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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Nov 13. 2023

대서양과 지중해의 길목에 서다

유럽과 가장 맞닿은 모로코 탕헤르에서

집을 나선 지 서른 시간 만에 아프리카 모로코 탕헤르(영어 발음은 지어)에 발을 디뎠다.


왼쪽의 대서양과 오른쪽 지중해의 관문으로서 알제리와 맞닿아 있으며 머리 위로는 스페인이 보이는 그곳. 작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강호들을 격파하며 월드컵 4위에 오르면서 2002년 우리나라 4강 신화를 재현하였고, 2030년 스페인, 포르투갈과 함께 월드컵 공동개최권을 따낸 북아프리카 국가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9월, 120년 만의 대지진으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나온 통곡의 땅이기도 하다. 중학교 사회시간에 알제리, 튀니지와 함께 '바바리 3국'으로 불린다고 배운 기억만 남았을 뿐 나에겐 어떠한 사전 지식도 없는 나라였다.


구글 지도 갈무리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열다섯 시간 걸려 어젯밤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했었다. 그런데 거기서 뿐만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도 어이없는 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지라 몸이 지치고 정신도 몽롱했다. 어중이떠중이 해외 여행객들에겐 택시비도 바가지를 씌운다고 하니 신경을 곧추세운다. 짐을 질질 끌고 나온 우리에게 아니나 다를까 기사는 한번 올려 부른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다른 택시를 타겠다고 하자, 아쉬운 지 곧바로 우리가 마음속에 매겨놓았던 금액을 부른다.


머무는 내내 눈을 괴롭힌 아랍어의 향연. 공항에서 도심의 지표 건물까지 요금이 쓰여있지만 어떤 곳은 흥정이 필요하다.


도심에 들어서자 활력이 넘친다. 공항대로, 강남대로의 10차선 규모가 아닌데도 차량과 사람이 얽혀서 시끌벅적하다. 눈앞에 잡힌 갈매기 떼를 보니 이곳이 해안도시라는 걸 깨닫는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가운데 검은색 자동차 위에 갈매기가 날고 있다.


나는 차창 밖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대학교로 보이는 곳 앞에서 젊은이들이 버스를 기다린다.


행사를 주관한 UN 측에서 워크숍 참석자들 명단을 넘겼나 보다. 부리부리한 눈매의 접수대 젊은 여자 직원에게 여권을 보여주자 방 카드를 나눠준다. 하루 반이 지났어도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못 먹어서 그런지 남자 셋은 빨리 식당에 가자고 입을 모았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한국과 다른 이 느낌은 무엇. 10월의 마지막 날 하루 전. 아프리카 열사(熱沙)까진 바라진 않았어도 꽤나 후덥지근할 줄 알았더니 우리나라 가을 날씨와 다름없다. 현지 시간으로 월요일 오후 세시, 우리보다 여덟 시간 느리니 한국은 월요일 늦은 밤이다.


구도심 2차선 도로가에 있어서 화려함은 없어도 고풍스러움이 넘쳐난 숙소이자 워크숍 장소인 엘 민자 호텔


우리와 다르게 유럽은 1층이 0층이다. 0층을 '땅층'이라고도 하는데, 고등학교 독일어 시간에 처음 알았던 사실을 여기에서 삼십 여년이 넘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장 끌로드 반담, 입생 로랑 같은 유명인사들이 머문 역사 깊은 호텔이다.


무지막지한 비행기 엔진 소리와 좁디좁은 일반석에서 열다섯 시간 앉아 두 끼의 정식과 간식 한 끼를 먹었다. 하지만 먹는 둥 마는 둥, 양계장 닭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꾸역꾸역 받아먹는 모습들이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우리나라 국적기여서 나름 편안하게(?) 왔다고 스스로 다독였으나, 다들 뭐에 굶주린 듯 제대로 된 현지 식당을 찾아 나섰다.


이미 (나이순으로) 막내 후배가 구글 지도로 호텔 주변 식당을 여기저기 검색을 해놨지만 막상 닥치니 어딜 갈지 또 고민이다. 여러 곳 중에서 가까운 곳을 찍고 거리를 나섰다. 2차선에서 살짝 빠져 골목으로 내려가니 푸른 하늘과 대서양 저 멀리멀리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가 희미하게 보인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조그만 키에 구릿빛 얼굴의 남자가 순간 내뱉는다.


