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 내기

토스트마스터즈에서 영어 스피치를 훈련하다

by 열린

“다른 언어를 배워 그 언어의 네이티브처럼 말하지 않겠다. 그 언어를 배워 그들이 결코 할 수 없는 말을 하겠다.”

-김성우(응용언어학자)-



외국에 살며 관계와 커리어에서 겪는 큰 어려움은 언어 장벽에서 온다. 웬만큼 편안하고 친밀한 상대가 아닌 이상 하고 싶은 말을 반 이상하기 어렵다. 어느새 나는 미국에서 '잘 들어주는 사람'이 돼 있었다. 물론 어디서건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되고싶지만,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싶어 경청하고, 머뭇거리다 할 말을 포기한 내게 돌아온 찬사는 평온하게 존재로 듣는 사람이었다. 한국이면 거침없이 도전했을 일이 선택지에서 멀어진다. 주저할 지언정 수락했을 일도 여러 번 망설이게 된다. '한국이었으면 달랐을 텐데...'라는 가정도 사라진 지 오래다. 모국어 수준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증명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다가는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때가 요원하다. 이럴 때에는 언어가 부족해도 시도해 보는 경험을 늘리며 언어실력을 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나를 노출시키는 게 가장 빠른 것 같다.



이번 주에 내가 속한 스피치 프로그램인 토스트마스터즈(Toastmaster’s)의 오픈하우스 날이 있었다. 늘 손님을 환영하는 공간이지만 이 날만큼은 모든 프로그램을 방문자가 토스트마스터즈를 알 수 있게 기획하고 진행했다. 나는 1년 전, 오픈하우스날에 토스트마스터즈를 처음 경험했고 바로 다음 달에 이 프로그램에 가입했다. 6년 전 유학생일 때, 짝이 추천한 곳이었지만 선뜻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작년 이민을 오자 마자 영어공부는 토스트마스터즈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친구가 한국에서 토스트마스터즈를 경험하고 강추했기에 신뢰가 갔다.


토스트마스터즈는 180년 역사를 가진 국제 영어 스피치 모임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45분 프로그램에 철학과 구성이 탄탄하게 녹아져 있다. (클럽에 따라 진행시간은 45분, 90분, 120분 등 유연하다.) 내가 토스트마스터즈를 전에 알았다면 필히 영어교육 과정에 넣었을 정도로 모든 순서가 영어 말하기 능력을 키우기에 효과적이다. 영어가 중급실력에서 머물고 있는 내게 토스트마스터즈의 말하기 중심 프로그램은 분명 영어실력에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사실 스피치는 모국어로도 편하지 않았다. 강의보다 참여자 모두에게 배우는 서클의 방식을 선호해 온 나는 수업을 할 때도 강의는 지양해 왔고, 미국에 와 회복적 정의와 교육을 영어로 전달해야 할 때에는 어떻게든 서클 형식의 워크숍을 구성해 강의전달식을 피해 왔다. 내게 스피치는 시간이 길든 짧든, 영어든 한국어든 부담스러웠다. 나의 토스트마스터즈 첫 멘토 Lamees는 한 달에 한번 멘토링으로 만날 때마다 내게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피드백해줬으면 하는지 물었다.


“영어로 발표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요. 지금은 그냥 발표를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 같아요.제가 꾸준히 발표할 수 있게 격려해주세요”


Lamees는 멘토로서 내가 5분 발표를 결국 해 낼 때마다,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토스트마스터즈에 멤버로 등록한 지 6개월 후 세 번째 발표를 마친 나에게, 평가자로서 내게 “앞으로는 한 달에 한번 즘은 열린의 발표를 듣고 싶어요.”라 말하며 나의 말하기 도전을 응원했다.


6개월간 Lamees의 따뜻한 지지와 다른 멤버들의 격려와 칭찬이 가득한 토스트마스터즈는 내게 안전한 공간이었다. 최근 두 달간 두 번의 스피치를 한 내게 동료들은 차분하게 긴장하지 않고 전달하는 스피치 능력을 긍정적으로 피드백했다.


이번 주 오픈 하우스에서 Table Topics (즉흥 1-2분 말하기로 멤버와 방문자 모두 참여할 수 있음) 순서를 맡았던 Mayura는 토스트마스터즈와 Table Topics의 아름다움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 말하며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어느덧 토스트마스터즈 1년 차, 지금까지 총 5번의 발표를 했다. 5번이면 그렇게 많은 발표를 한 게 아닌데도 대중 앞 말하기가 그 어느 때보다 편해졌다. 이 편안함이 5번의 발표를 해냈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님을 잘 안다. 7개월간 글쓰기 수업을 하며 매주 글을 쓰고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을 한 것과 1년 동안 토스트마스터즈를 빠짐없이 출석해 다른 역할을 맡으며 내 목소리를 내는 훈련을 한 것도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오늘 교육청 Family Advocates 대중 앞에서 회복적 교육에 대한 15분 발표를 했다. 발표일이 다가오자 완벽주의 성향과 준비할 시간에 만화책과 웹소설을 탐독하는 전형적인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났다. 쉽지 않았다. 그 가운데 내 부담을 덜어주는 목소리도 있었다.


‘토스트마스터즈 좀 길게 하고 오는 거네.’

‘영어공부 제대로 하고 올 기회네. 즐겨’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발동하는 완벽주의가 지적하는 아쉽고 미숙한 것을 적자면 끝이 없을 것을 안다. 초행길인데도 발표 장소에 15분 전에 도착하지 않은 것,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노트북을 챙기지 않은 것 등 말이다. 그래도 난 ‘해낸 것’, ‘결국 해내고 만 것’에 나의 주의를 뒀다. 작년의 나라면 굳이 하겠다 하지 않았을 일, 하겠다 했어도 당일 그 순간까지 결정을 후회하며 고통스러웠을 일을 보다 가볍게 해냈다. 모두 토스트마스터즈에서 연습한 결과다. 한번 발표를 할 때마다 시간과 정성을 다해 내 생각과 감정을 다듬어 내 목소리로 전달한 경험 덕분이다. 앞으로 내가 해내고 말 실전들을 기대한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다. 한 달에 많게는 두 번, 진정성 있게 내 목소리를 내는 훈련을 하는 이상 나는 내일 오늘보다 더 잘 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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