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정 Oct 24. 2021

볼 수 없는 표정들

초등학생 시절, 하루는 친구와 놀다가 아파트 화단에 버려진 인형을 발견했다. 작은 강아지 모양의 인형이었다. 시간이 지나 주인이 인형을 데려가기를 기다렸지만, 며칠이 지나도 인형은 제자리에 있었다. 결국 나는 인형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비누로 깨끗이 씻기고 햇빛에 말린 뒤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건 말하자면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깨끗한 물로 때를 씻어내고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일을 거쳐야 비로소 그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다양한 인형이 있었다. 주로 부모님이 사 주셨거나 선물 받은 인형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동안 새로 주워온 인형에 애정을 쏟으며 놀았다. 친구가 집에 놀러 오면  함께 가상의 이야기를 지어냈고, 인형들에게 각각 알맞은 배역을 부여해 연극에 동참시켰다. 나는 그럴 때마다 항상 주워 온 인형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게 했다.

               

왜 누군가가 버린 인형이 내 것이 되었을 때 그런 만남이 더 운명적이라고 느끼며 애틋한 감정이 들었을까? 내가 마치 그를 구원이라도 하게 된 것처럼 곁에 두고 돌봐주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언제나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입장에서 내가 나보다 작은 존재를 보살필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가지고 놀았던 인형들은 주로 웃고 있거나 표정이 없었다. 우리 집에 있는 인형 , 울거나 짜증을 내거나, 절망하는 표정을  인형은 없었다. 그래도 연극에 참여하려면 마땅한 위기와 갈등의 단계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이 처한 사건과 상황에 적합한 표정을 상상하며 놀았다. 등장인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웃고 있거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놀았던 적은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릴  만들어냈던 이야기의 마지막을  평화롭게 끝냈다.  시절 내가 읽었던 많은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속의 이야기들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를 지키며  안에서 적당한 변주를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우연히 펼친 책에서 비극적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있으면   며칠을  이야기에 대해 생각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고향을 떠난 연인을 기다리다 못해 그만 꽃으로 변신한 이야기, 모험을 떠난 주인공이 시련을 맞아 괴물로 변해 연인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해서 절망하는 이야기...  같은 식이었다.                


사람은 왜 무탈과 행복을 기원하면서도 때로 비극에 매료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일상을 뒤흔들 만큼 강렬한 감정은 행복감보다 비애와 절망을 느꼈을 때 더 뚜렷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강렬한 행복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 떠올리면 그저 흐뭇해지지만, 살면서 특정 시기에 느꼈던 비애는 몸속에 각인되어 통째로 내 몸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다. 나는 사실 아무 일 없이 평화롭고 잔잔한 일상이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존재나 사건에 의해 흔들리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일까? 누군가가 버린 인형을 어느 날 내가 발견해 집으로 데려와 이야기의 새로운 배역을 부여해 노는 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나는 살면서 가볍게 놓지 못하고 매달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몇 년 간 간직해온 우정이 깨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잠 못 이루었던 밤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잘 지내라는 말...               


나이가 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폭넓은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았다. 어릴 때 처음 만나 성인이 된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는 관계도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멀어져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헤어짐의 이유는 주로 이사를 가거나, 학교가 바뀐다거나, 갈등이 생긴다거나, 마음이나 인생의 갈래가 서로 달라져 서서히 멀어진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는 소중히 여겼던 관계가 틀어진다거나, 누군가를 어떤 이유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극렬하게 고통스러워했다. 관계 속에서 기대했던 것들, 예를 들어 영원한 우정이나 사랑, 기적처럼 나타난 인생의 구원자, 보장된 해피엔딩 같은 것들은 생각보다 이루어지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럴 때면 인생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나버려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나로서는 선택지를 여러 개 놓고 고민하는 게 아닌, 손 쓸 새도 없이 결말이 하나로 정해져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더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양한 형태와 결의 관계를 맺고, 또 멀어지는 경우를 몇 번 더 겪고 나서 나 혼자의 힘과 노력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끝내 잡을 수 없는 관계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들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예고 없이 찾아와 마음과 일상을 세차게 흔들어 놓고도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나면 인생의 챕터가 교묘히 넘겨지는 느낌이었다. 형언할 수는 없지만 예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뒤로 예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연스럽게 체념하게 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뚜렷하게 그어진 한계선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예전에는 끝을 가늠할 수 없어 힘들었다면, 이제는 관계의 한계를 너무나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더 아릴 때가 있다. 머리로 이미 깨달은 것을 마음의 속도가 따라잡기가 힘들어 그 격차에서 오는 고통을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한 때 서로 애정과 우정, 사랑을 나누었지만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의 표정들을 떠올려 본다. 내가 보았던 그 사람들의 마지막 표정들을. 그들은 그때보다 더 나이를 먹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관계를 맺고 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스스로 겪어야만 알 수 있는 인생의 비밀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기억 속에서 그들은 과거의 한 지점, 특히 마지막으로 만났던 순간에 정지된 채로 존재한다.                


어느 날 서로를 알아보고 친해지는 일련의 의식과 과정들을 거쳐 서로에게 새로운 별명과 애칭을 붙여 부르고, 여느 이야기들처럼 관계를 꽃피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몇 번의 갈등을 겪다가 헤어지는 것. 문장으로 쓴다면, 만남과 헤어짐의 일련의 과정을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깊게 생각해본다면, 어떤 관계도 단순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복잡 미묘한 공기와 관계를 둘러싼 예감들은 한 겹으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헤어짐 후에 느꼈던 극렬한 고통과 비애 뒤에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서서히 그 관계 속에서 존재했던 다양한 추억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물론 마음의 결과 모양이 과거와 달라진 상태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럴 때면 비로소 떠올려볼 수 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그와 내가 지었던 다양한 표정들을. 행복과 비애만으로 나눌 수 없는, 단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표정들을.      

          

그러나 그런 순간순간의 표정이나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들은 사라졌다거나 과거에 박제된 채로 정지되어 머무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깨달았다. 어떤 관계든지 서로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꼭 무엇인가를 배우고 끝이 났기 때문이다. 그게 설령 관계의 시작점에서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고, 그렇게 서로를 부르다가 관계가 끝나면 그 이름을 버리고, 또 누군가를 만나 이를 반복하는 일. 또, 내가 그 사람에게, 혹은 그 사람이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와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일은 왜 끝내 포기하고 싶지가 않은 것일까. 그럴 때면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살면서 마음을 꽉 채우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이제 내가 떠올리는 과거의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표정들을 지으며 살아갈 것이다. 어릴 적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을 서로에게서 읽어내 마음을 가늠하거나, 때로 표정을 숨기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을 수도 있다.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고 서로에게 유일한 역할을 부여하며 지낼 것이다.           


그럴 때면, 누군가를 만나 그 관계 속에 새로운 희망을 걸고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일은 어린이가 꾸는 꿈같은 일이면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너무나 현실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의 삶이 내게 다가와 인사할 때 그 표정 너머로 그런 것들을 가늠해 본다.                


이전 14화 새들이 노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