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을 든 여자

by 글싸라기

따스한 봄 햇살이 가득한 4월 어느 날.

이제는 제법 여름이 머지않았음을 느끼기에 충분한 햇살이 가득 흩뿌려지고 있었다. 미경은 모처럼 친한 친구인 현숙이와 점심식사를 같이하기 위해서 먹자골목 안에 있는 시계탑 광장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인이면 누구라도 그렇듯, 음식의 맛을 음미해 가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기에는 빠듯한 점심시간에 약속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사거리 교차로처럼 네 갈래로 뻗은 먹자골목에서 중앙으로 나오면 둥그렇게 생긴 광장이 있었고, 광장 중앙에는 오래전부터 고장 난 상태로 이정표 역할만 하고 있는 시계탑이 있었다. 시침과 분침이 고정된 채 죽어있는 상태였다. 시계 주변으로는 미경처럼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드문드문 무리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멈춰버린 시계에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제각각 휴대폰을 뚫어져라 보기도 하고, 약속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목을 길게 빼고 먼 곳을 휘이 둘러보기도 했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도 그녀가 올 기미가 없자 전화를 해보려는 찰나 누군가 미경의 어깨를 와락 껴안았다.


“너는 대체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미안해. 나오다가 휴대폰을 깜박했지 뭐야. 밥은 내가 살게.”

“참내, 당연한 거 아니야?”

“으이구, 기집애. 어서 가자.”

“어디로?”

“뭐 먹고 싶은데?”

“어쭈, 제법이다. 말만 하면 뭐든 다 사주는 거야?”

“당연하지. 만원 한도에서 마음껏.”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 요즘 물가가 어떤지 몰라? 그걸로 택도 없어. 만원으로 누구 코에 붙이니? 이럴 줄 알았으면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으로 때우는 건데.”

“농담이야. 저기 닭갈비 어때? 볶음밥도 먹고.”

“음, 나쁘지 않네. 시간 안에 다 먹을 수 있을까? 그나저나 닭갈비에는 소주인데.”

“소주는 좀 그렇고, 맥주 한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어쨌든 이럴 시간 없다.”

두 사람은 서둘러서 이층에 위치한 음식점으로 올라갔다. 음식점 내부는 역시 식사보다는 술안주에 가까운 음식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낮 시간엔 비교적 한산했다. 두 사람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창가로 자리를 잡았다. 쉬는 시간에 일거리가 늘어나서 심통이 났는지 물통과 물수건을 내려놓는 종업원의 얼굴에는 귀찮음이 가득했다.

“지금 식사되죠?”

아니나 다를까 현숙의 질문에 종업원은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했다.

“네, 2인 이상이요.”

“그럼 2인분 주세요. 신라면 정도 맵기로요. 맥주도 한 병 주시구요.”

“사리추가는 미리 말씀하셔야 해요.”

“네. 화장실이 어디 있죠?”

“주방 옆에요.”

종업원이 걸어가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자 참다못한 미경이 결국 한소리 했다.

“저 여자 왜 저러냐. 너무 불친절하네.”

“신경 쓰지 마. 여기가 24시간 하는 곳인데 아마도 피곤해서 그럴 거야. 대부분 이 시간은 쉬는 시간이거든. 그래도 여기 맛 집이니 한번 먹어봐. 나 화장실 갔다 올게.”


현숙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종업원이 닭갈비가 든 쟁반과 반찬들을 음식이 실린 카트를 밀고 왔다. 미경은 종업원과 눈을 마주치기 싫어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시계탑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다리던 사람과 만나서 자리를 떠났는지 아까 보다는 사람들이 훨씬 줄어든 상태였다. 미경은 이곳도 해가 떨어지고 어둑어둑해지면 술 고픈 사람들로 북적거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 먹자골목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나름 생소하다고 생각하던 때에 특이한 복장을 한 여자가 미경의 눈에 들어왔다. 봄이 시작되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은 복장도 그렇지만 그녀의 특이한 행동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발목 끝까지 내려온 차콜 색 원피스를 입은 그 자체도 묘했지만, 다부지게 틀어 올린 똥 머리 헤어스타일과 마치 연극무대 선 연기자처럼 얼굴은 밀가루를 바른 듯 하얗게 분칠이 되어있었다. 언뜻 보면 피에로 같이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줄만도 했지만 무표정한 얼굴 때문에 섬뜩함이 먼저였다. 하지만 그보다 특이한 것은 그녀가 들고 있던 조그만 손거울이었다. 얼굴이 전부 모두 보일까 생각될 정도로 작은 손거울을 바라보며 걸어가다가 자칫 넘어질 위기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댄 채 걸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거울을 통해서 자신이 걸어갈 앞길을 내다보는 것처럼 보였다. 미경은 기괴하면서도 위태롭게 걸어가는 여자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듯 쳐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

화장실에 나온 현숙이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미경을 보다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저 여자? 너 처음 봤나 보구나. 여기 맥주부터 주세요.”

종업원은 자신이 주문을 깜박 잊어버린 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대신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맥주를 가져다주었다. 현숙이 익숙한 자세로 다부지게 숟가락을 움켜쥔 채,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맥주 뚜껑을 따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저 여자, 이곳에 나타난 지 꽤 오래됐어. 어떤 사람들은 미친 여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하지만 이상한 건 말을 걸어보면 멀쩡하게 대답은 한다 하더라고. 뭐 어쨌든 정상적인 여자는 아닌 거 같아.”

미경이 창밖 여자에게 눈을 고정한 채 말했다.

“무슨 사연이 있나 봐.”

현숙은 미경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 니? 뭐 들리는 소문이 있기는 해.”

미경이 여전히 창밖의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질문했다.

“무슨 소문인데?”

현숙은 마시던 맥주잔에서 입을 떼고는, 맥주거품이 묻은 입술을 혀끝으로 닦아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뭐긴 뭐겠어. 부부사이가 안 좋아서 이혼을 했다는 소문도 있고, 믿었던 남자가 바람을 피워서 머리가 홱가닥 돌았다는 뭐 대충 그런 거 아니겠어? 남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어서 먹자.”


현숙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먹음직스러운 닭고기를 한 점 집어서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며 연거푸 맥주잔을 비워냈지만, 미경은 알 수 없는 기분에 이끌려 자꾸만 창밖으로 시선이 향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미경의 젓가락질이 멈춘 것은, 창밖에 여인이 시계탑을 막 지나던 순간의 괴이한 모습 때문이었다. 여인은 손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걷다가 시계탑아래에서 걸음을 멈춘 후, 허우적대며 팔을 흔들다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듯이 손거울을 바라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미경은 놀란 눈으로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예 몸을 돌려서 창밖에 있는 여인에게 집중을 했다.


“뭐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미경의 행동에 놀란 현숙이 창밖을 보다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아서 주걱으로 닭갈비를 뒤적거렸다.

“시간 얼마 없어.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먹기나 해. 정신 나간 미친 여자한테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야.”

현숙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경은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저 여자, 왠지 슬퍼 보여. 사연이 있는 거 같은데 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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