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더라도 너와 함께라면

첫째 생후 1개월 즈음 (201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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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서 밥 먹고 청소하고 정리하니 12시가 다 되었다. 반나절을 꼬박 집안일과 신생아 돌보기에 투자했다. 그런데도 할 일이 참 많은데, 아이의 울음과 움직임에 일일이 반응해야하다 보니 진도가 안 나간다. 엉덩이를 붙일 세가 없다. 울음으로 밖에 자신을 표현 할 수 없기에 민감하지 않으면 딸에게 적절한 도움을 못주기 십상이다. 이 아이에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절대적인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와 상관없이 아이를 세심히 지켜보고 돌봐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비우는 일이다. 내가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젓병을 닦고 오전일과를 마무리했다. 매일 아침마다 8개의 젖병을 소독해야 한다. 딸의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왜 이 젖병이 많이 있어야하나 했더니 딸이 모유가 아닌 분유 먹을 것을 이미 하나님은 알고 계신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 돈이 많이 들긴 하다. 필요한 것도 많고 아이가 금방 자라기 때문에 바로 바로 필요한 것이 생긴다. 양육비 걱정 때문에 자녀계획을 미루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옛말에 다 자기 살 것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도 있다. 1달 남짓 되었지만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그 옛 말이 맞는 말 같다.


덕분에 딸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필요가 채워짐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도 부모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 된 우리도 마찬가지다. 딸이 어떠해서가 아니라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하나님은 어떠신가. 그 누구보다 바쁘신 몸 아닌가. 잃은 양 구원하기도 바쁘실텐데 우리들과 기꺼이 함께 있어주신다.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대단한 사랑이다.


<Mom says>

함께 있어줌..혹시 일을 하고 계신가요?

엄마가 일을 하면 괜스레 여기저기 죄인이 된다. 아이를 맡기는 분께 미안하고, 일을 하면서도 집중하지 못해 생기는 펑크들과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있어주지 못해 가지게 되는 미안함이 가장 크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짜증이 되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날아간다. 가깝게는 남편, 혹은 다른 자녀, 그리고 친정 부모님....

미안함이 짜증으로 가는 경로를 다시 살펴보면 나의 감정은 억울함이다.

남편이 조금만 더 돈을 잘 벌었었더라면, 시댁이 우리를 조금만 더 도와줬었더라면, 울 엄마가 애를 봐줬었더라면... 등등.. 우리는 수많은 이유로 억울하다.

결국 미안함은 억울함이 되어 누군가에게 분노 혹은 짜증으로 변질된다.

이 경로로 가지 않는 방법은 미안하지 않으면 된다. 당신은 당신 자녀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아이는 엄마와 충분히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할지라도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미안-억울-짜증 or 분노의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 자녀를 매순간 지켜볼 수 없지만, 주님은 가능하시다. 주님은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자녀를 그렇게 지키시고 인도하신다.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고 믿고 기뻐하기를 선택하면 된다.


계획하며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사실 난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때 그때 주어진대로, 편안한대로 선택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솔직히 성취가 많은 편은 못된다. 좀 더 나은 대학에 갈 수 있었을텐데, 좀 더 연봉이 높은 직장을 갈 수 있었을텐데.. 늘 아쉬움 속에 산다. 자녀 계획도 마찬가지.. 연년생 3남매를 낳을 때도 나의 삶에 계획 따위는 없었다. 그냥 생겨서, 아니 주셔서 낳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낳고 키워보니 왜 셋이나 연년생으로 줄줄 주셨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 공감하고 위로하는 일을 하는 나로서 아이 하나 둘 키워서는 다 이해할 수 없을 그 지경을 만드셨다.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너무나도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의 그 상황들을 몸소 겪고, 그 후 밀려드는 죽을 지경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온 지난 날들이 나를 찾는 내담자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 순간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지금 와서 깨달아지는 그것들....

“다 이해 할 순 없지만... 주 신뢰하는 것....” 이것이 내 삶의 모토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