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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선열 Oct 14. 2024

도파민 총량의 법칙

나이듦이 나쁘지만은 않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기쁜 것도 슬픈 것만도 아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라는 작품에 속에 들어 있는 말입니다.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며 삶의 의욕을 잃어가던 늙은 잔느가 어린 손주를 안고 얼굴에 미소를 띠면 하던 말이지요. 그때  잔느에게는 도파민이 어느 정도 뿜어져  나왔겠지요,  나이 들면 도파민도 힘이 약해진다 합니다. 젊은 시절 조그만 일에도 도파민이 뿜뿜 터져 나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는데  이 나이가 되니 그렇게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어지더라고요. 굴러가는 낙엽만 보아도 떼구루루 구를 정도로 흥분했는데 예쁘게 돋아나는 새싹을 보고도 빙긋 미소한 번 지을 뿐입니다. 나이 들면 도파민 양이 50% 이상 줄어든다 하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동양에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군자의 도리라 하여 감정의 기복을 나타내지 않아야 성인이 되었습니다. 절제의 미덕이지요, 여자의 경우는 더욱 자신을 나타내기보다는 숨어서 지내야 했습니다, '도파민 뿜어져 나오는 일을 절제하는 것' 이 삶의 과정이었습니다.


근대화되며 사회 현상이 많이 바뀌기는 했습니다만 사람의 성정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지요. 자라는 동안에도 계집애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현대에도 히잡을 써야 하는 여자들도 있으니 불평을 말하지는 않으렵니다. 안타까워서 하는 말입니다. 도파민 뿜뿜 뿜어져 나오는 경지를 즐겨 보고 싶은데 마음뿐입니다. 기쁜 일도 너무 슬픈 일도 덤덤해졌습니다. 그럴 수 있구나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어머니를 여읜 일도 그렇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세상이 온통 화사하던 날, "이제 어머니는 더 이상 벚꽃을 보실 수가 없구나" 하며 눈물 한 방울 흐를 뿐이었습니다. "98세까지 사셨으니 호상입니다" 하던 말을 인정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슬픔이란 건 총량이 있는 법인가 봅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슬픔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거지요. 한꺼번에 울음이 터지는 경우도 있고 두고두고 조금씩 슬픔에 젖어 드는 경우도 있는가 봅니다. 때때로 시도 때도 없이 솟구치는 슬픔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세상 어떤 일이 엄마와 관계없는 일이 있겠습니까? 엄마 손에서 자란 우리들입니다. 밥 한 수저에도 어머님 모습이 담기고 떠도는 구름에도 어머니의 모습이 같이 떠돕니다. 부모상을  당하면 곡을 하던 풍습이 옳은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한꺼번에 풀어내지 않으면 두고두고 조금씩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도파민 총량의 법칙이라 해도 괜찮겠습니다.


나이 들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온화한 미소를 품은  할머니였거든요, 젖은 낙엽에 떼어 구르를 구르는 사춘기 소녀들은 한꺼번에 도파민을 분출하지만 노인이 되면 하루 종일 도파민을 조금씩 분출하는 겁니다. 나쁘지 않지요? 나이 들어 보니 그리 나쁘지만도 않은 노년입니다. 폭발하듯 분출하는 도파민을 감당하던 젊은 날이 조금 측은해지기도 합니다, 사춘기 시절 울다가 웃다가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도파민 과잉입니다. 그저 그렇게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가는 듯 보이는 노년의 삶에도 기쁨과 슬픔이 같이 합니다. 그리움도 있고 사랑도 있습니다. 젊음이 큰 파도가 치는 광폭한 바다 같다면 노년기는 잔잔한 바다 같습니다. 경험치가 다를 뿐이지요, 젊은 시절에  큰 파도를  넘어야 노년에 잔잔한 바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게 인생이지요 모파상이 말한 그리 기쁘기만도 슬프지만도 않은 인생,


인생에서의 금메달은 다른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금메달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좋은 거지요?. 우리 인생의 금메달은 스스로 주어야 합니다. 노년기에 스스로 금메달을 수여할 수 있는 인생이라면 괜찮은 거지요? 그리 기쁜 것만도 슬픈 것만도 아닌 인생에서 스스로에게 줄 금메달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인생이 아닌가 합니다. 도파민이 마구 분출되는 젊은 시절을 지나 맞이하는 노년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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