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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Nov 20. 2023

대서양과 지중해의 길목에 서다(3)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모로코 탕헤르 이븐바투타 공항에 가는 에어 노스트럼 비행기는 아침 아홉 시 반과 오후 두 시로 하루에 두 편이었다. 어제 그 사무실로 가니 담당자가 우리를 알아본다. 그냥 가만히 있기 뭐해서 무작정 왔다고 그러니 별다른  없다면서 가서 기다려보라고만 한다. 첫째 후배가 그새 만든 현지 전화번호가 있다고 하니 적어 놓고 가라는 말을 덧붙인다. 짐을 찾으면 반드시 알려준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어제 도착했는데 다음 날 다시 찾은 공항


벌써 아침 열 시 반이 다 돼 간다. 다음번 비행기의 짐들은 오후 시나 넘어야 나올 텐데 그때까지 공항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기도 뭐 하고 그렇다고 주위에 뭐가 있지도 않다. 막내 후배가 말을 다.


"구글 지도로 근처 몇 군데 찾아봤는데 시간도 죽일 겸 한번 돌까요?"


너무 멀리 가기엔 마음이 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니 시간이 아깝다. 움직이긴 움직여야겠단 생각엔 다들 마찬가지다. 가까운 곳 중 헤라클레스 동굴이 지도에 잡힌다. 헤라클레스라고 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력의 사나이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힘으로 갈라놓으면서 생겼다는 동굴이라는데, 해석을 하고 의미를 붙이는 유일한 동물인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힘이겠다.


공항에 줄지어 서있는 맨 앞 택시에 가서 물었다.


"고우 투 헤라클레스 케이브?"


기사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헤라클레스 하우 머취?"


현지어도 현지어지만 해외에서 정보가 부족하면 바보가 된다고 했던가.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 를 아무리 외쳐도 알아먹질 못한다. 아 그 순간! 헤라클레스의 원 발음이 '헤라큘"이라는 게 머릿속을 스친다. "헤라큘!"이라 지르니 그제야 기사는 "헤라큘? 오케이 헤라큘!"이라 알아듣는다. 콩글리시를 탓할 건 아니지만 이렇게 영어 발음 하나에 우리는 유치원생이 돼버렸다


정말 가까운 거리였다. 십 분이 좀 지났을까. 해변을 쏴아 내달린 택시는 어느새 헤라클레스 동굴에 다다랐다. 동굴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고씨동굴같이 어두침침한 긴 터널을 머릿속에 그렸으나 생각보다 크질 않았다. 이국적자에게는 모로코 국민의 여섯 배에 달하는 입장료를 받는 거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고고학자도 지질학자도 아니지만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천장을 올려다보는 순간 이건 자연 동굴이 아님을 단박에 알았다. 종유석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기보다는 정으로 깎아 놓은 흔적이 선명했다.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화창했던 하늘이 해안가 암석 위에 발을 내딛자 흙빛으로 바뀐다. 대서양에서 고기를 잡으려 심어 놓은 낚싯대를 보니 왠지 정겨운 느낌마저 든다.


헤라클레스 동굴로 가는 광장


어서 와, 헤라클레스 동굴은 처음이지? 광장 중간에서 냥이가 자고 있다



헤라클레스 동굴 입구


인공미(?)가 물씬 풍기는 동굴 천장


여기가 바로 헤라클레스가 유럽과 아프리카를 힘으로 갈라놓으며 생겼다는 동굴 바깥이다. 앞에 보이는 바다가 대서양


언뜻 보면 놀란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인다


헤라클레스 동굴 바깥 해안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하늘이다


헤라클레스 동굴 입구 식당은 '별점 테러'가 많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먹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관광지를 벗어나려는 순간 멀리서 시티버스가 온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태극기가 차창에 붙어 있다. 중국과 일본 국기도 없는데 버스에 대한민국 국기가 붙어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적잖게 오는 거겠다. 그런데 어제 이곳에 도착한 이후 지금껏 동양인을 한 번도 못 봤다.


헤라클레스 동굴로 들어오는 버스 유리창에 우리나라 국기가 보인다. 


당장 비가 쏟아지면 꼼짝없이 맞을 각오를 하고 해안가 아스팔트 도로 위를 무작정 걸어내려 갔다. 이번에도 어제처럼 막내 후배의 구글 지도 안내를 믿으면서 걷고 또 걸었다. 관광객 하나 없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쉬고 있는 낙타 때는 무료해 보였다.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도착한 곳은 카바나 해변 깊숙이 박힌 레스토랑이었다. 바닷가인만큼 해산물을 먹어보고 싶어 생선과 새우 요리를 주문했다.