 "쁘롬 차이나? 헤쉬쉬?"


단박에 귀에 꽂힌다. K팝이 전 세계를 휩쓴다지만 여전히 모로코에서 동양인은 중국인으로 본다는 말을 후배가 해준다. 순간 "부용러"(不用了, 필요 없어요)가 입 밖으로 나오려는 찰나, 입을 닫았다. 중국 드라마를 보면서 유튜브 클립을 계속 만들다 보니 생활 중국어의 잔상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다. 떡고물하나 얻을 마냥 뒤를 따르길래 "노 땡쓰" 하고 뿌리친다.  


대서양 물이 지중해로 흘러들어 간다는 지브랄타 해협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그래, 늦은 점심은 이것저것 따지지 말자. 닭치고 닭이다. 1인 1 닭이 아니라, 1인 1/4 닭. 아랍어와 불어에는 심봉사여도 간판에 닭그림과 1/2, 1/4이 쓰여있길래 눈치코치 닭을 그만큼 잘라 요리한다는 뜻이겠지 했다. 닭요리를 시켰는데 길쭉한 바게트와 감자튀김이 덤으로 먼저 나온다. 접시에 카레밥도 얻혀온 행운까지. 근데 이게 웬걸. 음식을 내놓기 무섭게 어디서 냄새를 맡고 올라왔는지 고양이가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옛다. 닭살을 뜯어 주니 잘 받아먹는다.


백 마디 말보다 그림 하나가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닭 그림이 있으니 닭을 파는 집이겠지.


고양이 천국의 서막을 알린 녀석의 등장. 이후 탕헤르를 떠날 때까지 내 옆엔 항상 냥이가 함께 했다.


무료로 준 바게트와 감자 튀김만으로 요기가 될 정도로 양이 많았다.


호텔에서는 무선 인터넷이 된다지만 저녁이나 외출 시 자유롭게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기 위해 현지 유심을 사기로 했다. 요즘은 유심을 넘어 eSIM이 대세인데 후배 둘은 eSIM이 설치되었으나, 나는 핸드폰 기종이 받쳐주질 않아 유심을 사서 꽂았다. 몇 푼 되지 않는 비용인데 셋 모두에게 친절하게 그것도 유창한 영어를 써가면서 SIM을 심어주는 여직원을 보면서 현지에서의 경계가 누그러졌다.


현지 휴대전화 대리점 직원. 셋이 유심을 해봤자 얼마 벌지도 못할 텐데 한 시간 가까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며 챙겨주었다.


어디에도 영어가 없다. 워크숍으로 호텔에 사흘을 꼬박 머무는데 4G도 많아서 2G로 했다.


다시 호텔 쪽으로 올라와 반대쪽 구 시가지로 조금 걸어갔다. 맷 데이먼이 주연한 본 시리즈 중, 2편인 <본 얼티메이텀>에서 나왔다고 하는 Gran Cafe de Paris를 가보기로 했다. 아이고 이게 웬걸. 이미 유명세를 탔는지 카페 안과 밖이 인산인해이다. 밖에서 홀로 앉아 차를 홀짝이는 현지인과 외국인의 무리가 신선했다. 두리번거리다가 안 될 것 같아 아쉬운 데로 카페 맞은편 다른 카페로 향했다. TV에 나온 집 맞은편 집도 덩달아 잘 되는가 보다. 여기도 사람들이 많았다. 어렵게 바깥 자리를 잡아 회전 교차로를 도는 차들, 보도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목을 축였다.


카페에서 주스를 시킨 한국 촌놈들(?)


맞은편이 바로, 영화 <본 얼티메이텀>에서 나온 파리 드 그란 카페


다국적 기업의 프랜차이즈가 있다는 건 그 나라와 도시의 개방도를 보여준다.


지금은 월요일 저녁이 돼 가는 시간. 유엔 측도, 우리와 협력하는 한국 용역사 측도 아직 모로코에 도착하지 않았다. 나라를 대표해서 우리 회사에서 세 명이 왔는데 감독자가 없다. 내가 제일 선임이다.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우리보다 여덟 시간이나 느린 모로코. 낮 시간 반나절을 번 셈이다.


