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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Nov 11. 2021

역지사지 : 마음 헤아리는 채점

2학년 1학기 2차 주제논술 성적 확인 기간. 글은 잘 썼는데 한자 모양 틀린 학생이 많습니다. 몇몇 학생은 한문 문장 풀이에 빠진 곳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 마음 덜 다칠까?' 채점할 때마다 밀려오는 고민을 수업공책에 꾹꾹 담았습니다. 글자 틀린 학생, 풀이가 아쉬운 학생, 그 밖의 여러 이유로 감점해야 하는 학생 이름과 틀린 부분을 한 자 한 자 썼습니다. 혹시 채점오류가 있을까 싶어 여러 번 보았습니다.

수업시간. 칠판에 여러 한자 쓰고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게 없을 무 자일까요?"

"첫번째요."

"그러면 이 글자는 어디가 다른가요?"

"작대기가 세 개예요." "다섯 개예요."

"맞습니다. 잘 보면 없을 무 자는 세로 작대기가 네 개죠. 작대기 세 개 쓴 학생이 2학년 184명 중 20명 넘어요. 우리 반 친구들 중에도 있습니다."

이렇게 채점 기준과 그 반 학생들 오답 유형을 하나하나 칠판에 쓰고 이런 경우 몇 점 줬는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20점 만점에 A부터 G까지 급간이 2점이니 자잘한 실수로 점수가 달라지면 학생들 입장에선 마음이 어렵습니다. "틀린 것도 점수 깎여 아쉽지만 누구는 틀리고 누구는 안 틀리면 마음 상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쓴 건 맞고 이렇게 안 쓴 건 감점했습니다." 최대한 마음 다독이고 답안지랑 성적 확인 시작. 답지에 빨강 펜으로 표시한 부분 보여 주니 "아~"

공정하게 채점하면서 마음 헤아리기, 참 어렵습니다. 작은 마음 읽어 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단 말을 수행평가 채점하고 성적 확인할 때마다 꼬옥꼭 새깁니다.

칠판이 없어 공책에 수업 상황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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