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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Nov 05. 2021

극기복례 : 그럼에도 불구하고

6교시 원격수업. 2학년 19과 '克己復禮(극기복례)'가 학생들에게 어렵겠다 싶어 출석 부르고 졸음방지 출석퀴즈를 냈습니다.

"지금 졸리고 피곤하다 1, 보통이다 2, 컨디션이 좋다 3으로 적어 주세요."

비밀댓글 보니 1이 많습니다.

"이번엔 1을 쓴 친구만 대답해 주세요. 졸릴 때 어떻게 졸음을 이겨내시나요?"

아이들 답을 이름 안 밝히고 읽어 줍니다. 운동. 세수. 양치. 노래감상. 달달한 걸 먹기. 시원한 물 마시기. 올바른 자세 하기. 에너지 드링크 2캔. 정신력으로 버틴다. "책상에 머리 한 번 박기"에 순간 '헉'! 뺨때리기, 귀 잡아댕기기도 짠합니다.


"여기에 보면 자기를 이긴다고 되어 있는데요. 지금 너무 졸리지만 잠을 자거나 수업을 빼먹지 않고 이 자리에 와서 힘을 내어 수업 듣는 것도 자기를 이기는 거예요. ㄱ에게 물어볼게요. 혹시 다른 아이에게 패드립 들어 본 적 있으세요?"

"네."

"그러면 패드립을 하는 건 친구에 대한 예의가 맞을까요, 아닐까요?"

"패드립을 한다는 자체가 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사실 어떤 친구들은 애정의 표시로 패드립을 하기도 하는데, 아직은 패드립이 예의가 아니죠. 맨 마지막에 禮(예)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자기를 이기고 예를 되찾는다는 말에서 예는 사회적 약속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겠습니다. 아까 ㄱ가 말한 것처럼 이유가 있으니까 패드립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패드립을 하는 게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내가 어떤 친구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거나 패드립을 하고 싶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것. 그것도 仁(인)이 될 수 있겠습니다."


"ㄴ에게 물어볼게요. 우리 반 친구들이 ㄷ선생님(담임선생님)께 반말 하면 돼요, 안 돼요?"

"안 돼요."

"안 돼죠. 이것도 예거든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반말을 하지 않고 높임말을 쓴다. 그것도 예가 되고요. 그러면 ㄹ에게 물어볼게요. 특정한 사람에 대해서 뒷담화를 하는 것은 예일까요, 예가 안 될까요?"

"예가 아니겠죠."

"맞아요. 그래서 아직까지 우리가 많이 하는 것들 중에 뒷담화라든지 가운뎃손가락 올리기라든지 패드립 같은 게 있는데요. 공자가 안연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네가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를 이기고" 자기를 이긴다는 건 내멋대로 하고 싶거나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고 싶거나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고 싶어도 내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을 이기는 거예요. 그 다음에 예를 되찾는 것. 학생은 수업시간에 수업을 잘 듣는 게 예를 되찾는 거겠지요. 친구들끼리는 뒷담화나 욕을 안 하고 좀 괜찮은 말을 쓰는 게 예일 것이고요. 내가 내 마음대로 막 하고 싶다가도 - 누구나 그런 욕망을 가질 수 있어요 - 그걸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건 하늘과 땅 차이겠죠."


"ㅁ에게 물어볼게요. 만약 ㅁ가 어떤 친구에게 속상한 일이 있어서 다른 친구에게 뒷담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럴 때 뒷담화하는 것과 하지 않는 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욕을 하면 사이가 안 좋아지고. 욕을 안 하면 사이가 안 좋아지지 않아요."

"저도 사실 욕을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참 잘한 건 비속어나 욕을 쓰지 않은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수업시간에 욕이나 패드립을 섞어 쓰면 여러분들이 듣기가 좀 그렇겠죠. 내가 나쁜 마음이나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것이 克己(극기)입니다."

원격수업 때 쓴 PP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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