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백일장과 사생대회가 열리면 늘 참가했었다. 글짓기 한 편과 그림 한 점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글짓기도 그림 그리기도 소질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때는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 것이라서 억지로 갔던 것뿐이다.
사실 왜 이런 대회를 하는 것인지 어린 나이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회가 열리는 곳은 언제나 탁 트이고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 시내 유원지이거나 서울에서 가장 큰 공원이곤 했으니까.
조금 더 어렸을 때만 해도 이런 곳에는 주로 소풍이란 이름으로 놀러 왔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자 소풍이라는 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백일장과 사생대회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가벼운 소풍 배낭 대신 책가방과 거의 내 몸을 다 가릴 것은 큰 화판을 들고 가야만 했다. 모두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을 벗어나 바깥바람을 쐰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던 것으로 기억한다.
맛있는 간식들과 게임 대신 정해진 시간 안에 제출해야 하는 숙제만 주어진 상황. 국어 수업과 미술 수업을 밖에서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선생님들의 통제는 엄격해서 점심시간 말고 이렇다 할 자유시간도 없었다.
이럴 거면 왜 굳이 번거롭게 우리를 밖으로 나오게 했을까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왜냐하면 나와 친구들은 그렇게 모범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일단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주어진 글짓기와 그림 그리기는 새까맣게 까먹어 버릴 정도로 말이다.
정신없이 놀다보변 어느새 마감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당연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몽둥이찜질을 당하지 않으려면 뭐가 되었든 제출은 해야 했다. 우리는 나름 전략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놀지는 않았다. 여기서 더 놀면 진짜 뭐 된다 싶을 정도까지만 놀았고 마지노선에 이르렀을 때쯤 자리에 앉아 주섬주섬 원고지와 화판을 꺼내 들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내가 어떤 재능이 있는지는 잘 몰랐지만 어느 부분에 재능이 없는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나열하자면 꽤 되지만, 그중 1등은 단연 그림 그리기다. 내가 유치원 때 그린 그림과 고등학교 때 그린 그림을 비교해 본다면 어느 누가 보아도 언제 그린 것인지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워낙 못 그리는 그림을 그리려니 더 하기 싫었지만 맞기는 더 싫었기 때문에 막 그려서 제출하기는 했다. 분명 나는 자연을 보고 풍경화를 그렸지만, 누가 봐도 추상화에 가까웠다. 그에 반해 반 친구들 중에 그림에 소질이 있는 애들은 막힘없이 그려내곤 했다. 사진을 찍은 것처럼, 스케치북에 그대로 복사해 내는 능력을 보면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글짓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림보다는 조금 덜 싫었지만 글을 쓰는 것 역시 꽤나 싫어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딱 한 번 독후감인지 동시 발표인지 장려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 뒤로는 학급에서 주는 상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그때 받은 상도 순위가 큰 의미 없는 말 그대로 장려 차원에서 주어진 상에 불과했다.
그림을 너무 대충 그려서 글짓기는 조금 더 공을 들여보고자 노력은 했다. 하지만 막막하기는 비슷했다. 원고지 두 장 정도 쓰면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최소한 채워야 하는 장수가 있었다. 그건 채워서 내야 했기에 그 뒤부터는 말 그대로 '글짓기'였다. 말인지 방귀인지 말도 안 되는 아무 말 대잔치의 향연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백일장과 사생대회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억지로 그림을 그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내 방 한편에 모셔져 있던 화판과 원고지들을 내다 버렸다.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 재능도 흥미도 없는 일을 더 이상 억지로 할 필요가 없어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글쓰기는 조금 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전혀 안 할 수는 없었다. 대학에서 주어지는 과제는 거의 대부분 글쓰기를 기반으로 하는 리포트였고, 심지어 시험도 서술형이 대부분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백일장 대회가 사라진 대신 학기 중 수시로 글이라는 형식으로 된 무언가를 끊임없이 써야만 했다. 원고지에 직접 쓰지 않을 뿐 커서가 깜빡이는 모니터 화면을 가득 글자를 채우는 삶의 연속이었다.
글쓰기에 젬병이니 대학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다. 군대를 다녀와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글쓰기는 나를 괴롭혔다. 학교를 졸업해도 글쓰기로부터의 해방은 이뤄지지 않았다. 취업 준비를 할 때 작성해야 하는 자기소개서 역시 입사 서류를 빙자한 글쓰기였다. 그림 그리는 것이 가장 싫은 일이었다면, 글쓰기는 가장 오래 내 곁에서 나를 괴롭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꼬리표처럼 붙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글쓰기는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평범한 회사를 다녔고, 내가 맡았던 업무들은 딱히 글을 쓰는 것과는 상관이 없었다. 드디어 글쓰기마저 떼어냈다. 내 인생에서 영원히 삭제한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제는 며칠 쓰지 않으면 불안감이 들 정도다. 글쓰기가 취미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취미로만 치부하기에는 뭔가 서운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다. 아마 계속 쓰고 싶고,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글쓰기를 조금 더 일찍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죽자고 나를 쫓아다니던 글쓰기를 밀어내지 말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 볼 걸 하는 후회 같은 것이 든다. 조금 더 일찍 쓰는 것을 내 가슴에 품어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늦은 만큼 이제라도 더 열심히 더 많이 써보려고 한다. 더 이상 백일장에 억지로 끌려가 쓰지 않아도 되지만,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내 글을 내어놓고 있다. 부끄럽기도 하고 평가받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써낸 글이 어제 쓴 글보다는 조금은 더 나아졌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오늘 하루 내가 억지로 해야 하는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지금 하기 싫은 그 일이 미래의 나에게는 사랑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쩌면 지금 글쓰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제는 좋아하게 된 글을 쓰며, 먼 훗날의 나는 또 어떤 것을 지독히 사랑하며 행복해할지 상상해 본다.
*사진출처: Photo by Trent Erwi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