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면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안도현, '은행나무'

by 인문학 이야기꾼

은행나무

-안도현


산서면사무소 앞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가

어느날,

크게 몸을 흔들자

은행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그게 너무 보기 좋아서

모두들 한참씩 바라보았다


은행나무는 훤칠하고 날렵하고 시원하여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습니다. 특히 나뭇잎은 부채꼴의 모양도 예쁘지만, 낙엽도 싱싱하여 가로수길을 황금색으로 수놓아 많은 연인들이 낭만을 즐기게도 합니다. 은행알은 한방의 약재로 쓰일 정도로 효용 가치도 높습니다. 그러나 속껍질을 싸고 있는 육질층은 코를 움켜쥘 정도로 고약한 악취를 풍기죠. 요즈음은 DNA 분석으로 묘목부터 나무의 암수 구별이 가능해 수나무를 가로수로 심는다고 하니 과학이 관여하지 않는 영역이 없는 듯합니다.


면사무소 앞에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한바탕 바람이 불자 은행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립니다. 은행알은 길바닥을 온통 오물 범벅으로 만들고 주변을 고약한 악취로 물들입니다. 은행알의 악취를 생각하면 면사무소 앞의 사람들은 코를 막고 달아나거나, 행여나 은행알의 육즙이 발에라도 묻을까 조심해서 발을 옮겨야 정상입니다. 외지인들이라면 코를 막고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해 뒤뚱거리면서 그 자리를 떠났겠지요. 그런데 여기 면소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은행알들이 쏟아지는 것이 너무 보기 좋다고 합니다. 악취의 은행알들이 왜 보기가 좋았을까요?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예쁜 꽃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꽃집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들판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들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꽃이든 사람이든 슬쩍 보아서는 대상의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켜보면 모든 것이 예쁠 수밖에 없고,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면사무소 앞의 은행나무도 그렇습니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은행알들이 풍기는 냄새를 악취로 느끼겠지만, 여기, 은행나무와 함께 한평생을 살아온 면민(面民)들은 5일장이 서는 장날마다 은행나무 밑에서 여름 햇빛을 피하고,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일상적 노동의 고단함으로부터 위안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니 은행알들이 쏟아지는 모습에서 손주들의 재롱을 보았을 겁니다. 손주들의 응아를 보듯이 은행의 육즙을 기쁜 마음으로 보았을 겁니다.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를 1분간만이라도 들여다보면 물고기의 아가미의 움직임도, 꼬리와 등과 배에 있는 지느러미의 움직임도, 지느러미의 움직임에 따라 물고기의 속도와 방향의 변화도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로움으로 다가올 겁니다.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자연계와 인간계의 현상들은 조금만 더 오래 보고 조금만 더 자세히 보면 예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시(詩)를 읽는 것도 그렇습니다. 슬쩍 읽고 시를 읽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한 줄 한 줄 상상력으로 행간의 의미를 채워 넣으면서 읽으면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은 시가 없음을 또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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