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온통 채워야 할 것들로 가득하다. 먼저 건강을 위해서 음식, 수면시간 그리고 운동량을 채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인 채움도 필요하다. 시대의 유행에 따라 조금 달라지기는 하지만 독서나 취미생활, 다양한 활동들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채워가곤 한다.
채움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통해서 가능하다.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만이 채우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말처럼 자신만을 위한 시간들을 확보하는 삶이 그리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사실 우리가 바쁘게 채워나가야 하는 것들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어진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노동에 투입하며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나를 돌보는 삶이 중요하지만 나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는 것이 또한 인생사가 아니던가. 돈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다. 돈이 먼저 채워져야 뭐라도 시작할 수 있다. 거기다 가족도 돌봐야 하는 등 맡겨진 역할이 넘쳐난다. 이미 우리에게는 채워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그에 비해 주어진 시간은 부족하다. 이 지점에서 당연히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계와 관련된 일들에 더 매달리게 된다. 나를 돌보는 일에서 손을 뗀다. 우선순위에서 '나'는 밀려나 버린다. 나를 위한 채움의 시간을 쉽게 포기해 버린다.
결과는 모두가 알듯, 조금씩 스스로의 삶이 금 가기 시작한다. 인지하지 못하고 방치하다 보면 무너지기도 한다. 나를 위한 돌봄과 채움이 사라진 삶은 마치 오랜 가뭄에 다 말라버린 땅처럼 갈라지고 굳는다. 오래 버텨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뒤늦게 스스로의 상태를 깨닫고 텅 빈 자신을 마주하게 되면, 견딜 수 없는 허무감이 전신을 감싸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나를 채우고 돌보는 시간들을 갖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의 영역에만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내가 그랬다. 마음의 감기에 걸리고 나니 하루에 수도 없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아마도 돌봄과 채움을 하나 둘 포기하기 시작했던 그때 나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탔을 것이다.
오직 나를 채우는 것은 우울, 허무, 공허였다. 이것들을 몰아낼 에너지가 생기질 않으니 그 무게에 몸을 맡기고 짓눌린 채로 살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에 비해 더 특별히 힘든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민한 편인 건 사실이지만, 나도 내가 이 정도가 될 줄은 몰랐다. 치료를 받을수록 내가 스스로를 채우는 것에 소홀히 했음을, 모든 것이 나를 돌보지 못한 것에 대가임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바빠서 나를 제대로 채우고 돌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면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고 본다. 바쁜 삶을 살고 있을수록 조심해야 한다. 갑자기 찾아오는 몸살처럼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 우울증이다. 삶의 패턴이 대부분 그러하기에 안타깝게도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채움’은, 빈 상태가 되지 않도록 자원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텅 빈 상태를 꽉 찬 상태로 만들어가는 과정. 삶은 나를 위한 채움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 적당한 채움이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나를 지키고 돌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더 건강하게 세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 구석으로 몰아냈던 자신을 돌보는 일에 다시 마음을 둘 때이다. 나를 나답게 세워주는 것은 오늘 내가 채워낸 작은 실천들이다. 그것이 삶의 균형을 잡아주고,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사진출처: Photo by Francisco Moren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