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 기후위기의 기록
한반도 기후위기의 징후는 한라산과 제주 바다에 가장 먼저 찾아온다. 한라산 등산로인 성판악이나 영실 코스를 따라 올라보라. 성판악 진달래 대피소를 지나 1,100m 고지 이상으로 오르면 한라산의 대표적 고산 침엽수인 구상나무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 한라산 남벽을 바라보는 영실에서 윗세오름으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곳의 구상나무는 껍질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나고 큰 가지는 뚝뚝 부러져있고 아예 뿌리째 뽑힌 나무도 보인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산다는 멋있는 고목이 아니다. 한라산부터 지리산, 덕유산, 태백산, 설악산의 백두대간 한대성 고산 침엽수가 일시에 멸종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구상나무, 분비나무 그리고 최근에는 소나무의 멸종도 감지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논란의 여지 없는,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한반도 기온상승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한라산 구상나무만의 일이 아니다. 제주 바다도, 바다와 살아온 삶의 형식도 뒤바꾸고 있다.
제주수산연구소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따른 한반도 해양환경의 변화 속도는 굉장히 빠르고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1968년부터 2017년까지 50년 동안 표층 수온은 1.23℃나 올랐다. 전 세계 상승 폭 0.48℃에 비해 2.6배나 상승한 것이다. 이 상태라면 2100년까지 약 3.04℃로 상승해 제주 주변은 일본 오키나와 같은 해양환경이 될 것이다. 동해 전역에 고등어 어장이 형성되고 한반도 전역에 자리돔이 서식할 것이다. 자리물회는 제주 특산이 아닌 전국 음식이 되면서 먹거리 문화도 변할 것이다. 냉수대에 적응했던 방어는 겨울이 되어도 마라도 근해에 오르지 않는다. 따듯한 겨울로 인해 ‘겨울 방어’가 사라지고 있다. 과연, 기후변화로 급변하는 제주 바다는 위기인가 기회인가.
제주도 육상의 기후는 온대를 넘어 이미 아열대로 진입하였다. 한라산의 한대성 구상나무가 고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열대 기후는 연평균 기온이 18℃ 이하이면서 연중 8~12개월의 월평균 기온이 10℃ 이상인 기후대이다. 지금 현재, 제주도 전역은 아열대 기후대에 있다. 더불어 제주 바다도 아열대 해역으로 바뀌는 분기점에 있다. 지난 1960년에서 2010년까지 50년 동안 제주 최남단 마라도의 표층 수온은 연평균 19.1℃였다. 아열대 해역은 연평균 수온이 18~20℃의 수온을 나타내는 해역이다. 제주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 남부해역은 아열대 해역으로 이미 접어들었고, 제주 북부권까지 아열대 해역으로 변하고 있다. 올해 제주 북부 도두항의 난대성 수산물인 한치와 갈치 조업선은 작년보다 20일이나 일찍 바다로 나갔다. 조업선의 어군 탐지기에는 고등어, 전갱이, 한치, 갈치, 참치 등 난대성 어종이 가득 찍혔다.
제주 바다 해양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 첫 번째 원인은 수온 상승이다. 다이빙을 하다 보면, 제주 남부해역은 이미 아열대 어종이 더 많이 확인된다. 남중국해, 필리핀, 대만, 오키나와의 열대와 아열대 해역에 서식, 분포하는 어종이 북상한 것이다. 이들은 과거 1990년 이전에는 제주 바다에 서식하지 않았던 어종이었다. 가다랑어, 황놀래기, 가시복, 갈전쟁이, 거북복, 나비고기, 독가시치, 두줄촉수, 범돔, 벤자리, 두동가리돔, 쏠배감펭, 쏠종개, 아홉동가리, 주걱치, 줄도화돔, 청줄돔, 파랑돔 등 아열대 어종은 제주 바다에서 흔히 발견된다. 2012년에서 2018년까지 제주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의 42~52%가 아열대 어종이었다. 파란고리문어, 푸른우산관해파리, 노무라입깃해파리, 작은부레관해파리 등 맹독성 해양생물도 함께 유입되었다. 외래종 유입이 증가하면서 제주 바다 해양생태계는 과거와 다른 상황에 직면한다. 기존 토착성 해양생물의 서식처는 악화, 감소되었고, 수온 상승 등의 요인으로 모자반, 톳 같은 토착성 해조류의 성장은 둔화되었다.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의 자산어보를 새로 써야 할 것이다. 제주 해녀는 ‘바다 숲이 사라져 소라, 전복잡이도 내 세대가 마지막’이라고 증언하였다.
제주 남부해역의 산호 생태계도 아열대와 열대 바다와 같이 특징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제주 바다는 연산호와 경산호가 함께 서식하는 방식인데, 차츰 경산호가 서식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거품돌산호, 빛단풍돌산호, 그물코돌산호, 곤봉말미잘 등 각종 아열대와 열대 산호가 북상하였다. 특히 경산호의 일종인 돌산호류는 바닷속 바위를 넓게 덮으면서 다른 해양생물과 공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제주 특산인 소라와 해조류의 서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또한, 수온 상승에 내성이 강한 연산호는 한반도 남해안으로 서식지를 이동하거나 서식 범위를 넓힐 수 있지만, 이와 반대로 수온 상승에 민감한 연산호는 멸종될 것이다. 제주 바다가 아열대 해역이 되었다고 해서 각종 물고기, 해조류, 산호가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유전자는 버티고 아니면 멸종하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 셈이다.
