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부터 13일까지(토~일요일) 50번째 생일파티를 하는데 밴드가 연주하지만 이른 저녁에 끝낼 예정이고 그 후부터는 음악을 크게 틀고 파티는 계속하겠다고 했다. 가까이 사는 이웃은 귀마개도 주고 참석 인원이 100~150명 정도 예상하며 단 한 번의 50번째 생일이니 이해를 부탁했다.
아울러 관할 경찰서에도 등록한 상태라는 내용이었다.
토요일에 퇴근하고 집에 오니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는데 쿵쿵 쿵쿵 밴드 소리가 들렸다. 해당 이웃은 우리 집과 직선거리로는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음악 소리, 노랫소리도 크게 들렸다. 신나는 음악이 들릴 때는 나도 왠지 흥얼흥얼 엉덩이도 들썩거렸다.
남편은 e스포츠 이벤트가 있는 날이라 11시까지 게임을 한다고 했고 오후 9시 전에 잠자리에 든 나는 노랫소리가 점점 작게 들리더니 어느새 잠들었다. 내 옆에서 꼭 붙어 자는 둘째 고양이 보리가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깐 깼다. 여전히 들리는 음악과 노랫소리.
많은 사람이 밤에 자다가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음악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려서 잠이 도망가려고 했다.
순간 엄마도 불러준 기억이 없는 자장가를 저 사람들이 나를 위해 불러준다고 생각했다. 뇌는 생각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므로 어릴 적 아이들에게 불러 주었던 자장가를 떠올렸던 것 같았는데 어느덧 새들 소리 요란한 아침이었다.
남편은 밤새 화도 나고 짜증 나서 거의 못 잤다며 피곤하다고 했다. 아침 먹고 낮잠으로 충전하라고 했더니 그래야겠다며 징그러운 놈들 새벽까지 쉬지도 않고 노래를 불렀다며 투덜거렸다. '당신 참 대단해!!' 한마디 덧붙이는 남편.
경기도 전원주택에 살 때였다. 그해 심한 홍수로 계곡물이 범람했고 도로가 파손되어 구간별로 통행금지까지 되었다. 언니가 놀러 왔다가 가는 길에 아이들은 아파트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데리고 갔다.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저녁을 먹고 더 굵어지는 빗방울을 무심히 쳐다보던 남편은 비옷을 입고 삽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길을 만든다고 했다. 집 뒤가 바로 산이었다. 곳곳에 산사태로 집이 무너졌다는 뉴스도 들렸다.
우리 집은 침수 걱정 없다며 그만 들어오라고 남편에게 말했지만, 성격상 비가 그쳐야 집에 들어올 사람이다.
도울 일이 있는지 물어보니 없다며 집 안에 있으라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무심한 눈꺼풀은 나를 삼키고 말았다. 뒤척이다 깼는데 옆에 남편이 없었다. 해는 없지만, 밖은 훤했고 남편은 어제 모습 그대로 우비를 입고 삽을 든 채 마당을 살피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서 아침을 어떡할까 물었더니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초저녁에 물 마시러 집에 잠깐 들어갔는데 쿨쿨 자는 나를 보고 사람인가 싶었다며 '당신 참 대단해!'라고 했다.
걱정이 있으면 잠이 안 왔던 기억도 몇 번 있긴 했지만, 우리 집은 지대가 높은 편이어서 절대로 침수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산에서 여러 방향으로 물줄기가 내려왔다. 비는 그쳤지만, 물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현관 입구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뉴스 보고 걱정했다며 형부랑 언니가 도착했다.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오래 살았던 형부는 삽을 들고 몇 번 움직인 것 같았는데 마당에 물이 순식간에 아래로 빠지기 시작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도 형부의 삽질 몇 번으로 해결되었다. 남편이 밤새 시도해도 못했던 일을 형부는 30분 정도에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일머리 없는 남편은 형부를 '사람인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날 식사를 하며 남편은 어떻게 잠이 오는지 물었다. 넘치지 않을 것 같아서 잤다고 했다. 그러다 넘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또 물었다. 넘치지 않을 것 같아서 잠든 나와 넘칠 것 같아서 밤을 새운 남편과 어떻게 보면 똑같은데 당신도 나처럼 해보라고 했더니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만약 남편이 나와 같은 성격이라면 과연 나는 잘 잤을까? 그렇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남편처럼 밤은 새지 못해도 집 주변을 살피느라 자다 깨다 하지 않았을까? 남편 때문에 더 둔해지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