로드 무비의 시작. 걷고 또 걷고. 그렇게 한 시간가량 걸었다


사막에 있어야 할 낙타를 해안가에서 보게 될 줄이야


황량한 해변가. 7~8월 한 여름에는 현지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이곳으로 피서를 오는 것 같았다


종업원의 말에 꼬여 깜박했으면 팔뚝만 한 물고기 세 마리를 다 주문할 뻔했다. 다행히 손바닥만 한 크기로 세 조각 주문하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모른다고 네네 하지 말고 구글 번역기를 메뉴에 대보거나 따질 건 따져야 바가지를 쓰지 않음을 배웠다. 음식 냄새가 나면 어디선가 틀림없이 냥이가 나타난다. 이번엔 구미에 맞는 생선 요리라 그런지 냥이 두 마리가 무섭게 달려든다. 먹을 거 앞에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생선 살이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발톱으로 위협하며 서로 싸운다. 


1인 1 생선? 하마터면 종업원의 미끼에 걸릴 뻔했다.


어디선가 반드시 나타나는 냥이들. 이번엔 생선 냄새를 맡았는지 두 마리가 왔다.


호텔이 있는 시내로 들어갈까, 아님 다시 또 공항으로 갈까. 당연히 공항이다. 이제 마지막 시도이다. 오후 네 시 반에 호텔 내 워크숍 장소에서 잠시 보자는 UN 측의 연락을 그새 받았다. 내일 아침부터는 출국 때까지 낮 시간에는 호텔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지나가는 차에 손을 흔들었다. 택시가 아니다. 쓱 보니 거리에서 승객들을 실어 나르고 돈을 받는 불법 승용차이다. 100 디람(한화 15,000원)을 준다고 하니 얼씨구나 하며 타라고 한다. 그런데 도둑이 제 발 저린가 보다. 공항이 저기 보이는데 바로 앞까진 못 가고 여기서 내려줄 테니 분쯤 걸어가라며 말을 바꾼다.


현지에서 불법 택시도 타보고...


사무실은 굳게 잠겨 있다. 그 담당자도 지금 없다. 첫째 후배는 짐이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 옆 사무실로 가보고 우리는 공항 로비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찾았다고 하네요"


첫째 후배의 전화를 받은 막내 후배가 자기 일인 마냥 기뻐한다. 나도 덩달아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금세 저 멀리에서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후배가 보인다. 어제오늘 얼굴을 익혀서 그랬는지 그쪽 사람들이 사정을 알아보고 바로 몇몇 정보만 확인하고 케리어를 내어 줬다고 한다. 짐을 찾기도 하지만 잃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글을 보아서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막상 찾게 되니 더 기뻐했다. 이렇게 24시간 동안의 답답함과 초조함이 끝이 났다. 가만히 있질 않고 어떻게든 시도했던 후배들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로 아랍어가 공용어이지만 프랑스도 모국어처럼 널리 쓰인다.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땅을 나눠먹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기, 모코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과 교류가 빈번해서 탕헤르는 인터내셔널 한 도시가 되었다. 이번 워크숍에도 영어와 아랍어, 프랑스어 동시통역사가 명이나 배정되었다. 우리 한국 측 참가자들에겐 이나 저나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오직 영어로만 말하고 들어야 하니.


뉴욕과 나고야, 인천에서 온 UN 소속 및 산하기구 수장과 모로코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오프닝 멘트를 하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UN 뉴욕 담당자가 내 앞으로와 마지막 순서에 나보고 기관을 대표해서 인사말을 해달라며 귓속말을 한다. 사전 조율이 없던 예상치 못한 제안이고 대본도 없어 어쩌나 싶었지만 거절할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머리를 굴렸다. 무슨 말을 할까. 공식석상에서 하는 뻔한 말 말고.


작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모로코가 4강에 올랐다는 것, 스페인, 포르투갈과 함께 2030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 공동개최 기사는 오늘 새벽에 뉴스를 검색하며 우연히 접한 것이었다. 지난달 겪은 지진 참사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꺼냈다가는 분위기가 한없이 내려앉을 게 분명했다. 과연 듣고 있자니 모로코 대지진을 언급하는 연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역시나 먹혔다. 4강 진출을 해서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우리나라도 2002년에 4강에 올랐다며 2030년 공동 개최권까지 따내서 축하한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더니 다들 좋아라 하며 박수를 친다. 역시 축구는 만국 공통 스토리!


고난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하루짜리 한국어 회의도 종일 앉아 있노라면 좀이 쑤시고 벗어나고 싶은데 이번 워크숍은 총 사흘이다. 헤드셋을 껴고 아랍어와 불어를 통역한 영어를 들어야 한다. 너무 지루하고 곤욕이 따로 없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나 보다. 하루를 그렇게 앉아 듣고 있으니 또 할만하다. 이튿날 오전엔 우리 측 발표가 있다. 슬슬 긴장감이 올라온다. 오늘 새벽에 영어 방송을 켜놓고 발표자료를 보면서 크게 외쳤다. 내일 새벽에도 그럴 것이고. 그런데 그럴듯한 계획이 있어도 한 대 처 맞으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워크숍에서도 어김이 없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서양의 워크숍은 자유롭다
어두침침 잠자기 좋은 워크숍 분위기
밖에서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얼굴색이 다른 사람들이 거리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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