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바 속뜨 국민간식
암스테르담에서 살기 전, 2주간 출장이라는 이유로 이 도시에 방문을 한 적이 있어요. 추운 겨울이었기 때문에 퇴근 전에 해가 져서 저녁 식사는 가끔 호텔에서 먹었는데요. 어느 날은 네덜란드 전통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호텔 메뉴에서 추천을 받았어요. 그리고 나온 메뉴는 크로켓 (Kroket). 그 음식은 문화충격이었어요.
기다란 모양의 튀긴 소시지 같은 것을 가르니 초록색 뀨덕뀨덕한 밀가루 진액이 주욱하고 나오는데 그걸 맨 빵에 쨈처럼 발라 먹는다니! 뜨악스러웠고, 혐오음식만 아니면 음식 가리지 않는 식성에도 ‘이 것만큼은 패스’ 싶을 정도로 찐득하고 텁텁하고 맛 별로더랍니다.
그리고 십 년이 더 흘러… 남편과 점심때 레스토랑에 가면 그 정체불명의 크로켓을 주문해 반반 나눠 먹고 있네요. 역시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입맛쯤이야!
네덜란드의 크로켓이 특이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오늘은 이 나라의 대표적인 국민간식이자 점심메뉴를 소개합니다. 혐짤 주의.
점심 메뉴가 ‘보터햄 (boterham)’, 생 빵 두쪽에 치즈 한 장 끼운 극한의 실용 & 저렴이 네덜란드 식문화인데요.
https://brunch.co.kr/@thenetherlands/5
그것의 딜럭스 버전이 밖에서 사 먹는 크로켓과 빵입니다. 간단한 점심메뉴로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사 먹을 수 있어요.
더치 크로켓은 우리가 알고 있는 크로켓과 비슷한 음식이에요. 하지만 안에 감자나 생선이 들어가지 않고 밀가루를 푼 죽에 자투리 고기와 야채를 넣어 만듭니다. 그 밀가루 죽 (루, roux) 때문에 제가 경험한 꾸덕한 내용물이 만들어진 거였어요. 거기에 고기랑 야채 다진 걸 넣고 튀김옷을 입혀 튀기면 네덜란드식 크로켓이 탄생합니다. 모양이 길쭉하면 크로켓으로 식사용이고 동그라면 비터볼른(Bitterballen)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술안주로 먹습니다. 내용물은 같아요.
크로켓을 길거리 자판기 스낵바(Febo)에서 1-2유로를 주고 사 먹든, 레스토랑에서 8-10유로를 주고 사 먹든 겨자소스가 필수입니다. 튀긴 간식거리를 좋아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어떤 튀김이냐에 따라 곁들이는 소스에 진심인데요. 크로켓과 비터볼른은 무조건 겨자소스입니다. 실제로 알싸하고 매콤한 겨자소스가 찐득하고 느끼한 크로켓에 잘 어울리고요.
안주로 먹는 비터볼른은 손가락으로 집어 먹는데요. 한 입 베어 물 때 입천장 조심해야 합니다. 안이 보통 무지하게 뜨겁거든요. 크로켓은 점심때 빵에 ‘발라’ 먹어요.
크로켓은 손으로 잡고 한 입씩 먹어도 되지만, 식당에서는 포크와 나이프로 먹어줍니다. 왜냐! 같이 나오는 빵에 떡칠을 해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십 년이 지난 후 먹는 크로켓 맛은 꾸덕하고 고소하고 짭짤하고 바삭하고 푸근하 덥니다. 치즈가 많이 올려진 고기빵이 튀겨진 것도 같고 생빵 맛도 나고 겨자까지 알싸히 어울려져 느끼한 것을 잡아주는 듯하면서도 아주 느끼한… 한 입 먹으면 질릴 것 같아도 자꾸 더 먹게 되는 맛이죠. 김치나 피클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순대처럼 그 나라 안에서는 어디서나 흔하고 만인이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익숙해지고 그 맛에 빠져들기 전까지는 이해되지 않는 음식일까요.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 요새 저희에게 크로켓은 특식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특식으로 감자튀김에 크로켓을 먹었다던 남편과 공유할 수 있는 게 생겨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