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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rose Feb 25. 2023

잘 살아내기 위해 오늘도 요가를 한다

제대로 숨 쉬고 몸을 하나씩 인식하기


 하루를 온전히 ‘살아 냈다는 기분. 여기서 ‘ 기준은 약간의 성취감이라도 괜찮으니 내가 ‘살아있는기분을 느끼는 . 여가시간을 아무리  보내도 결국엔 출근과 동시에 시간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만 같이 답답했다. 일을   7년이면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이지만  시간을 돌아봤다. 생활  소소한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기에는 학교 일에서 오는 과도한 책임감과 무게감이 내겐 너무 크고 버거웠다. 심지어 최근엔 교직에 회의감과 번아웃이 오니 거부감까지 들었다. 무거운 눈꺼풀과 몸으로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요이땅하면 정신없이, 점심때마저도 제대로 식사하지 못하고  돌릴 틈도 없이 일을 한다. 소용돌이가 한바탕 몰아치고 시계를 보면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일을 오래 하면 소위 짬이라는  생겨서 여유 시간이 생길  알았건만 나의 직장 생활 패턴은  다를  없이 일관됐다. 이번에 옮긴 학교에서는 친한 짝꿍이 없는 것도 맞지만 누구와 수다를  틈조차 없다. 누군가 커피를 내릴 때면 교무실에 향긋한 커피 향기가 가득 차고 문득 커피   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지만,   발자국도 움직일 마음이 내키지 않아 앉은자리에서 계속  닫고 부동의 자세로 업무를 한다. 이전 학교에 있을  몇몇 선생님들이 모니터 뚫어지겠다며 눈도 깜빡거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지나갔었는데 실제로    집중을 하다 보면 내가 숨을 쉬는지도 모르겠다. 숨을 멈추고 있던  같기도 하고. 집에 오는 길에는 오늘 생겨났던  사람(주로 학생)과의 감정싸움들과 결론 나지 않은 미해결 난제들이 줄줄이 뒤꽁무니를 따라온다.


 일과 시간 해낸 일 중에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을 떠올리자면 새로 준비한 수업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던 경우. 그 외의 경우는 딱히 없다. 불안을 떨칠 수 있는 그나마 다행인 날의 경우는 퇴근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날이거나 혹은 드물지만 아무런 안전사고, 폭행, 갈등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다. 학교는 겉으로 봤을 때 아주 평화롭다. 점심시간 따수운 햇볕아래 산책을 하고 공을 가지고 노는 학생들을 보면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 없다. 그러나 그 작은 학교 건물 안에서는 아주 다양하고 어이없는 사건 사고들로 가득 차 있어 예측불가능하다. 마음이 다치고 무력해지고도 그 상태를 애써 티 내지 않으려는 동지들의 분위기로 답답해져 버린 교무실.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학기 초반에는 학생들끼리 서로 내외하고 선생님들을 상대로도 이미지 관리를 하기 때문에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라,   동안은 반듯하고 충만한 에너지를 가지고 안정적이게 지낼  있다. 하지만  평화의 시기도 잠시 학교는  그대로 시장통, 전쟁통이 된다. 조용한 성격에 소음을 싫어하는 내가 어떻게 선생이  생각을 했을까. 퇴근하고 집에 오면 평온을 되찾고 잡생각을 잊기 위해 유튜브를  화면으로 켜놓는다. 풍족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듯한 예쁘장한 유튜버의 일상 브이로그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한다. 화면에서 맛있는 음식들과 술을 들이키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칠  있겠나. 오늘 하루 있었던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술을 먹지 않을 수가 없고 해가 갈수록 소주와 위스키는 맛있어진다. 정말 힘들었던 날은 당도가 느껴지는 고급 와인보다 씁쓸한 소주가 제격이다. 부어라 마셔라 하다 보면 자기 직전까지 안주와 술로 배를 채우다 어느새 장소를 불문하고 소파에서든 의자에서든 잠들어버린다. 다음날 출근과 수업을 생각하면 차라리 잡생각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보다 술로 고민을 잊어버린 상태로 잠들어 다음날 아침 힘든 몸으로 출근하는  해결할  없는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감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있다.


 교사는 원래 방학 중 학교 출근을 안 해도 되는 기간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데, 나는 매번 그 기간을 알차게 쓰지 못했다. 온전히 쉰다는 느낌을 받는 건 약 2주 정도뿐이고 그 뒤로는 며칠의 출근날과 다가오는 개학 날짜 때문에 불안감과 압박감이 항상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안심을 했다가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내리 쉰 날에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밀려왔다. 밖에 나가고 싶지만 나가고 싶지 않은 이상하고 모순된 감정이 서로 싸우면서 결국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티비를 보는 부동의 자세로 하루를 버렸다. 새로운 해에는 새로운 수업들을 시도해 보겠다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수업 준비는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 차일피일 미룬다. 매년 바뀌는 업무 분장, 혹시나 부장 자리를 권유할까봐 가슴이 턱 막히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승진에 쥐콩 만큼도 욕심이 없기 때문에 부장 자리에도 관심 없고, 단지 새로 만나는 아이들이 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새로운 학급 아이들과는 꼭 잘 지내보고 싶다는 마음은 내 능력 부족으로 매년 좌절됐다. 해가 갈수록 에너지도 희망도 사라졌다.

