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밤 거리
오전 11시 15분.
늦은 새벽까지 겨우겨우 소설을 서둘러서 탈고할 즈음, 새벽 내 천둥과 번개가 세상을 삼킬 듯 요란스럽게 난리를 쳤다. 하지만 그렇게 맞이한 아침은 뻔뻔스럽게도 싱그러웠다. 오히려 평화롭게 물기를 머금고 있는 땅과 나뭇잎은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는 모양새가 뻔뻔스러울 정도였다. 이제는 제법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바람이 불어대지만 내 몸속 자율신경계는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온도와 상관없이 조금이라도 습도가 높거나 답답하게 느껴지면 여지없이 땀을 흘린다. 이제 짐 정리를 마치면 남쪽 지방에서 다시 중부지방으로 올라가야 한다. 현장 일을 하는 사람의 숙명이지만, 매번 짐을 챙길 때마다 드는 서글픔은 없어지지 않는다. 전국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다음 현장에는 무슨 에피소드가 또 기다릴까 하는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생겨나며 우울하게 만든다.
분주하게 짐 정리를 마치고 보니 짐 보따리가 일곱 개 가 만들어졌다. 전세사기로 집이 없어지고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 이후, 밥 한 끼 사 먹는 돈도 아까워서 최소한의 식기도구를 챙기다 보니 짐이 많아졌다. 다행히 이 정도의 짐은 경차에 모두 들어갔다. 운전석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짐을 꾸깃꾸깃 집어넣고 건물을 휘이 둘러보니 짧았던 시간 동안의 기억이 떠올랐다. 층간 소음으로 다투었던 사건, 주차 자리가 협소해서 눈치게임하듯 주차 자리를 차지하려던 일상들이었다. 사람의 모든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변하나 보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모두 해결하고 살아가지는 못한다. 나름대로의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층간 소음 때문에 다투었던 이웃에게 작별 인사보다는, 부채를 남기고 야반도주하는 빚쟁이처럼 씁쓸한 마음을 가지고 떠나야 했다.
경부고속도로 위를 달린 지 30분 정도 지날 때, 알 수 없는 설움이 복받쳤다. 무엇이 그토록 억울했는지 잘 모르지만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일부러 참지 않고 음악소리를 더욱 크게 키우고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놓고 울 수 있어서 나는 고속도로가 좋다. 담배 재떨이로 변신한 플라스틱 주스 통 안에 담배꽁초가 가득 쌓여있다. 그나마 제 몫을 다하는 건 이놈뿐인 것 같다. 네 시간 반에 걸쳐서 도착한 경기도 외각의 작은 마을. 지은 지 오래된 빌라 건물의 숙소는, 나의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은 채 휑하니 먼지까지 끌어안고 있었다. 풀 옵션 기준으로 50만 원 가까이나 되는 월세인데 티브이도 없고, 보일러는 고장 났으며 당연히 도시가스도 아직 잠겨있었다. 곳곳에 입주청소를 대충 한 기름때 흔적이 짜증 나게 했다. 당장 씻고 잘 걱정에 깊은 한숨이 나왔다.
저녁 9시경.
짐 정리를 대충 마무리하고 간단한 식사와 함께 소주 한 병을 비우고는 거리로 나왔다.
매번 빗나가는 일기예보가 이번에는 적중했다. 가랑비가 내리며 기분 좋은 촉촉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땅 위로 내리는 비가 불발된 콩알탄처럼 아기자기하게 콩콩댄다. 아스팔트 위로 솟구쳐 오르는 땅 냄새가 좋다. 젖은 흙에서 피어오르는 진하거나 꼬릿하지 않은, 매연이 섞인 듯 퀴퀴한 냄새. 이런 냄새가 좋은 건 아마도 내가 도시에 태어났다는 증거일까?
이 순간, 나는 마음이 편해서만은 아니지만, 그냥 지금 이대로의 느낌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여과되지 않은 마음으로, 여과되지 않은 생각으로 온전히 내가 된 채 마음껏 느끼며 살고 싶다. 이것도 욕심이라면 적어도 오늘만큼은 마음껏 걸으며 마음껏 울고 싶다.
가슴 아픈 비가 서글프게 추척추적 내린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걷고 걸었다.
마치 우산을 쓰고 걷는 것처럼... 오늘 밤, 어둠은 유난히 깊고 진하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