 대한 차별도 덜 합니다. 인종 가지고 누가 사회에 해를 입히는 게 아니니까요. 사람이 사는 곳인 이상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죠. 그리고 ‘즈와트피트’처럼 (Zwartepiete) 무신경한 면도 있습니다.
- 작은 데 모든 게 있는 암스테르담
서울의 면적이 605 제곱킬로미터에 인구가 천만인데 비해 네덜란드의 가장 큰 도시 암스테르담의 면적은 219 제곱킬로미터에 인구는 백만도 되지 않아요. 런던, 베를린, 파리에 비하면 아주 쬐끄만한 곳이죠. 어느 날은 암스테르담을 걸었는데요. 하루동안 남쪽에서 북쪽으로, 동쪽에서 중심으로, 다시 남쪽으로 걸었었어요. 어느 정도냐면, 삼만보를 넘게 걸어서 다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앞으로 뒤로 갈 정도였어요 ㅎㅎ. 그런데 도시를 거의 다 봤더라고요. 그렇게 작은 곳임에도 여느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빼곡합니다. 특히 지난 10년 간 아주 빠르게 요식업이 발달했는지, 레스토랑의 선택지도 풍부해서 어느 나라의 음식이든 먹거나 배달시킬 수 있고, 맛 좋은 에스프레소도 흔해졌죠.
끊임없는 이벤트나 페스티벌도 많고요. 유럽에서 면적 대비 박물관이 가장 많은 곳이 네덜란드라고 하더군요. 램브란트, 고흐, 베르미어를 비롯한 역작을 볼 수 있는 미술관들은 유명하고, 길 사이사이로 운하박물관, 튤립 박물관 등 갈 곳이 끝이 없는 게 암스테르담입니다. 시골의 작은 동네에도 박물관, 미술관이 있어요. 또 유명한 밴드나 뮤지션이 암스테르담에 자주 오는데요. 단독 공연이나 페스티벌에서 음악에 흠뻑 젖는 게 또 즐겁죠. 무명의 가수나 인디 음악가들이 설 공연장도 많아서 10-20유로 저렴한 가격에 거의 매일 콘서트를 가는 것도 가능해요.
암스테르담은 도로를 설계할 때 자전거로 가면 자동차보다 더 빠르게 갈 수 있도록 했다는데요, 자전거를 자유롭게 타게 되면 손바닥만 한 도시를 쉽게 이동하면서 그 모든 걸 누리기 좋아요.
- 영어와 스키폴 공항이 주는 편리
영국처럼 고급 영어를 안 써도 되는데 어디를 가든 영어로 사는 데 문제가 없는 곳은 네덜란드, 일부 북유럽 국가뿐일 거예요. 하다 못해 관공서 안내전화도 영어와 네덜란드어 중 선택할 수 있고요. 시골 슈퍼에 가서 영어를 해도 물건을 사는 데 막힘이 없어요. 요새는 오히려 네덜란드 사람들이 불평하더군요. 샵이나 레스토랑에서 점원들이 영어만 하고 더치는 못 한다고요. 하다 못해 국제공항인 스키폴의 어떤 안내판에는 영어로만 적혀있기도 하죠. 편리해요. 사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 스키폴과 편리함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만약 유럽에 있으면서 여행을 하고 싶다면 네덜란드만 한 곳이 없어요. 암스테르담에서 30분이면 공항에 도착하니, 주말에라도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는 게 스키폴 덕이지요. 유럽에서 가장 바쁜 공항 (그만큼 오가는 비행기가 많다는 이야기죠) 3위라네요.
언젠가 네덜란드에서 같이 근무하다가 스웨덴에서 잡 오퍼를 받은 프랑스인 직장동료가, '내 친구도 여기 있고 왜 떠나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여기 만큼 괜찮은 곳도 없는 것 같아. 날씨가 안 좋지만, 여름이 있잖아. 만약 1년 내내 이곳 여름 날씨라면 사람들이 여기서 살려고 몰려들겠지. 난 그 건 또 싫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리고 리투아니아 출신의 집주인은, 한창 유럽에서 테러가 번질 때, '세상에 안전한 곳이 없어! 여기뿐이야. 사파티 공원 (암스테르담 남쪽의 공원) 앞'이라고도 하고요. 이렇게 한 번 오고 살다 보면 빠지게 되는 매력 있는 곳이 네덜란드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자유롭게 산책하면서 같이 놀자는 네덜란드 고양이들만큼 매력적인 게 또 없죠!
이 브런치를 통해서 혼자 알고 있기 아까운 네덜란드의 매력이 총천연색으로, 하나 하나, 양파껍질 까듯 보여지면 하는 바람입니다. :-)
[브런치북] 네덜란드 사는 재미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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