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시간을 거스르는 선택

by 인문학 이야기꾼

‘삼년 고개’라는 전래동화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전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구전 문학답게 여러 버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 틀은 거의 같습니다. 옛날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나무를 해서 오다가 삼년 고개에서 넘어집니다. 삼년 고개에서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산다고 하죠. 넘어진 지 삼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할아버지는 병석에 눕고 맙니다. 할아버지의 사연을 알고 이웃집 아이가 찾아옵니다. 한 번 더 넘어지라고 합니다. 그러면 3년을 더 살 수 있지 않냐는 거죠.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삼년 고개로 달려가 넘어지고 넘어져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면서 ‘너희 어머니가 삼년 고개에서 넘어졌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니?’라고 물어보면 많은 아이들은 울먹일 것입니다. 3년 후 어머니가 안 계실 상황을 대비해 3년 동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겠죠. 그러나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 아이는 삼년 고개에서 한 번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산다’에서 ‘3년을 더 산다’로 생각을 바꿀 수도 있죠. 발상을 전환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겁니다. 부정적 상황을 극복할 묘안이 발상의 전환에 있죠.


고등학생 정도 되면 이 이야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부정적 상황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삼년 고개로 와서 데굴데굴 구른다면 몇 십 년씩 더 살 수 있습니다. 고령화, 인구밀도, 식량 수급 등 파생되는 문제가 만만치 않습니다. 삼년 고개를 독점하여 ‘생명연장병원’을 개원해 신흥재벌이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수명 연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학생도 있을 겁니다. 짧은 전래동화이지만 생각의 산책길은 다양합니다.

‘젊어지는 샘물’이라는 설화도 있습니다. 옛날 마음씨 착한 노인 내외가 자식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산에서 나무를 하는데 새 한 마리가 따라오라는 듯 날고 있어서 새를 따라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샘이 있었죠. 목이 말라 샘물을 먹었는데 총각으로 바뀐 겁니다. 총각이 나무를 한 짐을 지고 집에 오니 할머니가 할아버지 못 보았느냐고 묻습니다. 총각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할머니를 데리고 샘이 있는 산속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웃집 욕심 많은 노인이 이 이야기를 듣고 먼저 샘으로 가 물을 너무 많이 마셔 아기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도 샘물을 마시고 새댁의 모습으로 바뀌었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신혼부부가 되어 아기를 데려와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이 읽어야 할 동화라기보다 젊어지기를 바라는, 아니 젊게 살기를 소망하는 노인들이 읽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노년이 되어서 이 샘물을 발견했다면 먹을지 안 먹을지 결정도 쉽지 않습니다. 먹는다면 어느 정도 먹어야 되는지의 판단도 어렵습니다. ‘얼마나 젊어지고 싶은가?’, ‘젊어진다면 살았던 삶을 되풀이하고 싶은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가?’,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산책길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에 대한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하겠죠. 가족관계도 복잡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이 시간인데, 시간의 평등성, 시간의 소중함이 사라지겠지요.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소령화(小齡化) 시대가 됩니다. 일자리 문제도 만만치 않겠네요. 경제 관념이 뛰어난 사람은 샘물을 생수통에 넣어 판매할 수도 있습니다. 1년 젊어지는 생수, 3년 젊어지는 생수, 10년 젊어지는 생수도 있겠지요. 샘물 고갈에 대한 대책도 필요할 듯합니다.


‘삼년 고개’에서 넘어지면 넘어지는 만큼 생명은 연장되겠지만 삶의 질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나 ‘젊어지는 샘물’에서 샘물을 마시면 마시는 만큼 젊어지게 되죠. 선택권이 주어지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젊어지는 샘물의 사회적 문제를 생각하면 삼년 고개를 선택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정철’ 작가는 『한글자』에서 ‘신(神)’을 제목으로 하여 이 문제에 대해 색다른 생각을 보여줍니다.


백발에 하얗게 수염을 기른 신이 나를 찾아와,

스무 살로 돌아가게 해 준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맙다고 깍듯이 인사한 후에 거절해야겠지.

살아 본 나이를 또 사는 건 재미가 덜할 테니까.

스무 살은 알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지금 내 나이에 있을 테니까.

인생은 한 순간 한 순간 끝까지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뭐든 다 할 수 있는 신의 모습이 스무 살이 아닌 이유를 눈치채야지.

-정철, ‘신(神)’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의 가치관이 묻어납니다. ‘살아 본 나이를 또 사는 건 재미가 덜 하다’는 가치관이 새롭습니다. 현재가 제일 중요하다는 가치관과 함께 현재에 대한 자신감이 넘칩니다. 삶은 각 나이마다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는 거죠. 스무 살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쉰 살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합니다. 지금 할 일이 없다면 할 일을 만들어 하는 것이 스무 살로 돌아가 스무 살의 일을 하는 것보다 행복합니다. 지금의 나는 스무 살이 엄두도 못 낼, 신(神)의 일을 할 수 있지만, 스무 살은 신(神)의 일은 절대로 못 하니까요. 신의 일을 하려면 적어도 백발에 흰 수염이 있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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