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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종규 Feb 15. 2023

[1] 이왕 할 거면 제대로, 공식부터.

Ellen MacArthur Foundation의 순환경제 3원칙

기후우울증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기후위기와 지속가능성에 대해 알면 알수록 답답해져 질려버리는 기분이 든다면 기후우울증의 전조 증상일까? 시험을 하루 앞두고서야 시험범위를 확인하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던 학창 시절의 기분이 떠오른다. 

기후위기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섞여 다가온 인류세의 종말 위기라고 한다. 복합적인 문제에 단순한 해법은 없다. 복합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 번에 하나씩,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 대충 했다가는 다시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제대로 하려면 기본 공식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이 여덟 꼭지의 졸필은 나에게도 찾아올지 모를 기후우울증의 예방약이고, 처방은 순환 경제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열린 FLTC(From Linear to Circular, 선형에서 순환으로) 무료 강의를 여러 번 참여했다. EMF(Ellen MacArthur Foundation, 엘런맥아더재단)에서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는 순환 경제의 기초를 익힐 수 있는 행운 같은 시간이었다.


EMF에서는 현대의 모습을 선형 경제(Linear Economy)라 하고, 선형 경제가 맞닥뜨린 환경과 사회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이 전환을 통해 인류가 조금이나마 더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지구에 머물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오늘을 만들어 나가자 손을 내민다.


20세기말, 처음 순환경제에 대한 개념이 등장하고 지금껏 많은 적용 사례가 있었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라고 생각하지만, 여러 사람이 앞으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시도하기 전에 순환경제에 대한 초점을 또렷이 맞추길 바라는 마음에서 EMF의 순환경제 3원칙을 적어 본다.


선형경제는 자원을 개발하여 상품을 만들고 소비한 후 폐기하는 흐름으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목화밭에서 생산한 목화솜으로 면 옷을 만들어 입다가 해지면 버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EMF는 선형경제의 모든 단계에 아래 순환경제의 세 가지 원칙을 대입해 보면, 적절한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1. 오염과 폐기를 근절 Eliminate waste and pollution 

EMF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자가 주체가 되어, 상품의 최종 단계(end-of-life)까지 고려하는 시스템 관점에서 전체과정을 다시 보고, 버리는 것이 없도록 다시 재설계(design out waste) 하자고 한다. 이때 말하는 폐기와 오염은 상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 토양, 공기 오염도 포함한다. 관점과 사고방식을 바꾸면 불필요한 오염과 폐기를 막는 설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필(Apeel)에서 출시한 식용 식물 코팅 기술은 슈퍼마켓에 진열되는 과일의 원산지/브랜드를 표시하는 스티커나 개별 포장비닐을 대체한다. 또한 러시(Lush)의 고체 샴푸바는 플라스틱 병이 아예 필요 없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다이쿠(DyeCoo)는 물을 쓰지 않고 이산화탄소를 용매로 한 직물 염색 장비를 개발하여 의류 염색 공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없앴다. 다운스트림(Downstream, 하류)이라 부르는 제품 사용 후의 흐름으로 흘러가는 폐기와 오염을 없애기 위해서, 제품을 만드는 단계인 업스트림(upstream, 상류)부터 설계를 바꾸라는 것이 1번 원칙이다.


2. 자원과 상품의 순환 Circulate products and materials

두 번째 원칙은 다운스트림으로 가기 전까지, 상품과 자원의 사용 시간을 최대한 늘리자는 원칙이다. 한정된 자원과 그를 이용한 상품을 효율적인 방법으로 순환하여 자원이 제 목적에 맞게 쓰이는 기간을 최대화 하자는 접근이다. 이 원칙의 적용 사례로 많이 언급되는 제라드 스트리트(Gerrard Street)는 전문가용 헤드폰 제조사이다. 모든 부품을 내구성이 좋게 표준화하여 모듈별로 교환이 편하게 디자인했다. 사용자는 월 구독료를 내고 사용하다가 신형 모듈로 바꾸거나, 낡고 고장 난 부품을 교체받을 수 있다. 필립스(Philips)가 백열전구에 비해 광물 자원을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삼파장 전구와 LED전구를 만들었던 것이나, 중고 거래 등으로 옷을 버리지 않거나, 의류 공장의 자투리 천이나 재고로 쌓인 옷들을 옷감으로 사용하는 것도 이 원칙의 범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원칙은 각 상품과 자원의 최고의 가치(at their highest value)를 지닌 상태로 순환할 것을 강조한다.

위 나비 모양 도식을 보면, 공산품과 같은 기계적 순환과 식품 등의 생물 순환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기계적 순환에 대해서는 휴대폰을 떠올려 보자. 수리하여 오래 쓰고 > 중고거래나 리퍼를 통해 계속 쓰고 > 수명이 다하면 자원을 추출하여 재활용하는 순으로 높은 순환가치를 매기고 있다. 생물 순환의 경우는 음식을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재료단계에서는 최대한 남김없이 먹고 > 퇴비, 에너지 발전 등으로 우선 가치를 두고 순환한다.


3. 자연을 되살림 Regenerate nature 

위 두 원칙은 물론이고 순환 경제의 개념은 모두 자연을 모방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자연에는 낭비가 없다. 나뭇잎이 떨어져 숲의 토양에 영양을 주는 과정에서 버림 없는 순환 구조를 배운다. 세 번째 원칙은 자연에서 자원을 추출하는 만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농식품 산업에 주로 적용하여 설명하는 데, 선형 경제의 식품 생산은 땅의 영양분을 고갈시키고 있으니 재생 농법을 적용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합성 투입물에 대한 의존을 줄이면서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건강한 토양 즉, 숲과 토착 초원과 유사한 자연 생태계를 닮은 농경지를 만들 수 있는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쓰러진 나무보다 살아있는 숲이 훨씬 더 큰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서 있는 숲(standing forest)’를 사업의 핵심 요소로 내세우는 남미의 최대 화장품 기업 나투라(Natura). 이 기업은 아마존 열대 우림을 보존하여 생물다양성을 지키면서 비누, 크림 등의 상품을 제조하고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 주에서 주도하는 커넥트 더닷츠(Connect the Dots)는 재생 농법으로 전환한 농가에서 시장가격보다 30% 비싼 가격에 농산물을 구입하여 취약계층 지원에 활용한다. 그린웨이브(GreenWave)는 바다 암초의 수직 구조를 모방한 3D 해양 양식업으로 조개류나 해조류를 생산하여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있다. 자연에 있던 물과 영양을 지켜낸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탄소 순환은 물론이고 가뭄과 홍수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


버릴 게 없도록 만들고, 오래 쓰고, 자연을 되살릴 것. 이 세 가지 원칙을 기본 공식으로 삼아 의, 식, 주 생활 속의 적용사례를 풀어보려 한다. 그전에 먼저 플라스틱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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