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주 교사 자격증 신청을 해내며
"삶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 안도현-
버지니아주 교사 자격증 신청 완료 버튼을 누르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옆에 앉아있는 트리샤를 안았다. 발을 바닥에 쿵쿵 구르며.
“열린, 이거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린 거죠?” 트리샤가 환히 웃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1년 걸렸다. 처음 트리샤의 사무실에 도움을 구하러 갔을 때가 작년 9월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대학에서 학생들의 교사 자격증 신청 준비를 돕는 베테랑 사범대학 교수인 트리샤를 찾아 갔다. 삶에서 어떤 1년은 눈에 보이는 성장이나 진보 없이 헤매는 시간이 될 수 있는데, 그녀가 없었다면 그런 1년이 될 뻔했다.
지난여름, 미국에 이민온 후 처음 한국 귀국을 앞두고 있을 때 이민생활 10개월을 결산하고 평가하는 나를 발견했다. 한 해 연말처럼 '첫 이민생활 결산'을 자발적으로 아니 자동적으로 했다. “너 10개월 동안 뭐 했니?”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혼자서는 안 되겠는지 ‘평가 위원회’를 데려와 주기적으로 회의를 열었다.
‘평가 위원회’에서 평가자들은 설정한 목표부터 살펴봤다. 나의 이민 첫 해 목표는 타국에서 ‘독립을 위한 기반 마련하기’였고, 이를 위한 행동목표 중 하나는 한국 교사 자격증을 미국 교사 자격증으로 전환하기였다.
‘평가 위원회’는 '목표달성 실패'라고 평가했다. 평가의 근본은 ‘성장’이기에 야박하고 차갑게 달성여부만 평가하지 않았다. 평가의 전문가들이었다. 보다 평가다운 평가를 위해 과정 중심 항목도 곁들였다. 한데 ‘성장’의 가면을 쓴 ‘심판’이기에 수량평가였다. 쉽고 빠른 데다 충격요법으로는 제법인 걸 알기 때문이었다.
미국 교사자격증 따기는 9% 달성. 후하게 줬다 하지만 10%를 넘기지 못했다. 자격증 전환 과정을 도와줄 사람을 만나 정확한 정보를 얻고 한국 대학 졸업성적증명서를 변환해 문서화했지만 이후 5개월간 진척된 사항이 없어서였다.
평가 위원회의 폭격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던 나는 귀국 전 부랴부랴 ‘응급처치 자격증(CPR)’ 과정을 신청했다. 개학을 한 주 앞두고 밀린 방학과제를 하는 학생처럼 미룬 일을 해치웠다. "너 10개월 동안 뭐 했니…"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일단 하기’는 빠른 특효약이었다. 이 행동이 기특하기보다 갸륵했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온라인에 올려 놓은 ‘전환기를 사는 지혜’라는 글을 찾아 읽었다. 이민을 위해 퇴직을 하고, 6개월 간 동남아 이곳저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살 때 적은 글이었다. 새로운 항해를 앞두고 나는 스스로에게 일곱 가지 다짐을 했었다.
1. 내 곁에 지혜롭고 신뢰하는 가이드 두기
2. 커뮤니티 만나기
3. 이미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음을 신뢰하기
4. 나만의 고유한 일상의 리듬을 만드는 데 충분한 시간을 주기
5. 매일 작은 일이라도 성취감 경험하기
6. 한 주에 하루는 푹 쉬기
7. 무엇보다 자신에게 친절하기
비록 나의 ‘독립을 위한 기반 마련하기’ 목표는 실패하고, 행동목표 달성률은 평균 10%도 안되지만, ‘전환기를 사는 지혜’는 살아냈음을 발견했다. 한국행을 앞두고 자꾸 ‘너 10개월 동안 뭐 했니…’라고 불안해서 두려워서, 한심하단 듯 묻는 ‘나’에게 이 일곱 가지 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낸 게 바로 ‘나’라고 말해줬다. ‘평가위원회’에 탈탈 털린 나의 귓가에 안도현의 말도 나지막이 들려줬다. “삶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덕분에 고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 20시간 동안 나만의 축제를 열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먹고 마시며 이 일곱 가지 지혜가 10개월 동안 나의 삶에 어떻게 숨을 불어넣었는지 천천히 기록하는 잔치 말이다.
다시 미국에 온 지 두 달 째, 자격증 전환 준비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어 온라인 서류 접수를 마쳤다. 이제 자격증 전환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내가 한국 대학에서 들은 영어교육 학점이 버지니아 ESL(영어가 제2언어인 학생을 지원하는 영어 보충 수업) 학점으로 무사히 전환된다면 앞으로 빠르면 2 주 안에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자격증을 갖고 ESL교사가 필요한 곳에 구직 신청을 하면 내년 1월 새 학기가 시작할 때 일 할 수 있다.
지난여름 내 머릿속에 크게 자리 잡았던 ‘평가 위원회’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삶은 평가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임을 자각하고 수용할 때 숫자로 비교하고, 판단하며 닦달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묵직하게 울리는 나의 심장소리가 들린다. 쿵쿵 뛰는 살아있는 울림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