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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Dec 17. 2023

내 자전거로 전철을 이겼던 그날

자전거 스피드로 전철을 압도했던 그날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난 버스를 탈 때 매너가 꽤 좋은 편이다. 버스가 도착하면, 같은 버스를 타게 될

사람들에게 먼저 타라고 양보를 하고는 난 맨 마지막에 탄다. 그리고, 먼저 타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카드나 지갑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소매치기냐?라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요즘에 현금 들고 다니는 사람 별로 없는데, 누가 쓸데없는 리스크를 안고 

소매치기 따위를 하나?)

내 목표는 사람들이 카드를 어느 곳에 찍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맨 마지막에 타기에 몇 번이고

확인할 수 있다. 어쩌다 한 번씩 버스를 타니, 단말기에 카드를 찍는 게 영 자연스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끔은 정말 찾지를 못해 뒤에 타는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한 겨울에도 미친 듯이 식은땀을 흘린다.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안 되겠다 싶어  생각해 

낸 나만의 '어쩌다 버스탈 때 당황하지 않는' 나만의 비법이다. 뭐, 신통치 않은 이야기를 비법이라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한심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겠다. (내 브런치에서 내가 지껄이는 한심한 소리니까.)

일 년에 한 번 버스를 탈까 말까 하기에 내게 일어나는 일이다.

뭐, 그렇다고 대기업의 임원쯤이나 되거나 그에 버금가는 재력을 갖고 있어 절대 자기 차만

타고 다니기 때문은 아니다.(하긴, 요즘에는 다들 차를 갖고 있으니, 버스나 전철 안 타는 사람

많을 것 같기는 하다.) 


오랜만에 타면 저거 무지하게 복잡하게 보여서 헤맨다.


웬만한 곳은 자전거로 이동한다. 그래서, 버스를 탈 일이 별로 없다. 전철은 아주 가끔

탄다. 그렇다고 내가 시골 읍내에 사는 것은 아니다. 나름 대도시에 드는 인천 한복판에 산다.

대도시기는 하지만, 서울만큼 크지는 않은 게 인천이라 대강 한 시간 정도면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다.

(아, 강화도나 요즘 서울로 편입될지 모른다는 김포는 제외다. 이 한 문장을 쓰고, 꺼림칙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인천이 생각보다 컸다. 뭐, 그렇다고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은 아니고...)

물론, 비나 눈이 오면 어려워지기는 하지만, 비가 올 때 우비 입고 타는 맛이 있어 비 오는 날도

종종 자전거로 이동한다. 다만, 눈 오는 날은 절대 안 탄다. 괜히 자빠졌다가 평생을 후회할 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요즘 같이 바쁜 시대에 한가한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절대 한가해서 그런 게 아니다. 때에 따라서 자전거가 버스나 전철보다 빠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속도도 나오고, 건강도 챙기고 길거리 구경하면서 그다지 안 좋은

공기지만, 그래도 맞으면 시원한 바람 쏘이며 다니는 즐거움도 있다.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고 건강도 삶도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포털사이트에서 길 찾기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자동차, 버스, 도보, 자전거로 이동할 때의

시간이 적혀있다. 뭐,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강은 맞는 것 같다.

여기서 검색을 해 봐도 대략 4km 이내의 거리는 자전거가 버스나 전철보다 더 빠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자전거의 속도는 약간 높게 책정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실제로 자전거로 이동하다 보면, 포털사이트에서 자전거가 더 빠르다는 결과가 꽤 신빙성이

있다는 것을 종종 직접 경험한다. 


몇 년 전, 자전거로 부평역을 통과해서 부천을 간 적이 있었다. 

부평역을 통과할 때, 늘씬하고 이쁜 모델 같은 아가씨가 둘이서 아마도 전철을 타려는 듯, 부평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돌아볼 정도로 굉장히 매력적인 아가씨들이었기에 나도

자전거를 멈추고  평생 부평에 살았으면서 괜히 이곳은 어디인가? 하는 시늉을 하며, 두리번거리는 

척하면서 두 아가씨들이 역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안타깝게 바라봤다. 


저런 아가씨와 사귀는 놈들은 어떤 놈들일까 하는 씁쓸함을 뒤로하고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아가씨들을 쳐다보느라 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 평소보다 약간 더 달렸다. 뭐, 그래봤자 

내 자전거는 20인치 자전거이기에 속도를 크게 내지 못한다.

물론, 비싼 것은 제법 속도를 내지만, 내 자전거는 소위 말하는 '생활자전거'... 이건 좀 잘 포장된

말이고, 자전거 마니아들이 볼 때는 그냥 싸구려 자전거다. 싸구려라 무게도 제법 있기에 속도에

한계는 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엔진이 시원치 않다. 내 근력과 심장기능이라는 게 술과 담배에

찌들어 영 신통치 않았으니까.


어쨌든 신통치 않은 속도지만,  시간이 촉박하기에 열심히 달려서 송내역을 막 지나칠 때, 부평역에서 

봤던 두 아가씨가 송내역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반갑고 아름답다는 생각도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라? 설마 내가 전철보다 빨리 온 거야?' 

믿을 수 없어, 다시 그 아가씨들이 부평역에서 봤던 그 아가씨들이 맞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느라

뚫어지게 쳐다보니, 안타깝게도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지나갔다.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그 

아가씨들과 엮어질 일은 없고, 내가 빤히 쳐다봤으니 다 이해가 됐다. 그보다는 전철보다 내가 더

빨리 달린 것일까 하는 승리감에 빠져들어 그 순간만큼은 마냥 행복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술자리에서 나의 술주정 레퍼토리는 

"내가 전철보다 빠른 놈이야! 내가 임마! 부평역에서 송내역까지~~'

으로 바뀌었고, 나의 시덥지 않은 무용담은 친구들을 종종 피곤하게 만들었다.

물론, 전철의 속도를 내가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전철을 타기 위해 정류장을 가고,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낭비되는 시간이 꽤 되는 모양이다. 만일, 그 두 아가씨처럼 역 앞이 아닌 좀 떨어진 곳에서

걸어왔으면, 부평역에서 송내역 정도의 거리를 이동할 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전거 빠르다고 하면

헛소리일까? 어쨌든 생각보다 자전거의 기동성은 대중교통을 압도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저 무시무시한 놈을 이겼으니 어찌 승리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앞서 말했지만, 자전거로 웬만한 곳은 다 이동한다고 하면, 날 무척 한가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자차로 움직이는 기동성은 따라가지 못하니, 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날 한가하게

여기는 것은 인정하지만, 어디 사람 사는 게 한 가지 가치로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자전거로 이동하면서 얻은 근력, 유산소 운동, 길을 다니면서 얻는 스트레스 해소와 감정 정화 등등

차로 다니면 얻을 수 있는 기동성 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런 미덕을 차로만 편안하게

다니는 인간들이 자전거의 미덕을 알 수 있을까? 


자전거는 생각보다 빠르다. 더군다나, 자주 다니면 지름길도 하나둘씩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자전거는 더욱 빨라진다. 빨라지는 만큼 갈 수 있는 곳은 더욱 확장된다.

거기에 더해 건강유지에도 좋을뿐더러, 길거리를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오늘도 난 힘껏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달린다.


지금은 저 세상으로 갔지만, 찬란한 그날을 함께 했던 내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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