해안가로 발길을 돌렸다. 아니 이게 웬걸. 거리 곳곳에 고양이가 보인다.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더니 바짝 다가가 슬그머니 목덜미를 만져도 아랑곳 않는다. 집에 두고 온 깜이 생각이 났다. 평화로운 광경이다. 야자수가 심어져 있고 옛 성곽과 현대식 건물이 어우러져 묘한 느낌이다. 낡은 벽돌 대문을 입구로 하는 콘티넨탈 호텔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인사동 풍이 나는 전통거리에 들어섰다. 모스크 사원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와 가게 앞에서 행인들에게 뭐라 뭐라 하는 상인의 소리가 섞여 들린다. 저녁 일곱 시가 넘었을까 우리 측 용역사 직원 둘이 호텔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해외에서는 동포애가 더 생긴다는데 다섯이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식사비는 제각각 내기로 했다.


이국적인 해변가. 모로코는 모로코다.


콘티넨탈 호텔로 들어가는 입구. 구시대의 문을 통해 현시대의 건물로 들어가는 상징일까?


옛것과 새것의 공존이 눈에 거슬리진 않는다.


길냥이의 공통점은 절대 살이 찌지 않는다는 점이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피곤한 거리 생활의 고단함이 묻어나지만 보통의 길냥이들과 다르게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는 게 좋았다.


처음부터 세다. 대뜸 술을 먹잔다. 여기는 이슬람 국가 모로코 아닌가. 돼지고기와 음주는 금지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는 법. 이미 우리나라 SNS에는 이슬람 국가에서 술 먹는 방법이나 특히 이곳 모로코 탕헤르에서 갈만한 술집 이야기들이 손꼽을 정도이지만 올라와있다. 국내와 해외 SNS의 콜라보이다. 이번엔 막내 후배가 구글 지도를 켠다. 달도 안 뜬 새까만 밤길을 등촉에만 의지하여 가던 옛날 선비들처럼 구글 지도를 손바닥에 놓고 요리조리 골목골목 들어가는 후배뒤를 다들 졸졸 따라간다. 십오 분 넘게 걸었을까? 여기가 바로 밀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옥호는 Hotel 뭐라 뭐라 쓰여있는데 입구가 굳게 닫혀있다. 으리으리한 가정집 같기도 하고. 초인종이 있어 누르니 문이 스르륵 열린다. 못 마셔도 고고! 종업원은 우리를 건물 꼭대기로 데리고 간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순간 모든 건 새로운 자극이다. 간판을 보니 모로코 탕헤르가 2012년 엑스포를 유치하려고 했던 모양인데 우리나라 여수에서 개최되었다.


어두운 밤길의 등불이 되어. 프로 구글러 막내 후배의 안내로 골목을 뒤지고 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호텔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일반 가정집처럼 초인종이 달려있다.


우와~ 이런 이국적인 분위기. 건물 옥상을 뛰어다니며 총을 쏘며 쌈박질을 하는 장면도 떠오르고 바닷바람과 야경이 어우러져 가만히 있어도 취한다. 술은 역시 현지 술이 최고다. 카사블랑카 맥주와 현지 음식 몇 개를 곁들였다. 스페인에서 들어오는 유람선 선착장과 항구를 수놓은 전등을 보며 긴장을 풀었다.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본 해안의 야경. 바다 쪽 어둠과 해안가의 인공 등빛, 골목길 등불이 어우러져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런 곳을 뜀박질해가며 쫓고 쫓는 활극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현지에선 현지 술이 국룰이지.


워크숍은 수요일 아침부터다. 내일은 화요일. 우리에겐 하루가 더 주어졌다. UN 소속 및 산하기관 관계자와는 내일 오후에나 미팅이다. 수목금 워크숍 기간에는 영어로만 듣고 말해야 하고 영어 발표와 질의응답도 있지만 그건 그때고. 내일은 뭐 할까? 할 게 없으랴, 시간이 부족할 뿐이지.


하지만 오늘 오후 이곳 탕헤르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우리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을 때도, 현지 휴대폰 대리점에 가서 유심을 심을 때도, 지금 이 순간 야경을 안주삼아 맥주를 홀짝일 때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고민거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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