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1910~2007) 작가의 작품 중에 <은전 한 닢>이라는 수필이 있습니다. 이 수필은 작가가 중국 상해(上海)에서 본 늙은 거지에 관한 이야기를 스토리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상해의 늙은 거지 하나가 여러 전장[(錢莊)-돈 바꾸어 주는 곳]을 다니면서 은전 한 닢이 가짜 돈인지 진짜 돈인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진짜임을 확인한 그는 골목 으슥한 곳을 찾아 들어가 그 은전 한 닢을 손바닥에 놓고 감격에 찬 듯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화자가 다가가 누가 이렇게 큰돈을 주었냐고 물었습니다.
백에 한 명도 주기 어려운 동전 마흔여덟 닢을 모아 각전(角錢) 한 닢과 바꾸고 이렇게 모인 각전 여섯 닢으로 은전(銀錢) 한 닢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귀한 은전 한 닢을 가지기까지 여섯 달이 걸렸다고 말하는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묻는 화자의 말에 그는 “이 돈, 한 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은전 한 닢을 가지고 행복해하는 걸인의 모습을 조명한 이 작품은 ‘소망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그 성취의 기쁨’이란 주제로 읽히기도 하고 ‘맹목적 소유욕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제로 읽히기도 합니다.
거지는 이 은전 한 닢을 모으기 위해 때로는 굶고 때로는 헐벗고 때로는 멸시를 당했겠지요. 그렇지만 거지는 은전 한 닢이 주는 미래의 만족감을 기대하면서 현재의 멸시와 고통쯤은 충분히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거지는 은전 한 닢이 주는 미래의 만족을 위해서 현재의 고통을 감내한 것입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만족 지연(delay of gratification)’이라고 합니다. ‘만족 지연’은 미래의 더 큰 만족을 위하여 현재의 즐거움이나 욕구를 얼마간 미루는 것입니다. 모든 심리학 용어가 그렇듯이 ‘만족 지연’도 실험으로 증명되어 심리학 용어로 인정받았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월터 미셀 교수 연구팀은 ‘마시멜로 이야기’로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을 합니다. 이 연구팀은 1960년대 스탠퍼드 대학교 교직원 자녀(4~6세) 653명을 대상으로 마시멜로 실험을 합니다. 맛있는 마시멜로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은 아이에게는 15분 뒤에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겠다고 했습니다. 실험 결과 30%의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았습니다.
14년 뒤,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교 성적, 교우 관계, SAT 성적 등을 비교한 결과 15분 동안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들이 우수한 결과를 얻었다고 연구팀은 분석했습니다. 이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인내력이 성공의 열쇠’라는 공식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뉴욕대와 UC 어바인 공동 연구진은 1990년대 미국국립보건원이 실시한 영유아 보육 및 청소년 발달 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4~5세 유아 918명에 주목해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와 10~20년 뒤 성공과의 상관관계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진은 마시멜로 유혹에 넘어간 아이들은 인내심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가정적 환경 등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지금은 거의 격언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열매를 위한 현재의 인내가 긍정적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인내에도 긍정적 가치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현재가 미래보다 더 소중한 내 삶이기 때문입니다. 엄지용 시인의 ‘다음부터’라는 시는 현재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번까지만 이렇게 하고
다음부턴 이러지 말아야지 라며
버려버린 시간들이
언젠가 한데 모여
우린 뭐 네 인생 아니었냐고
따져 물어올 것만 같다.
-엄지용, <다음부터>
‘이번까지만 이렇게 하고 다음부턴 이러지 말아야지’라는 표현으로 보아, 이번까지의 행위가 썩 바람직한 행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미래의 발전을 방해하는 행위인 듯합니다. 학생을 예로 들어보면 미래의 발전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할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운동과 게임과 음악에 몰두해 있는 것이 이번까지의 행위입니다.
운동과 게임과 음악은 미래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들이고, 이것을 하는 동안의 시간은 버려버린 시간이라는 것, 공부만이 미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입니다. 그러나 운동과 게임과 음악에 투입된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가치를 위해 소중히 투자된 시간이라는 것, 미래에 부여해야 할 가치를 현재에도 긍정적으로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 시인의 인식입니다. 시간은 항상 현재입니다. 미래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가치도 중요합니다.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며 보낼 때 삶 자체가 소중하고 가치 있게 됩니다.
초등학생이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습니다. 집에 달려와 엄마에게 자랑했지요. “엄마, 나 100점 먹었어요.” 엄마가 말합니다. “초등학교 때 100점은 중요하지 않아. 중학교 가서 100점을 맞아야지.” 아이는 시큰둥하죠. 중학교에 가서 또 100점을 맞아 엄마에게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중학교 100점은 중요하지 않아. 고등학교 가서 100점을 맞아야지.” 아이는 고등학교에 가서 100점을 맞아 또 엄마에게 자랑했어요. 그러자 엄마는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100점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야.”
좋은 대학은 좋은 직장으로 이어져야 하고, 좋은 직장은 좋은 배우자로 이어져야 하고, 자녀 교육으로, 직장에서 승진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김남조 시인의 말처럼 ‘삶은 끝없이 올라가야 할 돌층계의 어디쯤’일 뿐입니다. 내일의 열매만을 위해서라면 현재의 행복은 없습니다. 지금 100점을 맞아도 그것은 현재의 행복이 아니라 내일 100점을 맞기 위한 짐일 뿐이죠. 이렇게 오늘을 희생하면 평생 오늘은 희생의 대상일 뿐입니다.
상해의 늙은 거지도 현재의 고통을 참아가며 은전 한 닢을 만들려는 생각을 버리고, 부족하지만 그날그날의 수입으로 먹어가면서 조금씩 모아, 비록 몇 년에 걸려 은전 한 닢을 만들었다면 현재에도 만족하며 미래에도 유익한 일이 아니었겠는지요. ‘은전 한 닢’과 ‘다음부터’라는 작품을 통해 현재는 미래를 위해 희생하고 버려도 되는 시간이 아니라 현재 자체가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