기후변화가 만든, 제주 바다의 최대 위기는 아마 갯녹음 현상일 것이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제주도 해역은 1만 5,323.8ha의 33.3%인 5,102.9ha에서 갯녹음이 진행 중이다. 갯녹음은 ‘바다 사막화’라고도 하는데, 홍조류의 일종인 산호말류가 죽으면서 연안이나 수중의 바위를 덮어 해조류의 번식을 막고 결국 물고기도 바다도 살 수 없는 죽음의 환경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청정’ 제주 바다의 1/3이 갯녹음으로 황폐화되었다. 갯녹음은 난류 세력의 확장, 해양오염 증가, 먹이사슬에 의한 해조류 감소, 매립이나 간척으로 인한 부유물 발생 등이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확한 대책 마련을 위해서 산호말류가 번성한 이유를 지역마다 구체적으로, 시급히 밝혀야 하는 것이다. 2017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산호초를 찾아서(chasing coral)’는 호주 동부 연안의 ‘산호 백화현상(coral bleaching)’을 아름답지만, 눈물 나게 보여준다.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는 기후변화로 인해, 멸종이라는 칼날 위에 서 있다.
IPCC(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1.5℃ 특별보고서(2018, 송도)를 보면, 해양의 산호초의 경우 지구 온도가 1.5℃ 상승할 경우 약 70%, 2℃ 상승할 경우 99%가 위험에 처한다고 경고한다. 여름철 북극 해빙은 1.5℃ 상승할 경우 100년에 한 번 정도로 복원이 가능하며, 2℃ 상승할 경우 10년에 한 번꼴로 완전히 사라져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예측된다. IPCC ‘해양 및 빙권 특별보고서’(2019, 모나코, 제51차 총회)는 더욱 구체적이다. 1993년 이래로 해양의 온난화 속도는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해양은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서 해양 표면의 해수가 급속히 산성화 되었다. 이번 세기 중에 해양 온도 상승, 유례없이 높은 수준의 산성화, 해양 내 산소량 감소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였고,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면 해양 생물종이 멸종하고 해양 생태계가 극단적으로 변할 것이다. 해양 생물종의 변화는 어민과 어업국에 식량 안보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사이클론, 홍수, 해일 등 100년에 한 번씩 발생하던 해안 도시의 극한 현상은 2050년부터는 매년 발생할 것이다. 지속적인 빙하 해빙과 해양 평균온도 상승은 해수 팽창으로 해수면 상승을 일으키고, 연안 지대 특히 해발 고도가 아주 낮은 소규모 섬 국가(SIDS, small island developing state)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다.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마을은 겨우 살아남고 아니면 나머지는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마지막 경고이다.
기후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다가올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기후위기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꾸고 있다.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선택해야 한다. 현재 추세라면 지구 온도는 빠르면 2030년에 1.5℃ 이상 올라가게 된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온도는 0.86℃, 대략 1℃ 상승했다. 10년에 약 0.1℃가 올랐다. 상승 곡선은 산업화가 집중될수록 가파르기에, 기후위기 대응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10년이면 0.5℃ 이상 상승할 것이다. 1.5℃는 IPCC 특별위원회가 합의한 지구 온도 마지노선이다. 그렇기에 2015년 파리 신기후 체제는 2030년,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 역시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최근 기상청은 제주 지역에 ‘기상 해일’을 예보하였다. 한 시간에 5.1hPa의 기압 변동이 전남 가거도에서 관측되었는데, 바닷물을 누르는 공기의 압력이 갑작스럽게 변하면서 ‘해일’이 발생한 것이다. 가거도에서 기압 변동이 관측된 지 3시간 뒤, 제주 모슬포에 7분 동안 1m가 넘는 큰 출렁임이 관측되었다. 보통 한 시간에 3hPa 이상의 기압 변동이 발생하면 기상 해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기상 해일’은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만조로 인한 해수면이 높은 상황에서 더 큰 재앙을 순식간에 일으킬 것이다.
제주 바다는 풍전등화와 같다. 훅, 하며 큰 바람이 한번 불면 영원히 꺼질 듯 위태롭다. ‘청정’ 바다에서 해녀의 숨비소리가 아스라이 퍼지고 붉은 석양에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낭만의 바다, 풍요의 바다, 어머니의 바다는 앞으로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향후 10년이면 제주 바다는 끝장날 판이다. 제주 바다를 살려야 되지 않겠는가. 아니,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딱 10년 만이라도 이 바다를 위해 애써보자. 제주 바다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대안 논의를 위한 공간을 열자. 기후변화의 솔루션을 위해 개인 차원을 넘어 전 지구적인 상상력을 일으켜보자. 해양과 빙권, 그리고 제주 바다에 닥친 기후위기의 증거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지역, 국가, 지구적 차원의 협업과 대응 방안이 무엇인지 토론하고 바꾸자. 한라산과 제주 바다는 우리나라 기후위기의 최전선이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캠페인, 시민과학자 양성, 기후위기와 해양생태에 관한 교육, 전문연구센터 건립 등 해야만 할 일이 많이 있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과 제주의 바다는 돌이킬 수 없는 ‘레테의 강’을 건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