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삶을 끝내며
"모든 변화에는, 비록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라도, 일정한 슬픔이 있다.
우리가 남겨두고 떠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삶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이전의 삶을 끝내야만 한다."
-아나톨 프랑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스튜어트로. 미국에 이민 와 처음 산 곳이다. 중소도시 리치먼드의 레스토랑과 쇼핑 장소, 미술관, 박물관, 오래된 영화관이 있고, 문화행사가 절기마다 열리는 캐리타운을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다. 교통의 요지다. 공항이든 리치먼드 교외든 차로 20, 30분이면 갈 수 있고 대중교통이 이용가능한 곳이다. 내가 속한 대학까지 가는 버스가 아침부터 저녁 6시까지 45분마다 한 대씩 운행 중이고, 1시간에 한 대씩 스쿨셔틀버스가 지나가 대중교통으로 학교에 갈 수 있다. 동네 전체에 자전거 도로가 정비돼 있고, 평지라 자전거 타기 좋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주립대학 토스트마스터즈 영어 스피치 커뮤니티를 주마다 참석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마트만 5개인 동네. 1년 동안 나는 산책 삼아 장바구니를 들고 이쪽저쪽 마트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퀘이커 미팅엔 걸어서 30분, 자전거로는 10분 만에 갈 수 있다. 당장 차가 없어도, 운전을 자신감 있게 하지 못해도 내 미국 초기 생활 적응이 어렵지 않게 교통과 쇼핑의 요지에 첫 미국 살림을 차린 것이다.
이사 온 지 일주일, 같은 층에 사는 케빈과 케일라와 처음 인사를 나눴다. 처음 만나 나눈 스몰토크에서 우리가 모르는 이사 온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사 오기 한 달 전, 집 다이닝룸 천장이 여름 비로 무너져 내린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집에 한 달 만에 세입자가 들어온 게 놀랍다고 했다. 하자가 있을 수 있으니 잘 살펴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둘은 곰팡이로 삭은 천장이 비로 무너졌다 믿었다. 곰팡이는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파트 전체 문제였다. 케일라는 아파트 곰팡이로 반려견을 부모님 댁에서 키우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는 데려오지 않을 거라 했다. 케빈은 이사오자마자 알게 된 곰팡이 문제로 매니저와 대립하며 렌트비를 내지 않고 있었다. 87년 된 오래된 아파트. 낡은 외관은 오래된 동부 도시 중심가에 있으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곰팡이는 다른 문제였다. 건강과 직결된 부분이라 우리는 크게 동요했다.
실물을 보지 않고 해외에서 인터넷으로 계약까지 마친 게 실수였다. 대학교만 3개가 있는 도시에 살게 될 거라 우리가 미국에 들어오는 8월, 살 수 있는 집이 없을 까봐 걱정했던 게 화를 불러왔다. 실제로 집을 봤으면 이 집을 계약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는 집을 계약할 때 실물을 볼 수 없다. 이전 세입자와 만날 수도 대화할 수도 없다. 단독주택을 구입하지 않는 한 아파트든 타운하우스든 모델하우스만 보고 결정해야 한다. 모델하우스는 늘 깨끗하게 관리하고, 세련된 가구로 채워져 있어 실제 살 공간 상태는 이사를 가봐야, 살아 봐야 알 수 있다.
집에 곰팡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나 금전적 손실 없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일주일은 이미 지나 있었다. 매니저에게 곰팡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 요청했다. 아파트가 오래돼 생긴 전체 문제라 해결 방안이 없다 했다. 아마존에서 곰팡이 간이키트를 사 테스트했다. 간이테스트에는 건강에 큰 염려를 끼치는 곰팡이가 없다 나왔지만 시원치 않았다. 곰팡이를 전문적으로 검사하는 전문가를 부르면 수백만 원이 들어 차마 하지 못하고 공기청정기를 세 대 사 방마다 설치하고 24시간 돌렸다.
