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다산 정약용의 선택
짬짜면이라는 한국식 중국요리가 있습니다. 짬뽕을 먹으려니 짜장면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포기하기 어렵고, 짜장면을 먹으려니 짬뽕의 얼큰한 국물 맛을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짬뽕과 짜장면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지 갈등하는 사람을 위해 하나의 그릇을 둘로 나누어 짬뽕과 짜장면 둘 다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 짬짜면이죠. 점심 한 끼 먹는 것도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 것은 짬짜면을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자신의 적성이나 성적 등 현재의 처지와 미래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선택에 정답은 찾기 어렵습니다. 다만 자신의 선택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도록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면서 가꾸어 나가는 것이 최선일 듯싶습니다. 선택과 관련된 이야기길을 따라 산책을 해 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18년을 유배지에서 보냅니다. 유배는 다산이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기득권의 편에 엎드렸다면 유배를 면했을 수 있었겠지요. 그러기에는 다산의 가치관이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아들 학연(學淵)이 유배 중인 다산에게 아버지를 모함한 사람들에게 먼저 사죄해서라도 유배에서 풀려나야 한다고 편지를 했고, 이에 대한 답신이 ‘답연아(答淵兒)’입니다. ‘답연아(答淵兒)’가 아들에 대한 다산의 답신이라면, 정일근 시인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는 다산에 빙의(憑依)한 시인의 답신이라고 보면 됩니다. 답연아(答淵兒)는 두 편으로 되어 있는데 제 2신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깊고 긴 겨울밤들을 예감했을까 봄날 텃밭마다 무우를 심었다. 여름 한철 노오란 무꽃이 피어 가끔 벌, 나비들이 찾아와 동무해 주더니 이제 그중 큰 놈 몇 개를 뽑아 너와지붕 추녀 끝으로 고드름이 열리는 새벽까지 무채를 썰면, 절망을 썰면, 보은산 컹컹 울부짖는 승냥이 울음소리가 두렵지 않고 유배보다 더 독한 어둠이 두렵지 않구나. 어쩌다 폭설이 지는 밤이면 등잔불을 어루어 시경강의보(詩經講義補)를 엮는다. 학연아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이며 한이라는 것도 속절이 없어 첫해에는 산이라도 날려 보낼 것 같은 그리움이, 강물에라도 싹둑싹둑 베어버릴 것 같은 한이 폭설에 갇혀 서울로 가는 길이란 길은 모두 하얗게 지워지는 밤, 사의재(四宜齎)에 앉아 시 몇 줄을 읽으면 세상의 법도 왕가의 법도 흘러가는 법, 힘줄 고운 한들이 삭아서 흘러가고 그리움도 남해 바다로 흘러가 섬을 만드누나.
-정일근,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제2신)’
유배는 다산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다산의 선택입니다. 유배지에서는 ‘외로움’, ‘절망’, ‘두려움’, ‘한’,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이런 정서들을 지우기 위해 다산은 ‘무우’를 심었습니다. ‘벌’과 ‘나비’들이 외로움을 달래줍니다. 겨울밤에는 ‘무채’를 썰면서 ‘절망’을 이겨내고, ‘두려움’을 떨쳐냅니다. 다산은 책을 엮고 시를 읽으며 ‘그리움’과 ‘한’을 삭입니다. 흘려보낸 ‘한’이 얼마나 큰지 ‘섬’을 만듭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울분과 한탄으로 절망과 한을 키운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고 책을 읽으며 그리움과 한을 흘려보냅니다.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가꾼 다산의 선택이 정일근 시인의 시로 더욱 빛납니다.
자신의 선택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최선을 다해 가꾸어 나가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공자(孔子)가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는 중, 깊은 산속을 지날 때, 세 개의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한 여인을 만납니다. 사연을 물었죠. 시아버지, 남편, 아들을 호랑이가 잡아먹었다는 겁니다. 이에 공자가 “그럼 이곳을 떠나 사람들이 사는 민가에 가 살면 되지 않겠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여인은 “차라리 여기에서 사는 것이 낫습니다. 민가에 내려가면 무거운 세금 때문에 그나마도 살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죠. 이에 공자는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의 유래가 되는 고사로 『예기(禮記)』의 ‘단궁하편(檀弓下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인의 가족은 호랑이가 있는 산속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호랑이보다 무서운 세금이 있는 민가에 살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여인의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선택지 모두가 좋은 경우도 있고, 선택지 모두가 좋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인의 가족은 선택을 강요당하는 처지에 내몰렸습니다. 가혹한 세금 때문에 심한 고초를 겪다가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보았겠지요. 이것이 여인의 가족을 산속으로 내몹니다. 시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을 잃고 여인은 또 선택을 해야 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여인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는지요? 우리가 여인의 입장이 되어 여인의 선택에 어떤 힘을 보태야 되지는 않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