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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Wave Jul 09. 2021

청바지 입은 꼰대 문화

회사가 말하는 혁신의 진정성

 '읍읍읍 할많하않'...

처음 회사에 들어와 가장 많이 들은 얘기 중 하나는 ‘튀지 말라’는 말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선배들은 그냥 얌전히 조직에 순응할 것을 우리 동기들에게 강조했고 본인들도 그렇게 생활했다.


"야 너만 똑똑하냐?/ "그거 해봤던 거야" / "그래서 그 일은 네가 할 거지?" 


요즘도 그렇지만 간혹 선배들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하면 어김없이 저런 류의 핀잔이 들려오곤 다.

 이전 글에서 Boss적 기업문화를 얘기했지만, '연공서열', '예의', '까라면 까' 문화가 몸에 밴 기성세대 선배들에게 후배의 의견표명은 일종의 항명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인적으로는 이제 연차가 쌓이다 보니 지금은 할 말은 하는 편이지만,  원 대리 후배들을 보면 여전히 가 힘이 없고 풀이 죽어있다.


회사는 계속 우리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자유로운 소통을 강조는데,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창의적인 이디어는 커녕, 마땅히 할 수 있을 법한 얘기조차 마음 편히 못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기 때문이다.

(많은 핀잔 중에서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단연 최악인 것 같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기업이 추구하는 '인재상'에서도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인재상이라 함은 '우리 회사는 이런이런 사람을 뽑아요'라고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기준이다)


몇 해 전 우리나라 시가총액 상위 30개사의 ‘인재상’에 등장하는 키워드를 조사한 결과, ‘변화와 혁신’이 63.3%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창의’(60%)가 2위, 그다음은 ‘열정’, ‘도전’(각각 53.3%) 순이었다
(아마 올해도 비슷할 것이다).
키워드 결과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전략을 혁신하고 체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대기업 조차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위의 인재상에도 나타나지만 최근 들어 대기업들 대부분이 생존 차원의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조금 TMI지만 의 어원을 살펴보면, 혁(革)은 짐승 가죽에서 털을 다듬고 없앤 가죽이며, 신(新)은 새로움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혁신이라 함은 벗겨낸 가죽을 다듬어서 더욱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혁신은 기존의 것을 개선하고 업그레이드 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기업마다 생존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이 시점에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인재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지금 회사는 채용과정에서 도전정신과 혁신의지가 충만한 직원들을 뽑고 있을까??



청바지 입은 꼰대

일전에 ‘한국 기업문화 현주소와 변화를 위한 제언’을 주제로 발표한 맥킨지코리아의 한 파트너는 한국의 기업문화를 ‘청바지 입은 꼰대’에 비유한 바 있다.    


“최근 밑에서부터의 혁신이 강조되며 소통, 자율 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변하자’라는 주입식 캠페인 외에 구조, 리더십, 과정의 변화가 병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우리 기업 문화는 여전히 ‘청바지 입은 꼰대’에 머무르고 회의감만 커졌다"


혹시 꼰대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이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모습 그려보자.

아마 느낌이 올 것이다. 

올드한 패션을 고집하던 그 꼰대분이 어느 날 청바지를  출근한다고해 사람이 바뀔까??


사실  ‘청바지 입은 꼰대’는 한국 기업의 이중성을 비판할 때 종종 사용되는 표현이다.

생각해보면 입사 후 회사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으며, 해마다 많은 기업의 CEO들은 신년사에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혁신만을 유행가처럼 강조하다 보니, 조직 구성원들은 조금씩 위기와 혁신에 둔감해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채용도 비슷한 것 같다.

회사는 채용 슬로건으로 '도전적인 인재'를 강조하지만, 채용 과정에서 실력이 있더라도 좀 튀는 사람은 걸러진다.

매년 들어오는 신입사원이나 경력사원을 보더라도 직무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비슷한 성향의 인재들이 들어옴을 알 수 있다.

면접관들부터 이미 혁신이나 도전 정신보다는 조직 순응적이며 둥글둥글하고 예의 바른 지원자를 선호기도 한다.

"나랑 같이 근무할 직원인데 그래도 느낌이 좋고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골라야지. 실력이야 다 비슷할 테니 말 잘 들을 것 같은 그런 얼굴 있잖아" (조직장 A)


위기의 시대에 회사들마다 도전적인 인재를 원한다곤 하지만, 인재상과 실제 입사하는 직원들을 비교해보면 그닥 매칭되지 않는다.

조금 비약하자면  단추부터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야 할 기업의 인재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인재들로 회사가 꾸려지고 있는 셈이다.




