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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Jan 09. 2024

결국 문제는 우울증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5화

2023년 초, 꽤 많은 것이 정리된 후에도 나는 깨끗하지 못한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알려주고 미로 속에 실험쥐를 집어 넣어도 어찌저찌 길을 찾는 것처럼 이 망할 알코올 중독 일상의 탈출구를 찾아가고는 있었으나, 그 이상의 시야로는 나아가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해서 중요한 일에 집중을 못 하거나 한참을 멍하니 일상을 보내는 일이 있어 고민이었다. 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심리상담에서 "내적으로 쑥대밭이고, 세상의 온갖 것에 대해 쉴새없이 생각하다가 눈 앞에 있는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고 말했더니 상담 선생님이 ADHD 검사를 권유했다.


생각이 많기로 소문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번씩 ADHD 검사를 고민해보는 것 같다. ADHD의 주요 증상이 집중력 결핍과 높은 불안이라서 '생각이 많다'는 특성과 상당부분 겹쳐서 그렇다. 나도 마침 주변에 성인 ADHD로 진단받은 친구가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평소에 마주하는 곤란한 문제들을 그 친구도 겪고 있어 더더욱 의심이 되긴 했다.


예를 들어 많은 성인 ADHD 환자들이 호소하는 문제는 무언가 물건을 놓고 다니기 일쑤라는 건데, 나는 물건을 정말 잘 잃어버리거나, 꼭 챙겨야 하는 물건을 집에 놓고 오는 일이 잦다. '꼭 갖고 나가야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외출 전에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에 주의가 분산되면서 물건을 놓고 나온다. 예를 들어, 꼭 갖고 나가야 할 물건을 쇼핑백 안에 잘 챙겨 두었다고 치자. 그렇게 쇼핑백을 현관까지 갖고 나가는 데 성공해 놓고서는, 신발을 신기 위해 쇼핑백을 잠시 옆에 놔두고 신발을 신은 후 현관문을 여는 순간 눈에 띈 택배상자에 주의가 다 빼앗긴다. 혹은, 쇼핑백을 잘 챙겨두고 지갑을 놓고 나온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이런 행동이 한창 심해질 무렵에는 물건 하나를 찾느라고 외출 전 1시간을 다 쓰기도 했다. 한 50분쯤 물건을 찾았을 때 그냥 새로 사야겠다는 생각에 접어들었는데, 망연자실한 채 책상 의자에 앉는 순간 그 물건이 만져졌다. 나는 코앞에 있는 의자에 놓인 물건을 찾느라 이렇게나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럴 때의 '현타'는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주변에서는 웃으면서 "야, 정신 좀 차려"라고 하는데, 내가 그때마다 억울해하며 하는 말이 있다. "정신을 차려도 이래."


없는 형편에 큰 돈을 들여 복잡한 ADHD 검사를 받았다. 두근거리며 결과를 기다렸고 몇 주 지나 약을 타러 간 김에 결과를 전해 들었다. 집중력 저하가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성인 ADHD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의사는 두 가지 지점이 걸린다고 전했다. 


첫번째로, 대부분의 성인 ADHD 환자들은 어릴 때부터 집중력 저하를 호소하지만 나는 어릴 때 그런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어릴 때부터 자주 일으키던 실수는 '무언가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것을 놓치는' 행동이었다. 두번째로, 내가 아주 지긋지긋하게 오래 앓은 우울증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가 집중력 저하라는 것이었다. 


이 결과를 들은 내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쉽게 말해서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안 된다는 거 아닌가. 그 말을 듣고 나는 집중력 저하가 심해진 시점을 생각해 보았는데 또 그게 신기하게 우울증이 심해진 시점부터이긴 했다. 결국 생각이 많아서 미치겠다는 심정은 우울증 때문에 돌아버리겠다는 심정과 사실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 6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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