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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Apr 19. 2023

호주에서 출산하기

호주 소식

남편 후배 중의 한 명인 D가 결혼했다. 그의 아내 H는 한국에서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영어가 아주 부족한 상태였다. 언어가 생각처럼 쉽게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공부한다고 해도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듣고 돌아서면 머릿속이 하얗다.

누군가 말을 하면 들어보았거나 아는 단어 같기도 하지만 뜻을 모르거나 말을 하려고 해도 머릿속은 물론 입 속에서도 요리조리 도망 다니기 일쑤다.


H는 허니문 베이비를 가졌다며 좋아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어느덧 진통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병원에 가서 통역해 줄 수 있냐고 했다. 나의 영어 실력은 통역의 ㅌ 자 근처도 갈 수 없는 상태지만 H보다는 잘한다며 내 등을 후배 차에 밀어서 태우는 남편. 마땅히 대체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병실에 샤워실도 있고 침대에 누워있는 산모에게 기계를 연결하더니 진통의 시간 간격을 체크하며 분만 시간을 예측한다고 했다. 진통이 오자 큰 공을 산모에게 주며 스트레칭도 하고 심호흡도 하라고 했지만, H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로마 오일을 떨어뜨린 도자기 밑에 작은 양초에 불을 붙이자, 아로마 향기가 방에 퍼졌고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었다. 나의 출산과 달라도 너무 달랐지만, 진통이 시작되면 아로마 향이고 음악이고 들리지도 않을 텐데 생각하면서도 좋은 방법 같았다. 진통이 잠잠한 시간에는 산모는 물론 그 방에 있는 midwife(산파), 간호사, 인턴, D와 나까지 향기와 음악을 들으며 안정을 찾았다. 진통이 오면 미드와이프가 심호흡을 길게 길게 산모의 손을 잡고 함께했다. 이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산모의 진통이 5분 이하로 떨어졌다며 모두 손이 바쁘게 움직고 의사까지 들어왔다. 어느새 음악은 come on baby라는 가사가 들리는 빠른 템포의 팝송으로 바뀌었고 산모의 배를 쳐다보며 우리는 너를 만날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나오라며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미드와이프.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엄청나게 놀랐던 일이 있다.


1. 산모를 관장시키지 않았다.

2. 산모 자궁 주변 제모도 하지 않았다.

3. 더 충격적인 사실은 산모를 내진도 하지 않았다. (초음파 검사에 이상이 없을 경우)

마지막 진통인 듯 H는 소리를 크게 질렀지만 아이는 나오지 않았고 의사는 산모의 자궁을 가리키며 여기에 태아의 머리가 있는데 산모가 힘을 자궁에 주지 않고 소리 지르는 데 힘을 쓴다며 자궁에 힘을 주라고 했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태아의 머리 위치를 알려주자, 당황한 나는 나의 출산 경험을 기억해서 힘주는 방법을 설명했다. 드디어 아이의 머리가 보이자, 주사기를 든 의사는 마취할 것이며 약간 그 부위가 쥐가 나는 느낌이 올 수 있을 거라고 설명하라고 했다. 산모에게 설명하자 마취 주사를 놓고 자궁 옆을 절개하는데 그 부위가 생각보다 넓은 것 같아 놀라는 순간 마지막 힘을 강하게 준 산모는 아이를 출산했다.


다들 손뼉 치며 잘했어, 축하해, 건강한 딸이야. 병실은 갑자기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신생아가 울기 시작하자 탯줄을 묶고 자르자마자 엄마의 심장과 신생아의 심장을 만나게 했다. 엄마의 심장 위에 엎드린 신생아는 조용해졌고 피와 분비물로 온몸이 젖고 눈도 뜨지 못하는 아기를 간호사가 수건으로 닦았다. 신생아 샤워는 언제 하냐고 물었더니 다음날 할 것이고, 출산 당일은 신생아가 정신적으로 아주 불안한 상태이므로 엄마의 품에서 심리적 안정을 갖도록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취가 풀리면 산모에게 샤워하라는 의사.

순간 산모와 나는 눈이 서로 마주쳤고 우리는 산모의 건강을 위해서 샤워는 당분간 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산모의 다리를 가리키며 저렇게 피가 묻어있는데 샤워를 안 하면 어떻게 하냐며 이상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체크 사항으로 샤워 중에 산모가 소변을 보는지, 소변이 평상시와 차이점이 있는지, 시간은 몇 시였는지 꼭 알려달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산후조리를 고집할 수가 없어서 산모와 상의 후 따끈한 물로 다리만 씻었고 정상 소변을 보았다.


신생아에게 물이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아서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미드와이프에게 물어보았다. 아기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모유밖에 없다는 대답. 보통 출산 후 24시간이 지나야 모유가 나올 텐데 그동안은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그래도 신생아는 모유만 먹어야 한다며 젖병 사용 한 번으로 신생아가 모유를 먹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아 아기가 울 때마다 산모의 젖을 물려서 그런지 산모의 회복도 빨랐고 모유도 출산 후 하루가 되기 전에 아기가 먹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중에 출산 전 관장, 제모, 내진 등이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곳은 산모가 꺼리는 모든 절차를 하지 않고도 건강하게 출산하고 있다.

특히 출산 후 신생아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샤워를 다음 날로 미루는 일에 손뼉을 쳐주고 싶다.



한 줄 요약: 환자를 위한 진료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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