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끔) 미치게 하는 네덜란드
여기저기서 듣는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육아의 3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3R (rust, regelmaat, reinheid)이라는데요, 휴식 (rest), 규칙성 (regularity), 청결함 (cleanliness)이 육아에 중요함을 강조하며 나온 말이랍니다. 그중에 오늘은 이 규칙성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트렌디하거나 메트로폴리탄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암스테르담의 가족이 아니라면, 네덜란드 대부분의 가족들은 아침, 저녁 먹는 시간이 딱 정해져 있습니다. 먹는 것도 항상 같습니다. 아침은 빵. 점심도 빵. 저녁은 고기, 감자, 채소.
고기랑 채소가 궁했을 시절 반 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 (Potato eaters)이라는 그림은, 옛적 평범한 사람들의 저녁 식사 모습이었나 싶어요. 아마 저녁 6시예요.
하지만 성인이 되어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자랄 때부터 몸에 베이나 봅니다. 잠에 드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깨서 젖이나 분유를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놀이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야, 아이도 부모도 편하다는 게 지론입니다. 너무 애를 틀에 딱 맞춰 키우는 건 아니냐 싶은 게 우리나라의 정서가 아닐까 싶은데요. 뭐 네덜란드 아이들이 통계상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들이라니,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육아의 방식이겠거니, 합니다.
하지만 이 규칙성, 더 나아가 규칙에 대한 신뢰는 네덜란드에 참 뿌리 깊게 박혀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정이나 이해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라면, 네덜란드는 규칙으로 돌아가는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밥을 사겠다고 카드를 가지고 (아름다운?) 실랑이를 하거나, 고객서비스센터에 사정사정해서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거나, 가격을 깎기 위해 주고받고 해서 서로서로 마음에 드는 가격에 물건을 사고파는 광경이 뭐 익숙합니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그런 게 없어요. 나름의 정과, 이해심이 있지만, 그것으로 규율이나 상식적 규칙을 어기는 것은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느껴지는 게 서비스 퀄리티죠.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을 자주 경험합니다.
"아,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 온라인으로 산 물건이 배달이 지연될 때
"저희 카페 4시에 닫아요. 앉지 마세요" - 3시 30분에 카페를 방문했을 때
"아니. 그건 저희가 일하는 방식이 아니에요." - 업체의 차가 동네를 돌며 방문할 때 사정 상 우리 집을 매일 먼저/나중에 넣어달라고 했을 때
'얄짤 없네', 싶고 또 답답하지만 할 말은 없게 만드는 말들이죠. 결국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는 고객을 위해 좀 더 뭘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건데 또 그걸 강요할 '규정'이 없으니까요.
얼마 전 고국에서의 휴가를 마치고 네덜란드로 돌아와 운전대를 잡을 일이 있었는데요. 고속도로의 왼쪽 커브길로 진입해, 표지판대로 속도를 70km/h로 줄여 가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어떤 봉고차가 빵~~~ 소리를 내며 제 앞으로 끼어들었습니다.
남편에게 "저거 나한테 빵한거야?"라고 순수한 질문을 했어요 (초보...ㅠ). 왜냐면 표지판은 70으로 적혀있고, 전 속도대로 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구태여 이유가 없을 때 왼쪽 차선으로 갈 경우 만약 경찰에 걸리면 200유로 정도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아무리 속도를 지켰어도 그 속도로 왼쪽으로 간 것이 이곳 운전자들의 "왼쪽 차선은 빨리 가고 싶은 사람들만"이라는 상식선의 규칙과, 그에서 만들어진 규정에 맞지 않는 거라고 이해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크랙션을 울리는 게 너무 일상적이고, 사실 네덜란드에 비하면 교통법규도 애매한 게 많습니다. 모든 상황에 룰이 있는 네덜란드에서 운전하는 건 사실 언젠가는 딱지 뗄 각오를 하고 하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모르면 손해입니다.
이 정도는 그냥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다른 나라에서 살기로 한 제가 이해하고 맞춰 살아야지 싶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저희가 공들여 만든 정원을 가지고 구청에서 경고를 날려왔습니다. 사이드 정원에 비허가 건축물이 있고, 주차장이 차 2대가 들어갈 5m 길이가 안되어 협소하다며요. 그런데 사실 그런 규정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집을 살 때도, 지을 때도, 키를 받고 공부할 때도 딱 이렇다 하는 규정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자기들만 알고 있는 법을 들이댑니다. 억울합니다. 돈을 들여 변호사를 써서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하거나, 돈 들여서 바꾸어야 합니다. 이 정도 되면 200유로 벌금 주고 교통 법규 배우는 것(?)은 괜찮게 느껴지죠.
이렇게 거미줄, 실타래처럼 엉키고 빡빡한 규칙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곤해지고, 손해 보는 일이 많다 보니 사람들도 좀 남이 규칙을 어기는 것에 민감합니다. 암스테르담 살 적에 자전거를 어떻게 세워두거나, 모는 것에 대해 꼭~~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암스테르담의 갖은 문제는 생각도 안 하고 무슨 몹쓸 죄라도 지은 듯 말을 하는데요. 당하면 아주 불쾌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도 많이 가르침을 당하고, 손해를 봐서, 약자에게 (외국인인 저...) 되갚기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정말, 이웃에게 하나 해가 가지 않는 정원 가지고, 예상 못한 이유로 경고장을 받으니, 아니 그럼 다른 사람들은 저건 어떻게 하고, 저건 왜 괜찮고, 이런 속 좁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네덜란드는 협소한 나라인데 인구밀도가 높아서, 서로 어울리며 사는 것을 중시한다고들 합니다. 이 사람들은 그 어울림을 규칙으로서, 그리고 규칙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에서 찾는 게 아닌가 싶네요. 실제로 네덜란드의 고속도로 풍경은 깔끔합니다. 교통의 흐름이 아주 좋은 편이에요. 그리고 정부가 부잡니다. 이런 식으로 꼬투리 잡아 세금을 띄어가니까요.
어릴 때부터 규칙이 몸에 익은 이 나라의 사람들은 규칙이 없을 때 오히려 불편하겠죠. 양보와 이해도 규칙 다음인 것이 이곳 사람들이 사는 법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