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세 가지
“평범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깊이로
나를 제자리에 앉히는
향기로운 나무책상을 하나 갖고 싶다.”
-이해인-
책상은 내 소유의 가장 오래된 가구였지만 책상이 내 것이 되기까지 그 어느 가구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상은 내 생애 첫 나만의 가구였다. 너비는 120, 깊이는 60센티 정도 되는 일자형 벚나무색 책상. 잠은 엄마 아빠와 안방에서 자던 시절, 부모님은 오빠가 국민학교에 들어가자 작은 방에 오빠 책상과 내 책상을 들였다. 내 책상은 놀이터였다. 그 앞에 앉기보다 오빠와 저녁마다 책상과 세트인 의자 두 개를 뒤집어 만든 택시 옆에서 택시기사와 승객놀이를 하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 후 한 이사에서 엄마는 집 가구 대부분을 새로 장만했는데, 내 첫 책상은 침대, 옷장과 함께 처분됐다.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책장이 붙어 나오는 크고 번쩍한 새 책상을 사 준 엄마에게 고마웠을 뿐이다.
내 책상은 가구이지 내 삶을 담는 공간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하겠다고 진득하게 앉아 있는 곳은 학원이나 독서실 책상 앞이었다. 후에 입시와 고시에서 졸업하고 집중해야 할 때는 카페를 찾았다. 딱딱한 의자와 내 상체 길이와 맞지 않는 좁은 탁자로 허리가 아프고 엉덩이가 배겨도 집 책상에는 잘 앉아지지가 않았다. 나는 내 책상에 앉아 천천히 읽고, 쓰고, 정리하고, 사유하는 세대가 아니었다. 내 책상이 내 몸의 온기로 덥혀지기까진 이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해야 되는 공부가 끝나고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가 생긴 후부터 나는 내 책상 앞에 앉게 되었다. 책상이 단순한 가구에서 나와 관계를 맺는 공간이 된 때는 용인 동천동에 살던 시절부터인데 내 책상은 원래는 베란다였을 자리에 있었다. 베란다를 틔운 방이어서, 책상에 앉으면 창문에서 아파트 둘레에 심어놓은 나무가 잘 보였다. 2층이라 창문이 나무에 둘러싸여 사계절이 찾아오고 떠나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1,2호뿐인 엘리베이터식 서향 아파트 2층집은 유독 추웠다. 책상 자리는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아 4월에도 책상에 앉으려면 옷 한 겹을 더 입어야 했다. 일 년에 세 계절은 서늘한 냉기와 한기가 가시지 않는 공간이었는데도 나는 토요일 아침이면 약속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앉았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이 좋았다. 혼자여도 괜찮은 나여서 좋았다. 나는 그곳에서 고독을 배웠다. 혼자인데도 외롭지 않았고 혼자라서 좋았다. 토요일 오전 약속이 반갑지 않게 됐다. 차츰 토요일 오전은 내가 나와 데이트하는 시간으로 정해졌다. 그곳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했다. 고통과 감정이 요동치는 폭풍 가운데 만나는 내가 아니라 고요와 평온한 일상 가운데 만나는 나였다. 누가 가르쳐주거나 누구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스스로 하는 공부가 재미있었다. 책상에 앉아 질문하고 답을 찾아 헤매고 꿈을 꾸며 대학원을 준비했다.
유학 시절 가장 그리웠던 것은 내 책상이었다. 머물렀던 곳에는 책과 노트북을 놓고 메모한 종이나 공부한 노트를 맘껏 어지를 책상이 없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원룸에서 자취를 하게 됐을 때, 엄마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내 책상을 데려 왔다. 가로 150, 세로 70센티 책상이라 자고, 먹고, 쉴 곳이 따로 없는 방 한 칸을 차지하기엔 부담스러운 크기였는데도 묵직하고 큼직한 그 책상을 원했다. 타국으로 이민 와 남편과 살림살이를 하나씩 천천히 장만할 때 남편은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어냐 물었다. 대답은 몇 초의 망설임 없이 입을 거쳤다.
“책상, 책상을 가장 먼저 갖고 싶어.”
나는 책상에서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쓰며 나를 비우고, 읽고 쓰며 나를 채우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선다. 마음이 어지럽고 생각이 엉키는 날이 이어질 때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요즘 책상에 얼마나 앉고 있어?’
‘오늘 책상에 언제 앉았지?’
책상에 앉으면 어느새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세 가지가 나를 감싸 안는다. 고요 가운데 만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책과 컴퓨터를 통해 말과 글로 나를 깨우고 위로하고 세워주는 타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라는 희망이 어느덧, 내 곁에 와 앉아 있다. 나와 타자, 그리고 희망이 손짓하고 있으니 나는 책상 앞에 홀린 듯이 또 앉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