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가르치다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은 그 어떤 사람이 불러도 가장 달콤하고 소중한 소리다."
-데일 카네기-
타국으로 이민 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제외하고. 시간강사로 일하는 작은 사립대학에 외국어 프로그램이 있다. 학점과 무관한 학습으로 튜티는 해당언어가 모국어 거나 그 언어를 좋아하는 학생이다. 튜터는 대부분 유학생이나 교환학생인데 담당자는 선뜻 내게 튜터 한 자리를 내주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조애나(가명)와 케이시(가명)을 만났다. 대학시절 동안 꾸준히 참여해 왔고 올해 졸업반인 둘의 한국어는 유창했다.
한국어 수업은 한국적인 것을 환영하는 공간이다. 한국어 수업에서 조애나와 케이시는 나를 ‘열린샘’으로 불렀다. 미국에서 만나는 이들은 나를 열린이라 부르는데 처음부터 나를 ‘열린샘’으로 부르면 된다 알려주었다. 둘에게는 각각 준희(가명)와 샛별(가명)이라는 한국어 이름이 있었다.
“앞으로 준희님, 샛별님이라고 불러도 돼요?”
내 질문에 준희와 샛별은 배시시 웃으며 허락했다. 생애 처음 준희님, 샛별님이라 불린 것처럼.
준희와 샛별은 부모님과 더 잘 소통하고 싶어 한국어를 배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재미있게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다 했다. 특히 샛별은 한국어교재와 문법으로 체계적으로 배우는 수업방식은 하고 싶지 않다 했다. 말하지 않았지만 어렸을 적 정규 학교 수업 외 주말마다 한국어학교를 또 가야 했던 수고가 느껴졌다. 우리는 ‘무빙’이라는 20화짜리 한국드라마를 골랐다. 내용이 감동적이고 무엇보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다룰 수 있어서 유익하리라 믿었다. 한주에 한편씩 같이 드라마를 보며 내용을 감상하고 연관된 한국문화와 역사를 배웠다. 둘은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 고등학생 문화를 좋아했다. 나는 한국의 남북문제, 노동문제, 위계문화, 민주주의 역사를 가르칠 수 있어 기뻤다.
처음 가 본 재미교포 집에는 ‘한국적’인 것이 가득했다. 침실에는 나전칠기 경합과 보석함이, 2층집 사이 공간 곳곳에는 노리개와 조각보가 빛났다. 이민을 오자마자 시작한 한국어 수업은 내게 한국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하고 쉽게 뱉으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 반복해서 틀리는 굳어진 영어(Broken English)도 부끄럽지 않은 공간이었다. 한국의 얼을 함께 톱아볼 수 있는 곳. 내게만 이 공간이 한국이었을까? 12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한 달간 겨울방학을 하고 만난 첫 수업에서 학생들은 “한국어를 한 달 만에 해서 어색해요.”라고 했다. 방학 동안 가족과 여행을 했는데도 말이다.
어렸을 적 미국으로 이민 간 준희와 샛별에게 1 언어는 영어다. 한국어는 모국어였을 뿐인데 학교에 들어가자 외국인을 위한 영어수업반(ESL)에 들어갔다. 부모가 이민자였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제법 오래 하루에 일정시간 동안 다 아는 영어를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요즘 내게 온라인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연수(가명)에게는 이 언어정책이 더 잔인했다. 그가 열 살에 미국으로 갔을 때,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와 한국에서만 산 그의 영어는 서툴렀다. 그의 첫 미국 선생님은 엄마를 불러 연수의 적응을 위해 가정에서 한국말을 쓰지 말라 했다. 결국 그는 그의 유년시절 언어를 대부분 잃었다.
올 가을 연수는 오래간만에 한국 고향을 방문한다. 부모님이 미국에서 입양한 한국출신 누나, 조이(가명)의 가족과 함께. 할머니에게 한국말로 말하고 싶어 올 해 5월부터 조이와 함께 나와 일주일에 두 번씩 한국어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한 지 한 달이 지나, 나는 조이에게 한국어 이름이 있는지 물었다. 미솔이라고 했다. 엄마 한국 성(family name)인 ‘도’에 어울리는 이름, 도미솔. 한 달이 지나서야 한국어 수업에서 미솔의 잃어버린 이름을 불렀다. 진즉 물을 걸 그랬다. 선득선득한 후회가 아닐 수 없다. 미솔의 이름은 자체도 예쁘지만 도미솔 음을 따 부르면 더 즐겁고 정겹다.
이민 올 때 가져온 책 상자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과 한강의 <소년이 온다>,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과 <시의 힘>,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있다. 언젠가 한국계 이주민과 함께 읽고 싶어 가져온 책이다. 현재 한국어 강사로 미국에서 건사할 계획은 없다. 그래도 한국 이민자 자녀나 국제부부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기회가 닿는 대로 하고 싶다. 그이들과 창조하는 한국이라는 공간이 기껍다. 멀지 않은 어느 날 이 책을 함께 읽을 수 있는 날을 꿈꾼다.
(건사하다: 자신에게 딸린 것을 잘 돌보아 거두다는 뜻의 순우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