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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백수 Feb 08. 2022

[5 DAY] 엄마의 존재

말의 힘


 할머니네서 처음 맞는 주말, 일요일. 늦지 않게 기상하면 나름 문제가 여럿 생기는데 이 오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에 대한 고뇌이다.

어제 사온 책을 읽고 싶다가도 누워서 혹은 식탁에 앉아 책을 펴면 거실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와 청각의 근육 하나하나를 자극해 시각과 뇌의 연결을 막아버려 덮기를 여러 번이었다.


 다만 이날은 달랐다. 엄마와 오전 산책을 떠나기로 해 모처럼 함께 외출한 것이었다. 동생은 고작 9살 주제에 이제 목적과 이득 없는 외출을 꺼려 쿨하게 둘만 집을 나섰다. 전날 갔던 카페와 책방이 있는 쪽으로 가 팔마대교를 크게 둘러보면 저번 날 산책 때보다 좀 더 오래 걸을 수 있을 거라며 걷기 시작했는데 다리를 건너지 않고 돌 거라 생각했던 나와 달리 그저 직진해보자는 엄마에 나는 어제 카페에 가느라 보았던 풍경에 좀 더 가까이 가게 되었다.


 순천역 부근 시장과 큰 길들 사이에 있는 할머니네와는 또 다른 풍경이어서 카페로 가기 위해 골목만 들어가면 되는데 괜스레 정면만 보았던 그 풍경에 말이다. 전에 걸었던 동천을 둘러싼 산책길과 이어지는 길임에도 동네가 달라졌다고 우측에 운동을 할 수 있는 기구들과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돌출 무대도 설치되어 있었다. 바로 아래쪽에 ‘도시재생 센터’가 있었으니 작은 시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공공재를 누릴 수 있게끔 설계된 것 같았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철길도 나타나는데 엄마가 괜히 들뜬 목소리로 “이거 지금 진짜 길이야? 운행하는?” 물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야 알 턱이 없지요. 하니 좌측 철길 아래로 나무로 지지대+받침대 같은 것이 있는데 어릴 적엔 친구들이나 오빠들이 그 아래 들어가 있었단다. 자기는 무서워서 못 들어갔다고. 얼핏 말로만 들어 상상이 전혀 되지 않던 것을 실물로 마주하니 더 으악스러웠다. “저기에 들어갔다고?” 그땐 아래 막혀있는 것이 없어 가능했다는데 엄마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난 절대 못해. 내 겁이 누굴 닮았나 했더니 엄말 닮았던 거였다는 말을 덧붙이며.



지도를 함께 보니 동천을 따라 장대공원을 지나 죽도봉 산책로 갈림길에서 흥륜사로 가는 우측 언덕을 선택해 올라가니 숨이 찼다. 날도 따뜻한데 롱 패딩을 입은 탓이겠지. 엄만 할머니가 춥다고 모자를 쓰라는 말에 모자까지 쓰고 왔으니 둘 다 과하게 챙겨 입고 나와 더위에 허덕였다. 아, 더워.


 괜히 아래를 보면 그리 높지 않은 곳임에도 낮은 아래가 더욱 낮아 보였다. 멀리 있는 아파트 단지 외엔 높은 건물들이 별로 없던 탓도 있었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아래로 내려가 올라왔던 길과 반대로 내려갔는데 재미있었던 것은 이 구역에 절과 성당, 교회가 나란히 있었다는 점이었다. 시골 동네인데도 교회가 커 저 거대한 크기의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되나 싶었다. 믿음이라면, 나를 향한 내 믿음도 저리 비대해졌으면 좋겠다.


 엄마는 나보다 더 충동적이고 계획적이지 않아서 자칫 따라다니면 뭐 하는 거야? 싶을 때가 있다. 엄마도 그를 아는지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면 “너는 자유롭게 가도 좋아”라고 한다. 그럼 그 말을 들은 뒤부터 나름 나만의 플랜을 상상해본다. 어제 갔던 카페에 가서 오전과 커피, 휴대폰을 잠시 즐기고 동천을 좀 더 걷다 들어가야겠다 싶었을 때, 엄마와의 동선이 그리 차이 나지 않아 결국 내 목적지에 동행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보았던 슈퍼인데 옛날 공중전화가 인상 깊었다. 이렇게 몇 건물은 옛 것 그대로를 유지하는데 주위에 큰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어 이질감을 느끼게끔 했다.



 도시재생 센터 옆에 있는 #samo 라는 카페인데 블랙 화이트 인테리어와 직접 한 블렌딩 한 원두들과 디저트들이 특징이었다. 어제 마신 더치커피에서 카카오 맛이 나 무난하게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엄마는 핸드드립 커피를 시켰는데 다양한 맛이 나는 커피가 마음에 들었단다.


 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창밖을 보며 각자의 사색 타임에 느껴졌을 때 엄마가 운을 뗐다.


“엄마가 계속 노트북이랑 패드 보고 있으니까 할머니가 <그만 봐. 그러다 눈 나빠지고 네 몸만 상해! 처음에만 다들 어어, 하지 다음부터 누가 너 신경 써주기라도 할 것 같아?>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잘하려 했던 마음들이 풀리는 거야.”


 할머니의 자식 사랑은 남달랐는데 그 남다름은 계속해서 챙겨주는 것도 있지만 손주들이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을 절대 참지 않은 데 더 컸다.

어린 동생을 엄마가 45살에 낳고 한창 키울 때, 어린아이에게도 엄마를 고생시킨다고, 내버려 두라고 엄마를 붙잡곤 했다. 그 마음을 이해해보려 어릴 적부터 노력해보았으나 어쩔 땐 이해가 되다가도 어쩔 땐 질투가 아닐까 싶기도 하였는데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한 살씩 나이를 먹어도 어려운 일이어서 그저 자식을 가장 아끼는 ‘엄마’의 마음이려니 넘기곤 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에 엄마 자신도 몰랐던 감정이, 마음들이 풀려 너무 아등바등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것에 대해선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힘들 때, 혹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내 선택이 후회를 만들진 않을까 만약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고질적인 ‘만약에’ 병에 들었을 때 엄마는 늘 너무 가볍다 싶을 정도로 “괜찮아,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나중에 다 이어져 너를 만들어 줄 거야”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라 해주곤 했다. 어떤 날은 그 말이 너무 책임감 없이 가볍게 들려서 귓등으로 듣지도 않다가도 또 어느 순간엔 그 말에 고민하던 마음이 사르르 풀리기도 한다. 엄마도 할머니의 말이 짜증이 섞인 억양과 나무라는 톤이었음에도 그리 느꼈던 거겠지.


 엄마의 말이란,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의지하고 사랑받고 싶은 상대여서일까.

 나를 가장 사랑해주고 아껴준 상대여서일까.


 엄마의 말은 어떤 해결책도 책임의 무게도 없는데 그 누구의 말과 행동보다 복잡한 마음을 달래주곤 한다.


 그 존재 자체가 나를 버티게 있게끔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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