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기록적 더위...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
▲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위로 지열에 의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4.8.16 ⓒ 연합뉴스
요즘 날이 더워도 너무 덥다. 더위가 당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에서는 연일 폭염 경고 문자가 울린다. 밤에도 기온이 크게 내려가지 않아 서울은 18일 기준 31일째 열대야를 기록했다. 이미 기상 관측 이래 최장기록을 깼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매일 신기록이 경신될 듯하다.
연속으로 최장일뿐 아니라, 총 열대야 일수도 기존의 기록을 넘어설지도 모르겠다.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고 회자되는 1994년의 여름, 서울 기준 열대야는 총 36일로 역대 1위였단다(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그리고 2016년 여름이 32일로 2위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서울 열대야 일수는 8월 19일이면 32일이 돼 2위를 따라잡는다.
낮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밤이 되면 어느 정도 열기가 식어줘야 그나마 버틸만할 것이다. 그런데 밤이 돼도 그렇지가 않다. 최근 열대야와 폭염은, 역대 1위 최장 기록인 1994년의 열대야 기록(36일)에 단 4일, 간발의 차로 바짝 다가섰다.
객관적 수치는 놓고서라도 유독 올해 더위가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과거는 지났고 지금은 진행 중이라서? 그런데 이대로라면, 올여름이 1위에 등극하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 일기예보에 따르면 비소식이 잠깐 있기는 하지만, 더위 자체는 크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1994년 여름이 지켜왔던 '폭염 1위' 자리를 내어줄 때가 오고야 만 것일까. 폭염의 전설로 기억되는 그해 여름, 서울은 무려 최고 기온 38.4도를 기록했다(단순히 최고 기온만 놓고 보자면, 이 기록은 사실 2018년의 39.6도보다는 낮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1994년은 당연히 지금보다 에어컨 보급률이 훨씬 적었고, 심한 가뭄까지 더해졌단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18년 48명 보다 거의 두 배 많은 92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2018년이 아닌 1994년을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하는 이유일 것이다.
1994년,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지냈을까... 찬물 등목, 틈만 나면 세수
▲ 심한 가뭄으로 인해 특별 모금 생방송까지 했었다. (엠빅뉴스 화면 캡쳐) ⓒ MBC
1994년에 나는 중학생이었다. 체감상 역대급으로 더웠던 여름을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보냈다. 아무리 어린 나이였다 하더라도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 집이나 학교에는 에어컨도 없었는데 고작 선풍기 한두 대로 어떻게 여름을 이겨냈는지 신기하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어딜 가나 에어컨이 풀가동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여름은 유독 덥게 느껴진다. 실내를 벗어나면 몇 걸음만 걸어도 땀이 흥건해지고 맥이 빠진다. 주변 지인들도 입을 모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30년 전보다 오늘날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더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여름이 훨씬 더 덥고 힘들다고 느낀다.
아마도 과거의 여름은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보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피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시피 더위는 그저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태양을 피해 산이나 바다로 조금이라도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곤 했다.
나 역시 여름 방학이 되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계곡에 놀러 갔던 기억이 난다. 물에 발을 담그고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었다. 새까맣게 살이 타는지도 모른 채, 물장구를 쳤다.
방학이 아닌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원한 계곡에 매번 갈 순 없으니, 더위에 지칠 때면 친구들과 함께 수돗가를 찾았다. 세수를 하는 것인지 머리를 감는 것인지 모를 이상한 꼴로 상의가 다 젖도록 땀을 씻어내곤 했었다.
물기 가득한 채로 북적북적한 교실로 돌아가면 또 친구들과 장난치느라 물방울은 금세 땀방울로 바뀌었다. 지독한 땀 냄새조차 조금 지나면 코가 마비된 듯 익숙해졌고, 우리는 공책이나 책받침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을 다 말리곤 했다.
▲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홀로가 아닌 함께여야 더 잘 이겨낼 수 있다. ⓒ jeremybishop on Unsplash
가끔 운이 좋으면, 교실 양쪽 벽에 붙어 있던 2대 선풍기의 회전 반경 내에 앉을 수 있었다. 스치는 바람이지만 몇 초 간격으로 나를 향해 바람을 불어주는 선풍기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저녁 먹고 밤이 되면, 찬물로 등목을 하고 옥상에 돗자리를 펴고 눕곤 했다. 수박 한입 베어 물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어디선가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던 기억이다.
돗자리 한쪽에서는 옆집 아이들이 시끄럽고 떠들고 어른들도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새벽이 되어서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열대야에 지치지 않을 정도, 딱 그만큼 불어와주는 눅눅한 바람이 고마웠다. 열대야를 이기고 잠에 들 수 있게 해주는 자연의 선물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1994년의 여름을 제법 견딜만 했던 여름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풍경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상 최초 <폭염백서> 발간한다는 기상청
▲ 1994년 7월 23일 KBS 뉴스 화면(유튜브 화면 갈무리). 당시 역대급 폭염에 지친 사람들이 길가 그늘에서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더위를 피하고 있다. ⓒ KBS
과거의 여름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수월했던 게 단순히 추억 보정의 효과만은 아닐 것이다. 그땐 함께 시원한 음식을 먹고, 시원한 곳들을 찾아다니며 더위를 이겨냈었다. 더위 속에서도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무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늘 붙어있었던 기억이다. 교실과 사무실, 집을 떠난 피서지에서조차 말이다.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늘고 있다. 불과 며칠 전이었던 16일에도 충남 예산군의 한 주택창고에서 87세의 여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숨진 사고가 있었다. 올여름 누적된 온열질환 환자는 사망자 23명을 포함해 270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8%나 늘었다고 한다.
폭우가 오면 반지하에 사는 이들이 위험하듯,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는 매번 사회적 약자들을 향하곤 한다. 더위든 추위든, 계절의 난폭함은 항상 홀로 살아가는 계층들을 먼저 덮치기 마련이다.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홀로가 아닌 함께여야 더 잘 이겨낼 수 있다. 이렇게 폭염이 계속 될수록,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은 없는지 한번 더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원인과 구조 등을 분석, 기록적 폭염에 대응하고 이를 예비하려 기상청이 연내 <폭염 백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장마나 태풍에 관한 백서를 낸 적은 있어도, 폭염에 대한 백서는 사상 처음이란다. 그만큼 정부 역시 폭염을 단순히 기상 현상이 아닌 국가적인 재난상태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속히 발간되어 폭염을 사회적으로 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기 싫지만, 기후 위기는 아마 계속 가속화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함께하는 국제적 협력도 중요하지만, 당장 내 주변 사람들, 내 옆집은 어떤지 돌아보고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 아닐까.
내려쬐는 땡볕 더위에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지라도, 잊지 말고 기억해보자. 무섭게 더워진 이 계절, 결국은 한 명의 힘이 아니라 모두의 힘으로 함께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진출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