 내 신체가 무너져 건강을 잃은 것을 방관하고 반복되는 감정싸움에 지쳐 마음이 닳아가고 있는 중에, 끝없는 정신적 불안감과 그것이 그나마 해소되면 또 다른 불안을 낳는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오히려 내가 이 일을 멈추지 않도록 근근이 버텼다. 외부 요인으로 인한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내면을 전혀 살피지 못하니 바쁜 현재로 인해 건강은 차일로 미루고, 내가 몸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숨을 제대로 쉬고는 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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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을 제대로 쉬기 시작하고 스스로 건강을 챙기기 시작한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방학 기간이지만 휴직을 냈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를 가질  있어서 그런지, 마음 편히 백수의 입장이 되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걱정과는 다르게 매일이 불안하지 않으며 시간이 가는  아쉽지 않고 충만한 날이  된다. 이렇게 행복감을 느낄  있게  가장  요인 중에 하나가 ‘요가이다. 20 시절 플라잉 요가가 유행했을 시기에  근처 요가원에서 요가를 경험한  있다. 천에 매달려  몸무게만큼의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고난도 동작들은 초심자인 내게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왔고  발걸음을 요가원으로 이끌지 못했다. 요가는 유연성을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스트레스로 힘들어할 때마다 남편이 요가를 해보라며 권했지만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운동이 정신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알고 있기에 오랫동안 쉬었던 몸을 어떤 운동으로 새로 만들까 하다가 고민되었던  가지가 헬스와 요가였다. 헬스는 연속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잊을만하면 시작해서 꾸준히 해왔던 근력 운동이라서 예쁜 몸을 만들기에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몸은 힘도 하나도 없고  아픈 곳이 없었던 만신창이여서 무게를 쳐야 하는 헬스는 부담스러웠다. 제대로 시도해보지 않았던 요가를 해보고자 괜찮은 분위기의 요가원을 찾아보고 체험해 보기로 했다.


  기대 없이 방문했던 요가원에서 체험 수업을 해보고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바로 3개월권을 끊었다. 요가원과 요가 종류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는데 내용이 자세하고 친절하지만 다소 수줍었던 선생님의 시선과 목소리에 오히려 신뢰감이 생겼다. 요가가 한국에서도 많이 발전을 해온 터라 예전처럼 가요를 틀어 놓고 신나게 요가를 하는 것에서 벗어나 제대로  요가를 수련을 하는 곳이 많아진 듯하다. 2번째 요가 수업에서는 ‘ 움직임에서 착안한 ‘오다카 요가라는 것을 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대중적이지 않은 약간 생소한 요가 장르 같았다. 말씀을 이어 가시는 맨얼굴의 선생님이 마스크를 썼음에도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왔고 서커스가 아닌, 제대로 요가를 수련하신 분인  같아서 반해버렸다. 그분께 칭찬받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했다. 타고난 성실함으로 선생님께서 하라는 대로 열정적으로 따라 하고 몰입해서 수련에 임했다.


 잔잔하게 시작하다가 요가 동작이 커질 때쯤엔 기가 막힌 타이밍에 벅차오르는 음악을 들으며 마치 춤을 추듯 척추를 움직이는 요가 동작들을 하고 나니 마치 내가 오랜 수련자가   마냥 맑은 에너지를 흡수하는 느낌이었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요가를 하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정확한 아사나(자세)만큼이나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시돼서 ‘제대로 호흡하는  익힐  있다는 것이다. 동작도 빠르지 않고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아사나를 완성해 가면서  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명상을 하는 효과까지 느꼈다. 내가 동작 하나하나를  때마다 몸의 감각과 기능들을 온전히 알아차릴  있다는 , 숨을  의지대로 의식하며   있다는 사실이 당연한  같지만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나로서는 꽤나 감동적인 일이었다.


 그런 내 바람에 닿았는지 집에 가려고 옷을 갈아입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데 그 아름다우신 선생님의 동그란 눈이 커지면서 내게 오다카 요가를 해보셨냐고 물으셨다. 어릴 때 요가 2번 해본 게 다라고 말씀드리니 굉장히 잘하시는 편이라고 칭찬해 주시는데 속으로는 내적 기쁨을 느꼈으나, 쓸데없는 체면을 차리려 침착함을 유지했고 몰입을 하니까 됐다 하며 겸손을 떨었다. 열심히 해보겠다는 어색한 주먹으로 의지표명을 하고 집으로 향하면서 근거 없는 확신을 느꼈다. 칭찬받을 일이 별로 없는 평범한 어른들에게도 ‘진심 어린 칭찬’은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단 사실을. 그리고 요가는 이제 앞으로 나와 영원히 동반할 것이며 요가를 할 때의 호흡과 아사나를 대하는 마음 가짐을 수련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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