온수도 말썽이었다. 반신욕은 불가능했다. 기분 좋게 샤워하기에 적당한 정도의 따뜻한 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겨울에도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는 날이 많았다. 지난 2월 온수장치가 아예 고장 나 버리는 바람에 이를 교체했다. 그제야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었다. 온수조절기를 교체하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1월 폭설로 도시 전체 수도가 오염돼 1주일 간 단수를 경험한 일이 전기주전자로 덥힌 물로 간단히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육 개월만 버티면 이 집에서 이사를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됐던지. 더 쾌적하고 편안한 공간에 살고 싶었다. 욕심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아무튼, 집>의 저자 김미리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마음은 좋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삶을 열심히 사랑하겠다는 다짐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집인데도 나는 이 집에 정이 들었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도 좋아하게 되었다. 어릴 적 명절에 외갓집에서 한 밤을 자고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다리를 뻗으며 늘 “다리 밑이어도 내 집이 제일 좋은 거야.” 했다. 편리한 교통과 편의시설, 예쁜 꽃과 나무가 즐비한 동네는 당연하고, 이 아파트마저 그리울 것이다. 욕실까지 큰 창이 있어 어디든 창문을 열어 놓고 있으면 맞바람이 불어왔던 곳. 우리 고양이가 우리와 함께 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냥이를 눈물과 사랑으로 돌본 곳, 짝이 쓰던 기본 살림에 고심하며 하나씩 더 해갔던 살림살이들, 1년 새 박스 다섯 개로 분량만큼 커진 내 책들이 사랑스럽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큼 사랑스럽게 짝과 함께 웃고, 울고, 위로하고, 지지하고, 꿈꾸던 거실과 서재도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에 가 있는 여름동안 이 집을 리치먼드에 머물 공간이 필요한 이웃에게 내 준 일이 특별하고도 뜻깊다. 우리가 한국에 있을 때 기꺼이 공간을 내주는 가족과 친구처럼, 내가 워싱턴에서 인턴십을 하던 시절에 무료로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게 해 준 닐처럼, 우리도 윌리엄스버그에서 2시간씩 출퇴근을 하는 리아(가명)에게 우리 공간을 내 준 일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우리에게 인내와 친절함을 가르쳐 준 집을 곧 떠난다. 프랭크 오세스세스키는 “내뱉는 숨의 끝, 하루의 끝, 한 끼니 식사의 끝.. 당신은 삶에서 끝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라 물었다. 나는 이 집과의 마지막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지인이 이사를 가면 늘 안부를 묻고 건네는 시 한 편이 있다. 새 집으로 이사 가면 짝과 함께 마른 세이지에 불을 피워 집구석구석을 정화한 뒤 읽으려 했던 시를 미리 읽는다. 이 집과의 인연을 축복으로 끝맺기 위해, 나에게 선물한다.
이곳이 되기를 (존 오도나휴, 조은경 옮김)
이 집이 그대 삶의 쉼터가 되길 바라네.
그대가 집에 돌아올 때
세상의 모든 시름을
그대의 어깨에서 내려놓길 바라네.
이곳에서 그대의 마음이 평온해지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로 축복받길 원하네.
이 집이 행운의 장소가 되어
그대의 삶이 열망하는 은혜가
항상 그대의 집으로 향하는 길을 찾길 바라네.
해로운 것은 무엇이든
그대의 집 문지방을 건너지 못하길 바라네.
이 집이 이해와 수용으로 충만한
안전한 곳이 되길 바라네.
다른 사람인 척 가면을 쓰거나
다른 모습을 할 필요 없이
그대가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네.
이 집이 발견의 장소가 되길 바라네.
그대 영혼의 육체 속
아직 아무것도 탄생하지 않았고
잠자고 있는 가능성이 부상할 수 있는 곳에
그대의 꿈을 깊게 하고 정제하길 바라네.
치유와 성장이 사랑받고 존엄성과 용서가 가득한
용기의 집이 되길 바라네.
인내하는 영혼이 상을 받는 집
여정이 고되고 더디다 해도
결코 행선지를 잃어버리지는 않으리니
이 집 주변에 무한한 즐거움이 있길 바라네.
깨지고 의기소침한 영혼을
환영하는 집이 되길 바라네
선물 없이 이곳에 도달하는 손님이 없고
축복받지 않고 이곳을 떠나는 손님도 없음을
그대가 볼 수 있길 바라네.
나와 짝의 온전한 삶의 쉼터, 이해와 수용으로 안전한 공간이 된 이 집에 감사한다. 이 집이 치유와 성장, 사랑, 존엄성, 용서가 가득한 용기의 공간이었어서 고맙다. 새로운 곳도 이와 같으리란 것을, 언제든 어디에 머물든 나의 집이, 우리 집이 그러한 공간이 되리라는 믿음이 내 삶에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