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도 누리는 일상의 즐거움
네덜란드 사람들은 돈을 어디에 얼마나 써야 할지 굉장히 정확한 편이에요. 생일 선물 예산은 인당 얼마까지 써야 할지도 짜여있으니, 지출에 대한 자세가 계획적인 편이죠. 그리고 최대한 적은 돈으로 최고의 효과를 보려는 마음이 있어요. 주택에 산 후로는 거의 매달마다 대표적인 리테일에서 하는 할인 뉴스/쿠폰카드를 받아요. (저희는 온라인으로 할인을 알아봐서 이제는 수신 거부 했습니다~ 우편물 받는 투입구에 Nee Nee라는 스티커를 붙이면 돼요) 이런 할인에 민감한 게 또 이 곳 사람들이죠. 듣는 이야기로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하도 할인에 혈안이라, 권장소비자가격이 다른 유럽의 나라보다 높게 잡히고, 이걸 연중 할인하는 방식으로 물건을 판다고 하더군요. 슈퍼마켓에서 파는 샴푸 하나가 10유로가 넘다가 1년에 2-3번 50% 할인을 하는 걸 보면 그 말이 사실인가 보다 싶어요. (모든 브랜드가 그렇지는 않아요.) 이러다 보니, 돈을 아끼려고는 물론, 눈 뜨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할인과 비할인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게, 또 이런 식으로 네덜란드의 짠돌이 문화에 흠뻑 젖어버리는 것 같지요. ㅎㅎ 실제로 할인할 때 많이 사두는 게 훨씬 더 말이 되더랍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훨씬 더 고가의 물건과 귀중품에 대한 문화 혹은 전통이 있는 것 같아요. 보석이나 명품 혼수... 돌맞이로 주는 금반지... 특히 이렇게 몸에 걸치는 물건에 의미를 두고 조금 무리해서라도 신경을 쓰는 것 같은데요. 네덜란드의 혼수나 돌맞이 선물은 보통 '필요한 물건'이죠. 특히 비가 많이 오고 겨울이 1년의 절반인 나라에서 멋진 옷은 너무 실용적이지 않아 아무리 부자 동네에 가도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래도 자본주의 인간(?)이라면 돈을 때로는 쓰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죠. 어디에 돈을 썼을 때 즐거움을 느끼는지는 지극히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지요. 그중에서도 제가 관찰하고 공감한 일상 속 소소한 사치는 이런 거더랍니다.
1. 치즈 플렉스
고국을 떠나 제일 그리워하는 음식이 치즈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치즈 사랑이 각별한 네덜란드는 어느 슈퍼나 시장에 가도 치즈코너가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요. 보통 빵에 올려먹는 네덜란드식 치즈(우리나라 슬라이스 치즈보다 좀 더 단단해요), 그리고 프랑스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 주로 만드는 소프트 치즈 섹션, 이렇게 두 개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토요일에 시장에 가거나 치즈 전문샵에 가면 트러플이 들어간 브리치즈를 사는 사람이 많더군요. 엄청 맛있습니다. 한 뭉텅이 치즈를 사도 5유로 안팎이니, 부담 없이 다양한 종류를 조금씩 사서 와인 안주로 삼기도 좋아요.
2. 꽃으로 화사하게
지난 크리스마스에 빨간색 꽃을 사러 꽃집에 갔는데요, 할머니 한 분이 소나무 자른 것과 꽃을 조금 사며 '이걸로 크리스마스 트리하면 되겠네'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꽃은 이렇게 특별한 날에도 사거나, 특별하지 않은 날에도, 많이 사는데요... 그 이유는 역시 가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슈퍼에서 5유로면 아름다운 한 다발 살 수 있으니까요. 네덜란드는 꽃 무역의 중심지예요. 그래서 꽃 값이 옆 나라 영국에 비하면 정말 쌉니다. 특히 국민 꽃인 튤립은 네덜란드에서 직접 나고 자라기 때문에 시즌만 잘 맞으면 아주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는데요. 알록달록한 색과 꽃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이 어느 거실이건 밝혀주죠.
누구의 집에 초대받아 가거나 선물을 할 때에도 꽃만큼 괜찮은 게 없습니다.
그리고 꽃을 더 오래 가게 하기 위해 항상 설탕물 패키지를 같이 붙여 팔아요. 한 일주일이 지나 꽃이 시들시들해지면 꽃줄기의 끝을 잘라 일반 백설탕을 티스푼 더 넣어주면 꽃이 또 당 보충을 하고 (?) 더 오래가더랍니다. 백설탕이 없으면 황설탕을 넣어도 됩니다... ㅎㅎ
이제 저도 설탕물 팁은 기본이고요. 꽃다발의 일부가 지면 그것만 빼고 나머지 꽃을 다시 정리해 꽃 한 다발 사면 한 3주는 즐거운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사치가 아니고 아주 효용의 끝을 보는 걸까요 ㅎㅎ
3. 떨이의 즐거움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에서는 보기 힘든 5일장 같은 시장이 여기는 곳곳에 많아요. 그리고 운이 좋으면 평소 좋아하던 물건이나 식료품을 떨이에 살 수 있어요. 특히 과일... 오늘은 망고 한 박스가 3유로라고 (보통 슈퍼에서는 한 개에 2유로쯤) 팔고 있네요. 아 임신한 몸만 아니었어도 한 상자 사는 거였는데 말이죠. ㅎㅎ 보통 흥정은 안 하지만, 시식코너가 있거나 (빵류), 하나 맛봐도 되냐고 물어보면 (견과류) 된다고 많이들 해요~
적고 보니, 결국 지출 대비 소비가 주는 기쁨이 최고일 때가 사치인가, 저렴하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네요. 저도 이제 네덜란드 문화가 당연해졌나 봐요...ㅎㅎ이제는 까마득한 한국에서의 첫 직장생활 시기에 어떤 선배가 제가 (나름 프랑스 몽마르트르에서 산) 빈티지 가방을 드는 걸 보고 "누구 씨는 유럽이랑 잘 맞을 거 같아요. 명품백을 안 드네" 이런 말을 했었는데요. (와 돌려 깎기의 고수) 전, 비싸게 산 게 항상 더 낫다는 문화가 없어서 네덜란드가 참 편해요. 내 눈에 아름다운 것, 나한테 기쁨을 주는 물건을 내 기준에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 그럼 되는 거 아닐까요.
물론 멋진 집, 큰 자동차, 해외 가족여행,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밥 먹는 것, 고가의 와인, 호캉스... 여기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돈 쓸 곳은 많습니다. 그래도 비교적으로 멜론이나 수박하나가 십 수 만원 하는 럭셔리 슈퍼마켓도 없고 그걸 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고, 명품거리는 관광객이 대부분인 네덜란드에서, 결국 역설적이게도 이곳 사람들의 보편적인 사치는 아마 차곡차곡 꾸준히 불어나는 통장잔고와 소소한 일상이 아닐까,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