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모은 연금보험을 해약해 다 쓰는 데 까지 15개월이 걸렸다. 2024년 7월, 보험사 상담원은 해지 직전 같은 말을 한번 더 물었다.
“10년이나 부으셨는데.. 이렇게 좋은 보험을 아깝게 해지하시게요?”
“....... 네”라고 답하는 내 목소리는 처음보다 작았다. 상담원의 권유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뾰족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민을 간다고 딸이 아닌 것은 아니다. 자식 도리에는 돈이 필요하다. 게다가 앞으로 이전처럼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할 수 없는 내게 달마다 납입해야 하는 10만 원은 큰돈이었다.
연금대신 택한 목돈에 추운 날 배고플 때 먹는 국밥처럼 속이 든든해졌다. 따로 이름 붙이지 않았지만 해약한 보험금이 든 통장은 가족을 위한 비상금이었다. 이 돈으로 명절, 가족 경조사비를 챙겼다. 엄마가 가족, 친구 친목 모임을 가거나 여행을 가도 십만 원, 이십만 원씩 용돈을 드렸다. 예전과 변함없이 돈을 챙겨 드리니 이민 온 자식의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순간씩 울컥하는 미안함을 씻을 수 있었다. 1년이 지나자 들어오는 돈 없이 나가기만 하는 통장은 잔액 300만 원을 찍었다. 통장을 만들 때 내가 지키고 싶었던 마지노선 액수였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끊어 날아갈 수 있는 티켓값.
빨갛고 노랗게 타 한껏 가벼워진 잎들이 땅 속 깊이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친 가을이었다. 매일 영상통화로 확인하는 엄마의 얼굴이 그늘로 얼룩졌다.
“오빠네가 많이 어려운가 봐. 또 도와 달래. 엄마가 모아놓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네.”
나의 발작버튼인 ‘엄마에게 손 벌리는 오빠’가 눌렸다. 오빠한테는 하지도 못할 모진 소리가 수일 째 근심한 엄마에게 폭격처럼 쏟아졌다.
“오빠는 왜 그 몸 갖고 어디 가서 일을 안 해.”
“........”
“언니랑 같이 하는 일 경기 타는 거 알면서, 왜 둘이 돈을 안 모으는 거야? 명품가방이며 호텔에서 밥 먹을 돈 쓰지 말고 돈이나 모으라 해.. 분수도 모르고…”
“.........”
“이번엔 꼭 갚으라 해!!! 벌써 몇 번 째야? 왜 엄마 돈을 뺏어가는 거야, 양심도 없어.”
“..............”
“오빠를 이렇게 만든 건 엄마야… 엄마 힘들어도 오빠를 위해서 이번에 꾹 참자. 절대 돈 보내지 마.”
“...........”
어려서 말대답도 못하게 했던 엄마는 딸의 가시 돋친 말을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예전처럼 딸에게 모아 놓은 돈이 있냐고 선뜻 묻지도 못했다. 이민 와 변변한 돈벌이 없는 딸의 처지를 잘 알아서였다. 이십 대부터 오빠에게 돌려받은 거 하나 없이 목돈만 내어 주던 딸이란 것을 잊을 리 없었다. 엄마가 오빠가 힘든 것을 못 보는 것처럼 나 역시 엄마에게 그랬다.
“전화 끊고 삼백만 원 붙일게. 내가 가진 거 전부야. 이번에는 꼭 오빠한테 갚으라 해 엄마. 다달이 몇십만 원이라도 엄마한테 보내라 해. 응?”
“알았어. 그럴게. 고마워.”
“제발.. 엄마…”
이 일 후 깊어지는 가을과 함께 나는 침잠했다. 어차피 엄마를 위해 모아 놓은 돈을 엄마의 속앓이를 풀기 위해 썼음에도 마음은 한 번 떨어진 잎처럼 다시 올라올 줄 몰랐다. 가족을 위한 돈을 가족을 돕기 위해 썼는데 속이 썼다. 무능했던 아빠, 직장 생활은 안 하려는 오빠, 불안정한 세계로 기어이 선택한 나로 이어지는 카르마가 나를 죄어왔다. 칠십이 넘은 엄마만 여전히 일하고, 부지런히 돈을 벌었다. 엄마의 웃음을 앗아간 아빠의 실업과 엄마를 한숨짓게 하는 오빠의 생활이 미웠다. 이제는 엄마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없는 내 현실이 싫었다.
“오늘은 뭐 했어?”
저녁을 같이 먹으며 짝이 나의 하루를 여상히 물었다. 반찬을 씹으며, 집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쇼핑몰에서 구하는 알바 자리 네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답했다. 은행, 국숫집, 바디용품 가게, 신발 가게에 이력서를 넣으니 좀 살 것 같았다고, 새 해는 유용해질 것 같아 기운이 난다는 말도 덧붙였던가. 우리 대화는 다른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던가. 아니면 한 동안 침묵만 흘렀던가.
식사를 다 마칠 때 즈음 짝이 미쳐 마무리짓지 않은 화제로 돌아갔다.
“나는 당신이 올해 여름 한국에 가기 전까지 집 앞 초등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했으면 좋겠어. 그럼 분명 사람들이 당신을 알아볼 거고, 당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야.”
알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원봉사 신청 이메일을 보내도 응답이 없는 학교에 다음 주에 꼭 직접 방문하겠다 덧붙였다.
나는 어느 날 책상에 앉아 집 근처 언어능력이 크게 필요치 않고, 내 전공과는 상관없는 일에 이력서를 잔뜩 보내 놓고 유용하다는 기분을 잠시 낼 지 모른다. 한두 달 바짝 일해, 올해 여름 한국에 가면 걱정 없이 엄마에게 밥과 선물을 사주고, 제주도라도 여행 갈 수 있는 돈을 벌고 싶어서. 이런 나를 짝은 말린다. 다시없을 소중한 기회에 영어, 전공, 네트워킹에 집중해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준비하라고.
삶은 내게 다시 한번 무용한 시간을 견디라 한다. 이번에는 엄마 대신 짝의 등에 고이 업혀서 날개 하나 젖지 않고 바다를 건너라 한다. 대학 시절, 하루빨리 임용고사에 합격해 교사가 되는 게 엄마를 돕는 거라고 자위하며 알바 하나 안 하고 공부했던 시간. 그 후 3년 가까이 임용 고사 수험 생활만 한 기억이 나를 찌르는데도 이렇게 또 한 번 무용하게 살라 한다.
따지고 보면, 타국으로 이민 와 2년 가까이 일한 나인데 나는 왜 스스로를 무용하다 느끼는 걸까. 온라인에서 서클 교육을 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노동은 일이 아닌 걸까. 앞으로 나는 얼마만큼 돈을 벌고 수중에 쥐고 있어야 불안을 멈출 수 있을까. 일주일에 몇 시간을 사회에 기여해야, 얼마나 바쁘게 살아야 나의 쓸모 있음에 안심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