불길(도전 정신) 잡는 소방수(꼰대 문화)

물론 간혹 가다 본인의 끼를 숨기 입사에 성공한 창의적이고 의욕 넘치는 신입사원도 있다. 지금은 젊은꼰대가 되어 버렸지만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 한 명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학창 시절 다양한 대내외 활동을 경험하고 어학연수로 외국 경험도 쌓은 그 친구는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만 해도 의욕이 넘쳤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입사 후 여러 가지 상황을 겪으며 도전적인 마음이 급속도로 시들어져 갔다. 복합적이지만 몇 가지 사례 소개하면 이런 내용들이다.  



자유로운 의견 개진

신입사원 시절 어느 임원과 우리 동기 간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임원은 회사에 들어와서 불편한 점이나 혹시 필요한 건 없는지 우리에게 물어봤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왼쪽에 앉은 자네부터 자유롭게(?) 이야기해보게”.

그 말에 동기들 대부분은 만족한다고 얘기했지만 그 친구는 조금 더 많은 건의사항을 얘기했다.

“조직 간 대화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파트 간에 업무 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건 어떨까요?”, “회사에 직원들 휴식 공간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등등

발언이 끝나자 임원은 아주 좋은 의견이라고 흡족해했고, 간담회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 시작됐다.

해당 임원은 조직문화, 구매 관련 파트장들을 불러 신입사원의 제안 사항을 전달했고, 그 즉시 제안 사항은 누군가의 업무로 전환되었다.

이후 여러 부서에서는 어떤 놈이 그런 얘기를 했는지 찾기 시작했고, 결국 발언자를 색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동기는 여러 선배로부터 호출을 받았고 경솔한 발언을 이유로 많은 질타를 받아야 했다.


유선 업무 요청

총무부서에 근무했던 동기는 입사 초기 집기비품 등 구매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 전산 프로그램에 물품 등록을 하던 중 전산에 장애가 생겼고, 동기는 바로 IT 부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빨리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한 결과, 전산장애는 무사히 해결됐다. 해프닝이 잘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에서 문제는 그 이후 발생했다.

IT 부서 담당자는 차장급 선배였는데, 신입사원이 업무를 요청하면서 직접 오지 않고 전화를 통해서 업무를 요청했다고 동기를 따로 불러서 나무라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신입사원은 선배에게 대면으로 업무를 요청해야 예의 있다 평가받는 시절이었다.


이메일 사건   

하루는 동기가 본인이 소속된 파트에 단체 메일로 업무 관련 내용을 공유한 적이 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고 파트의 주간업무 내용을 취합하여 공유하는 메일이었다. 첨부파일을 저장한 후 동기는 “주간업무 취합 내용입니다. 업무에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코멘트와 함께 메일을 발송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같은 파트 선배로부터 사내 메신저가 도착했다. “아니 선배들한테 보내는데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보내면 어떡하냐. 왜이래 개념이 없어. 참조 ‘부탁드립니다’라고 보냈어야지”


단편적인 예들이지만 이런 사건들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아무리 도전 정신이 뛰어나고 열정이 있는 직원이라도 퇴사하거나 조직에 순응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안타까운 점은 지금도 이러한 문화들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언론에도 자주 소개되지만 회사마다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는 하고 있다. 재택근무, 공유좌석, 직급간소화, 유연근무 등등. 외형적으로 글로벌기업들 흉내(?)를 내고 있, HR부서나 조직문화 관련 담당자들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제도를 바꾸거나 새로운 캠페인 진행하는 것은 쉬워도, 람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직원 한 명 한 명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앞뒤 얘기가 다른 경우도 많기 때문에, 언제나 일이 끝난 이후에도 개운하지 않고 가 찝찝함이 남는다.







되는 방향, 안 되는 방향

무늬만 혁신은 사업이나 업무에 있어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일부 회사들은 도전과 혁신을 강조하는 동시에 아이러니하게 도전과 혁신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회사를 보면 영업이나 신규사업과 같은 사업조직 보다 지원부서와 Risk management 부서가 조직 내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업부서가 현장을 오가며 방대한 자료를 다각도로 분석하여 사업보고서를 품의하면, 지원부서는 책상에 앉아 내부기준을 토대로 사업타당성을 검토한다. 그런데 혁신과 도전이라는 것은 ‘되는 방향’으로 검토해도 어려운 일인데, 지원부서는 일단 ‘안 되는 방향’으로 아이템을 검토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보면 좀 답답하다.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신규 시장을 개척하려면 어느 정도 초기 리스크는 기꺼이 감수하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샤오미 창업자이자 CEO인 레이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로운 땅을 발견하면 그곳이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탐색하고 또 탐색한다. 그런데 직접 발을 내디뎌보고야 말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드넓은 평지가 눈앞에 펼쳐진 것을 알았다”


검토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불확실성이 있더라도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다수 기업의 경영층과 지원부서는 리스크가 거의 ‘0(zero)’에 가까운 사업만을 원한다.

