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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선열 Nov 12. 2024

건망증 고치기, 글 쓰기를 한다



  건망증은 나이 들어가는 여자들이 당연히 거쳐가야 하는 통과의례 같았다.

우리는 냉장고에 두부가 쌓이기도 하고 양파 자루가 베란다에 두서너 개씩 나뒹굴기도 하며

냉동실에서 TV 리모컨을 발견하고 신발장에 장갑을 벗어 놓았다며 킬킬거렸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던가?

입은 웃고 있지만 눈동자는 방황했고  당황스러웠으며 생활은 불편해졌다

처음엔 깉이 웃어 넘기던 주변 사람들이 짜증을 내다가 급기야는 화를 내기도 했다


핸드백을 잃어버려 찾아다니는 일이 다반사였다.

핸드백  분실보다 불편한 것은 휴대폰 분실이었다

자칫 벨 소리가 묵음으로 되어 있으면 집안에서도 휴대폰 찾느라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야 했다

장롱 속이나 싱크대 서랍 신발장에서 발견하는 날은 마치 이사 온 집 같았다


매너도 좋지만 벨 소리를 크게 세팅해야 마음이 놓였다

벨 소리 때문에 무안해지는 건 어쩌다 한 번이고 휴대폰을 찾아 헤매는 건 다반사였다

어쩌다 한번이 견디기 어려워지자 휴대폰에 긴 끈을 달았다

목에 매고야 외출이 가벼워졌다

핸드백과 휴대폰, 외출 때마다 긴 줄 두 개가 허리께까지 늘어져 있다

70 무렵 노파들의 트레이드마크 같다

나이 들어도 티 내지 말자던  젊은 날의 맹세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그때부터 혼란스러워진다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건 괴로움이라기보다는 아픔에 가깝다

결코 겪고 싶지 않은 통증

가까운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직은 건망증 일 때  

더 발전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건

꽤 설득력 있는 명분이 되었다

오래 살기보다는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생긴다


스스로 건강을 챙길 수 있을 때까지가 삶이라는 나름의 한계도 설정해 본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기는 하다

건강한 노후를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병상에 누운 사람일수록 건강의 중요성을 실감하기도 하지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아직은 건망증일 때 더 이상 발전하지 않도록 노력해 볼 일이다

구구단을 왼다거나 고스톱 놀이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려다니는 중년 이상 여인들을 폄하하지만은 말자

그들 나름대로 안타까운 몸부림일 수도 있다


고스톱도 칠 줄 모르는 나는 다행히  나이 70 무렵 글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는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우선 혼자 할 수 있다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느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따로 준비할 것도 없으며 돈도 들지 않는다

휴대폰이나 노트북 앞에 앉으면 그것으로 준비 끝

시간과 장소도 별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가끔은 햇살 내리쪼이는 창 넓은 창가에 큰 책상을 마련하는 꿈을 꿔 보기도 하나 필수는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작은 로망으로 남겨 본다.

작거나 크거나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또 다른 삶의 축복이다, 커다란 활력소가 된다

때로는 건망증마저 잊게 한다


내게 글을 쓴다는 건 생각을 정리하는 꿀 팁이다

사람들은 생각한 것을 글로 쓴다지만 나는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어 간다

언젠가는 내가 생각한 것을 일목요연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쓰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는 글쓰기 초보이다

까마득히 수면 아래로 잠들었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지난 일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해지기도 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분명해지기도 한다


두부를 사다 놓은 날은 두부요리에 대해 쓰고 감자를 사면 감자에 얽힌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말이나 생각은 사라지지만 글이 되면 남는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찾아간다

잊고 있었거나 숨어 있었던 나도 모르고 있던 내 모습 .

머릿속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듯하다

잘 정리가 되면 건망증은 도망간다

건망증이 생길 수 있는 틈이 없어진다

건망증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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