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jeong Nov 15. 2022

행복한 이별

사는 이야기

호주는 쓰레기 수거를 매주 하는 일반 쓰레기와 격주로 하는 재활용 쓰레기, 낙엽이나 나무들을 자른 그린 쓰레기로 분리해서 쓰레기통은 같은 크기지만 뚜껑을 다른 색으로 구분한다.

거기에 일 년에 두 번 각자 사용하지 않거나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않는 큰 물건 들을 집 앞에 놓으면 치워간다.

수거 일자를 정해주지만 그전부터 이집 저집 앞에는 버릴 물건들이 쌓여있다. 냉장고, 장롱, 소파 등등

검소한 편인 우리 집은 다시 생각해도 사용할 수 없는 물건들을 울타리 앞에 놓는데 80% 이상은 시청에서  수거하기 전에 동네 주민들이 가져간다. 그럴 때면 더 사용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할 때가 있다.

우리도 이웃집에서 가져온 커다란 양철 조각이 불 때는 장소의 안전용 울타리로 잘 사용하고 있다.




이번에 버린 물건 중에 오래된 의자가 있다. 앉아서 등을 기대면 등받이를 받치고 있는 기둥이 뒤로 급하게 휘어졌다. 허리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울타리 앞에 놓았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왠지 그 의자에 미안한 마음이 생겨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의자는 호주에서 집을 샀을 때 구입했던 걸로 식사 시간에 편안하게 식사하도록 자기 몸을 내어준 의자였다. 그뿐만 아니라 티나 커피를 마시며 가족끼리 대화 할 때도 함께 했고 종일 집안일로 지칠 때면 나의 피로를 덜어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의자 바닥에 넓은 스테인리스 원형이 있어서 밟고 올라서도 안전한 구조였다. 그래서 형광등을 교체하거나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물건을 정리 또는 사용할 때도 당연히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었던 의자. 다시 그의 앞에 서서 이별의 시간을 갖는다. 고생했다고 얼마나 많은 무게를 견디느라 쇠가 휠 정도로 사람들의 아픈 마음마저 바치고 있었던 너를 한마디 말도 없이 덜컥 문 앞에 데려다 놓은 것을 사과했다. 시청에서 재활용 용도로 의자를 가져가는 것이니 다음에는 더 튼튼한 의자 든 무엇으로든 다시 태어나서 잘 지내라고 마음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가끔 우체통에 분홍색 커다란 비닐봉지가 접혀서 들어있다.

그 봉투의 용도는 입지 않는 의류, 신발, 가방 등을 담아서 의류 수거함에 넣어 달라는 뜻이다. 자원봉사자들은 그 의류를 세탁도 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다듬어서 저렴한 가격에 판다. 일명 second hands shop(중고 판매점)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나온 수익금은 전액 동물보호 기금으로 사용된다.

그 가게에는 좋은 물건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다. 가끔 개인이 쓰지 않는 식기들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어서 판매대에 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물건을 서로 나누어 사용하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이 숫자가 늘어가는 만큼 내 주변의 물건들은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부터 2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꺼내놓은 옷가지 하나하나에 기억이 새롭다. 옷 종류가 많지 않던 내가 한국에 갔을 때 한 가지 옷을 며칠씩  입는 걸 본 동생이 준 옷들이 꽤 많았다. 유명 상표에 관심이 많은 친구는 내 옷에 붙어 있는 상표를 주제로 대화하기도 했다. 특히 호주 사람들 삶이 검소한 편이라서 무의식으로 보고 배웠는지 필요한 것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이다.

동생이 준 옷가지들을 봉투에 담으며 함께 했던 시간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걸어온다.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이별의 시간을 갖는다. 더 이상 옷장이나 서랍에 넣어서 너를 답답하게 두지 않고 젊고 멋진 사람의 몸에 입혀 세상 구경하라며 행복한 이별을 했다.

딸이 커서 입지 못하는 옷들, 엄마가 입으면 예쁠 것 같아서 샀다는 옷들도 꺼내 보니 한 짐이다.

상표가 붙어 있는 옷도 한두 번 정도 입었던 옷도 시집보내기 위해 봉투에 담았다.

최대한 깨끗하고 상태 좋은 옷들이 이별을 위해 빠져나간 공간에 작은 기쁨이 들어와 앉는다.

주는 기쁨은 나의 기쁨 중에 항상 일 순위에 있다. 분홍색 봉투를 차에 실어놓고 만약 딸이 시집을 간다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하자 허전한 마음이 가슴에 시리게 들어온다.




요즘 이런저런 이야기로 글을 쓴다며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주 3일의 휴일이 빠르게 지나간다. 여러 브런치 작가님의 글도 읽고 글동무도 하고 내용도 모르고 신청한 보글보글 매거진에서 엉뚱한 주제로

글을 올렸던 난처한 상황도 있었다.

이런 시간을 통해 나를 더 알아가고 사랑하는 시간이 많아진 셈이다.

나보다 더 오래 우리 집에 남아있을 나와 이별 해야 하는 책상과 노트북에 따뜻한 손길을 올려본다.


한 줄 요약: 행복한 이별을 통해 나누고 비우고 넉넉하게 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