쉽게 말해 사업성은 있으나 아무도 모르고 있는 ‘눈먼 사업’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영업이나 신사업 부서에서 아이템을 구상하여 검토를 요청하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원 부서는 잠재적인 리스크를 우려하며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딴지 걸기 바쁘다. 바라보는 관점이나 인식의 간극이 크기 때문에 유관 부서 간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의 기저에는 뿌리 깊은 책임회피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듯 하다)



도전에 책임 묻는 문화

 세계적인 혁신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도전과 실패를 장려한다.

아마존의 CEO 제프베조스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고, 혁신을 원한다면 실패할 준비를 하라!”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구글 최고인적자원책임자(CHRO)이자 인사 담당 부석부사장인 라즐로 복은 다음과 같이 실패의 보상을 강조한다.


“실패에도 보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센티브와 목표가 중요하지만 위험을 무릅쓰는 것으로 인식되는 행동은 그 자체로 보상을 해줄 필요가 있다. 실패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혁신 기업들이 실패를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패를 통한 배움이 혁신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도전을 장려하며,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 왔다.

우리나라 일부 기업들이 이들과 다른 점은 새로운 도전을 통해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의 책임인지 책임소재에 큰 주안점을 둔다는 사실이다. 사업이나 새로운 아이템이 부진할 경우 바로 뒤따라 오는 것이 책임자 문책 이슈이다. 기안부서가 누구며 검토부서가 어디고 왜 지금의 리스크를 당시는 고려하지 못한 것인지, 많은 질문과 질책이 이어지고 관련 정도에 따라 징계가 뒤따른다. 그러므로 임원은 말할 필요도 없고 조직장만 되더라도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무리하기 보다는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고질적인 조급증

우리나라 일부 기업들의 또 다른 문제점은 고질적인 ‘조급증’이다. 예를 들어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신사업에 투자할 경우 초기에는 손실을 보는 것이 당연하고 적어도 5년 이상 안정기를 지나야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경영층이나 지원 부서는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새로운 투자 건이 2~3년 정도 지나서도 흑자로 전환되지 않으면 바로 Exit 전략이 검토된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직접 사업을 검토하거나 주요 실무자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일이 많지 않지만, 빠르면 사원 말이나 대리 초만 되더라도 주도적으로 일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처음 담당자가 되어 임원까지 올라가는 보고서를 준비할 때는 나름 사명감이 불타오르기 마련이다.

자발적으로 야근도 하고 경제성 분석도 하며 사업계획 보고를 준비한다. 하지만 일을 진행하다 보면 타 부서와 내부적으로 컨센서스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분명 회사 일을 하는 건데 그 과정에서 핀잔 아닌 핀잔을 계속 듣다 보면 일에 대한 의욕도 떨어지고 업무에 대한 열정도 사라진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다.



나중에 책임질 거지?

사업부서에서 타 부서나 임원에게 의욕적으로 새로운 아이템에 대한 보고서를 들고 가면 반 농담식으로 많이 듣는 얘기가 있다.

“자네가 책임질 수 있지?, 책임질 거지?”, “나중에 잘못되면 그 팀에서 책임지는 거지?”

내가 개인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를 위해 하는 일인데, 이런 말을 들으면 힘이 쭉 빠진다. 실제로 모 기업의 임원은 동일한 질문을 한 뒤 보고서에 ‘ㅇㅇㅇ가 책임진다고 했음’ 이라고 코멘트를 달기도 했다고 한다.


거기 투자라도 했나 봐?

신규 사업이나 새로운 거래처를 유치하기 위해 지원 부서의 검토를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얘기가 있다. “아니 왜 이렇게 이 사업을 하고 싶어 안달이야? 거기 지분 투자라도 했어?”,

“너무 지원조건이 센 거 아니야? 가만 보면 우리회사 직원 아닌 거 같아?”

사업 부서 직원들은 그런 얘기를 들어도 일단 협조를 구해야 하는 입장이라 웃으며 지나가지만,  사실 의욕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


회사는 구호적으로 혁신을 원하고 도전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하지만, 아직 현실적으로 혁신과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회사도 다수 존재하는 것 같다. 

사견이긴 하지만 도전을 가로막는 기업문화와 일부 기성세대의 꼰대문화가 변화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행하는 혁신의  의지, 정책 사례들은 당분간 ‘청바지 입은 꼰대’에 머무를 가능성 또한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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