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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Nov 27. 2023

구맹주산(狗猛酒酸)

왜 술이 팔리지 않았을까?

구맹주산(狗猛酒酸)

  춘추전국시대 송(宋)나라에 술 장사꾼이 있었는데, 그는 술을 빚는 재주가 좋아 술맛이 좋은 술을 빚었습니다. 또한 친절하고 정직하게 장사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만들어놓은 술이 잘 팔리지 않아 자꾸 시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마을의 현명한 사람을 찾아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현자가 “자네 집에 사나운 개가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보통 어른들은 아이들을 시켜서 술을 사오게 하는데 집에 사나운 개가 지키고 있으니 아이들이 그 개를 두려워하여 다른 집에 가서 술을 사오는 것이라네. 그래서 술이 잘 팔리지 않는 것이네”라고 이야기합니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外儲說右)>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는 뜻의 ‘구맹주산(狗猛酒酸)’입니다. 사나운 개에 비유된 나라의 간신배가 재능 있는 선비들을 물어뜯기 때문에 군주 주위에 올바른 신하들이 모이지 않음을 풍자하는 말로 쓰입니다. 나라의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음을 술이 시어서 팔리지 않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술이 안 팔리는 이유가 어찌 사나운 개 때문만이겠습니까? 송(宋)나라 술 장사꾼의 이야기를 약간 비틀어보겠습니다. 그 장사꾼의 이야기에서 팩트는 술이 잘 팔리지 않아 자꾸 시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술이 잘 팔리지 않았을까요?

  우선 술맛이 없기 때문에 술이 팔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술 장사꾼은 자신이 만든 술이 맛있었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입맛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맛이라고 하는 것은 공급자의 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요자의 입이 중요한 법입니다. 수요자는 맛이 없다고 하는데 공급자가 맛이 있다고 우기는 경우는 현대 정치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술이 맛이 없으면 팔리지 않듯이 정책이 백성들에게 이롭지 않으면 외면받기 마련입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입안한 정책이 누구를 이롭게 하는지 이로움의 방향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은 수천 년 전부터 있었던 생각입니다. 한비자가 지금 살아온다면 ‘무미주산(無味酒酸)-맛이 없으면 술이 시어진다)’이라고 일갈하지 않겠는지요.

     

  주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술이 팔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술을 파는 집에 사나운 개를 두는 이유는 도둑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 개가 도둑이 아니라 손님을 향해 사납게 짖는다면 그것은 개를 잘못 둔 주인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본분과 역할에 맞는 개를 선별하여 그 자리에 배치하지 못한 주인의 어리석음 때문에 술이 잘 팔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적임자인지 주인이 어리석어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듣고 여론을 경청하여 판단하면 될 일입니다. 주인이 손님과 도둑을 분별하지 못 하면 그 주인이 선별한 개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 개에게 가게를 지키라고 했으니 술이 팔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비자가 살아있다면 아마 ‘군우주산(君愚酒酸)-군주가 어리석으면 술이 시어진다’라고 꼬집지 않겠는지요.

     

  술을 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 술이 팔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팔기 위해 술을 만들었는데 술을 만든 주인이 다 마셔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팔기 전에 자기가 다 마신다면 손님에게 팔 술이 없어지게 됩니다. 술집이지만 팔 술이 없어 간판만 술집인 것이지요. 어떤 정책의 혜택이 백성을 향하는 것이라고 추진했지만 막상 정책이 실행되었을 때 수혜자가 백성인 경우보다 정책 입안자들인 경우라면 백성은 그 정책을 외면할 것입니다. 한비자가 살아온다면 자신이 만든 술을 자신이 마셔서 팔 술이 없다는 뜻의 ‘자음무주(自飮無酒)’라는 성어를 만들지 않았겠는지요.    

 

  리더가 구성원의 이익을 앞세우거나 적어도 구성원과 이익을 공유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술이 잘 팔리고 정책이 잘 추진됩니다. 리더가 술을 만들 때 자신이 마실 생각을 버리고, 술을 마실 사람을 생각해서 맛있는 술을 만들 궁리를 해야 하고, 만든 술을 잘 팔기 위해 실행자들이 자기 일처럼 제대로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을 이 성어가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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