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關羽)와 항우(項羽)의 선택
설화와 현실의 중간쯤 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삼국지(三國志)』 ‘적벽대전’의 마무리 장면을 보겠습니다. 유비와 손권 연합군의 화공(火攻)에 의해 조조의 백만 대군이 거의 전멸을 합니다. 과장이 심하긴 하지만 설화적 요소도 조금은 감안하여 읽어야 합니다. 동남풍을 일으킨 제갈량은 유비 진지로 돌아와서 장수들에게 작전 명령을 하달합니다. 조자룡과 장비에게 특정 장소에 매복하고 있다가 쫓겨오는 조조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미축과 공자 유기에게도 작전 명령을 내리죠. 그러나 관우에게는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다. 관우가 어찌 자신에게만 군령을 내리지 않는지 묻습니다.
사실 관우는 조조에게 신세를 진 일이 있습니다. 지난 전투에서 조조에게 항복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천자(天子)께 항복한다는 명분과 함께 유비의 소식을 알면 언제든지 유비에게 간다는 조건을 내건 항복이었습니다. 조조는 관우를 자기 장수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지만 유비를 향한 관우의 마음은 일편단심이었습니다.
관우는 원소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움으로 조조의 신세를 갚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전투에서 조조를 만나면 조조를 죽일 수 있다고 하면서 군령을 원합니다. 제갈량은 화용도에서 모닥불을 피워 연기를 날리면서 기다리면 조조가 나타날 것이니 그때 치라고 관우에게 군령을 내립니다. 관우는 화용도에 조조가 나타났는데도 조조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의 목을 바치겠다는 군령장을 씁니다. 조조가 화용도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제갈량도 자신의 머리를 바치겠다는 군령장을 쓰죠. 두 사람은 목숨을 건 내기를 합니다. 화용도에 관우 대신 조자룡이나 장비를 보냈으면 조조의 운명이 어찌 되었을지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조조에게 신세를 진 관우가 이번 전투에서 조조를 만나더라도 의리를 중시하는 관우가 조조를 죽이지 못할 것을 제갈량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목숨을 건 내기를 하는 것은 관우는 문무를 겸비한 장수인데다 유비의 아우입니다. 제갈량은 군사(君師)로서 자신의 역할에 관우가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관우의 기를 꺾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거죠. 유비의 걱정이 태산입니다. 둘 중 하나는 잃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제갈량은 조조를 살려준 관우의 의리를 높이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했다고 유비에게 이야기합니다.
화용도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관우는 조조를 기다립니다. 패잔병을 이끌고 조조가 화용도에 나타납니다. 관우는 조조를 만났습니다. 이때 조조가 옛날의 기억을 상기시킵니다. 관우가 타고 있는 적토마도 조조가 준 것이죠. 조조는 자신이 베푼 은혜를 상기시키며 관우의 의리에 자신의 목숨을 맡깁니다. 관우는 조조의 목을 벨 것인지 자신의 목을 내놓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관우는 조조를 보내줍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의리를 중히 여긴 선택입니다. 제갈량은 본진에 돌아온 관우를 군법에 따라 처단하라고 합니다. 유비의 간청으로 관우는 용서를 받았지만 제갈량과 관우의 라이벌 의식은 계속 작동을 합니다.
화용도에서 관우의 선택은 개인의 목숨이 걸린 선택이었지만, 홍문(鴻門)에서 항우의 선택은 개인의 목숨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뒤바뀌는 선택이었습니다. 『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紀)』에 실린 홍문연(鴻門宴)의 이야기를 살짝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시황제는 전국시대를 종식하고 천하를 통일하죠. 그러나 시황제 사망 후에는 그 권력이 고스란히 ‘조고’라는 환관에게 넘어갑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할 정도로 2세 황제 호해(胡亥)를 농락하며 국정을 어지럽힙니다. 해도 감히 말대꾸를 못할 정도의 권력을 누리며 국정을 어지럽힙니다. 전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시황제의 손자인 ‘자영(子嬰)’은 조고를 죽이고 진나라 세 번째 황위에 오르나 유방(劉邦)에게 진나라를 넘깁니다. 유방보다 훨씬 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항우(項羽)는 유방을 죽이기 위해 홍문(鴻門)의 잔치를 열어 유방을 초대합니다. 유방의 그릇을 본 다음 유방을 죽이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유방의 책사였던 장량(張良)의 기지로 유방은 항우의 신하(臣下)임을 자처하고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유방의 야망을 알았던 항우의 책사 범증(范增)은 유방을 죽여야 한다며 항우의 사촌동생 항장(項莊)에게 칼춤을 추다가 기회를 보아 유방을 죽이게 하죠. 이때 장량의 친구이자 항우의 숙부인 항백(項伯)이 함께 칼춤을 추며 유방을 구해줍니다.
유방을 과소평가한 항우는 유방을 살려주게 되고 유방은 잔도(棧道)를 타고 먼 파촉(巴蜀) 땅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거기에서 힘을 기른 유방은 이후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이겨 통일 대업을 이루고 한나라 첫 황제에 오릅니다. 홍문연에서 항우의 선택이 개인의 운명은 물론 중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프로스트(Robert Frost)’라는 미국의 시인이 지은 시 ‘가지 않은 길’도 선택의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걷다보면 지나간 자취가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짬짜면과 같은 사소한 선택도 있지만 인생사 중대한 문제도 선택해야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젊어지는 샘물을 마시고 어느 시점부터 다시 살아볼 수가 없습니다. 한 번뿐인 삶이기에 선택에는 고민이 따르게 되죠. 이 시의 화자도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 끝에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가지 못한 길은 다음에 가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 번 발을 들여 놓은 길은 계속 이어져 끝이 없습니다. 가지 못한 길은 다시 갈 수 없습니다. 처음 선택한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요.
화용도에서 관우의 선택도 되돌릴 수가 없고, 홍문연에서 항우의 선택도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만약 홍문연에서 항우가, 유방을 보내준 그 너그러움으로 백성을 대했다면 자신의 나라를 공고히 했을지도 모릅니다. 진나라의 복잡한 법 대신에 유방이 만들어 놓은 세 가지 법 ‘약법삼장(約法三章)’만이라도 백성에게 지키게 하고 항우 자신도 지켰더라면 파촉으로 쫓겨간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나고 난 뒤에 ‘그때 조금만 너그럽게 대해 줄 걸,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하고 후회를 합니다. 때로는 ‘선택을 참 잘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칭찬하기도 합니다. 선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