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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푸른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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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 Jan 13. 2023

양말을 널고

엽편소설 #2


인생은 한 번도 뜻대로 된 적이 없었다. 


현수는 자신에게 꼬리처럼 붙어 다니는 그 생각을 또 떠올리고 있었다. 도박중독에 빠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지긋지긋하던 인간이 사라져 장례식장 한구석에서 현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인간이 빚을 남길 걸 알게 되었고 지긋한 인생 뒤에 남은 잔해물을 바라보고 울음이 나왔다. 도망쳐버린 엄마는 어딘가에서 웃고 있을까. 돌발성 난청이 찾아왔고 금방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았을 때도 저 문장을 떠올렸다. 주변 사람들은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기운이 온다고, 그래야 좋은 일이 너에게 찾아올 거라고. 그럼 내가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이런 불행들이 줄을 있듯 찾아온 것일까. 나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일까. 햇빛이 들지 않는 방구석에 앉아 생각은 생각을 낳고 생각이 또 생각을 낳았다. 양말이 가득 쌓여있는 통을 보고 발로 한번 차버릴까 하다 세탁기에 고이 넣고 돌렸다. 나마저 내 인생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데. 어느새 나는 그런 인간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끊어내야 돼. 작은 것부터 하면 될까. 저 양말부터 빨면 될까. 그렇다면 습기 가득한 방구석에 말리기보다 햇빛에 수분기 없이 바짝 말리고 싶었다. 보송보송한 양말을 신을 수 있다면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탈수된 양말들을 껴안고 집 근처로 나와 양말을 널 수 있는 곳을 살폈다. 적당한 곳을 찾았다. 여기다. 다양한 색의 양말들이 거리에 널렸다. 널고 있는 자신이 조금은 우스워 조금 웃었었나. 작은 햇빛조차 허용되지 않은 집에서 나와 햇빛이 허용된 공간에 나의 양말을 걸었다. 나의 불행이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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